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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권태로운 일상이 반복되듯, 홍상수의 실험은 계속된다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밤의 해변에서 혼자' 등 작품들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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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7-03-02 19:21:54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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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적인 사건과 갈등, 결말 없이
- 비루한 현실 날 것으로 보여줘
- 불륜에 빠진 여배우 이야기는
- 허구·실제 오가는 실험의 연장

홍상수 감독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는 화가에게 작업을 거는 한 영화감독의 하루를 그린다. 영화감독 함춘수(정재영)는 특강을 앞두고 하루 전날 수원을 찾아 화성행궁 근처를 서성이다 화가 윤희정(김민희)을 만나고, 급격히 가까워진다. 희정과 담소를 나누던 춘수는 그녀의 작업실을 따라가 그림을 구경하고, 일식집에서 회에 소주를 같이 들며 치근덕대다 희정의 지인이 운영하는 카페로 발길을 옮긴다. 그 자리에서 춘수는 자신이 이미 결혼한 유부남이란 사실을 밝히게 되고, 춘수에게 마음이 있던 희정은 크게 실망한다. 126분 동안 벌어지는 사건은 이것이 전부. 영화는 하루 동안의 만남을 춘수의 내레이션과 함께 보여준 뒤, 같은 이야기를 다른 각도에서 다시 비춘다.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홍상수의 영화는 극적이지 않다. 보통 영화의 서사는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의 영향으로 인과관계가 이어져 다음 사건이 발생, 결말에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으로 대단원을 맞이한다. 그러나 홍상수 영화는 다르다. 우연이 자주 벌어지고, 유의미한 연결점 없이 사건이 나열되며, 갈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지도 풀리지도 않은 채 영화는 막을 내린다. 홍상수는 '옥희의 영화'(2010), '북촌방향'(2012) 등을 거쳐 꾸준히 다른 영화적 실험을 해왔지만, 여전히 그의 영화 속 인물은 술을 마시고, 연애하고, 만나고 다투고 헤어지기를 거듭한다. 큰 줄기에서 동일한 이야기가 시점과 순서가 뒤섞이고 미묘한 차이가 덧붙여진 채 반복된다. 카타르시스가 없는 현실의 영겁회귀. 이런 방식에 따르면 그의 영화는 권태롭게 반복되는 일상의 한 단면을 잘라다 고스란히 은막에 옮기는 작업이 된다.
   
개봉 예정인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한 장면. 각 영화사 제공
코엔 형제는 '파고'(1996)의 도입부에 '실제 사건에 기초하였다'라는 문장과 함께 영화를 시작하나 끝날 무렵에 가서야 '등장인물과 사건은 허구'라고 고백한다. 영화는 극장에 불이 꺼져있는 동안의 진실일 뿐, 어디까지나 허구라는 규칙에 대한 작은 장난이다. 하지만 홍상수는 코엔 형제와 반대로 영화를 사유한다. 근사한 허구를 구경하러 온 관객 앞에 홍상수는 도리어 비루한 현실, 날 것의 일상을 이미지로 담아 내던진다. 재현과 반복. 그의 영화에서 실화와 허구, 연기와 실제의 경계선은 더없이 모호하고 흐릿해진다. 배우들이 펼치는 취중 연기가 실은 실제로 음주를 한 상황이었던 '오! 수정'(2000)과 '생활의 발견'(2002), '극장전'(2005), 그리고 불륜 논란이 불거지면서 일종의 자전적(自傳的) 영화로 비치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바로 그런 작업의 소산이다.

   
김민희에게 베를린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의 영광을 안긴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7)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아가씨'(2016)에서 다분히 양식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던 김민희는 홍상수와의 첫 작업인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에서 실제인지 연기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생동감 있는 생활 연기를 펼쳤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대략적인 내용은 유부남과 불륜 관계에 빠진 여배우의 이야기라고 한다. 허구와 실제, 현실과 영화. 그 사이의 간극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홍상수의 실험은 계속된다. 마치 끝없이 이어지는 '인생'이라는 제목의 권태로운 소설처럼.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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