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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 기자의 Ent 프리즘] 영화 속 라면의 다양한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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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영화 '토니 에드만'을 보는 동안 배에서 계속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날따라 점심을 거르고 극장에 들어가 1시간쯤 지났을 때부터 허기를 느꼈다. 영화에 집중하면서도 '극장을 나가면 라면 한 그릇 먹어야지' 하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그러다가 라면이 인상적으로 등장하는 한국영화가 꽤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한국영화에서 라면은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며 등장했다.
   
영화 '내부자들'의 한 장면.
'영화'와 '라면'을 떠올렸을 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은 역시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이다. '봄날은 간다'에서 라면은 사랑의 시작과 끝남을 암시한다. 이영애와 유지태의 사랑은 이영애가 "라면 먹을래요?"라고 하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나중에 둘이 관계가 소원해지자 유지태가 "넌 내가 라면으로 보이니?"라고 하며 헤어짐을 암시한다. 라면은 인스턴트 사랑을 의미하며, 또 하나의 유명한 대사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와 호응한다.

주인공의 참담한 심정을 대변한 라면도 있다. '공공의 적2'에서 상부의 압력으로 명선재단 이사장인 정준호의 비리를 제대로 파헤치지 못하게 된 검사 설경구가 부장검사인 강신일의 아파트에 찾아와 라면이 눌어붙은 양철 냄비를 박박 긁으며 슬퍼한다. 약자를 의미하는 라면과 양철 냄비는 권력 때문에 정의를 구현하지 못하는 검사와 어울린다.

'우아한 세계'에서도 기러기 아빠 송강호의 비참한 심정이 라면으로 표현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송강호는 캐나다에 있는 가족의 모습을 담은 비디오를 보다가 오열하며 라면 그릇을 집어 던진다. 가족의 반대에도 가족을 위해 조직원으로 일하던 송강호가 쓸쓸히 먹는 음식이 라면이었기에 그가 느끼는 비애는 더욱 배가된다.

'내부자들'에서 라면은 신뢰와 배신의 상황에서 등장한다. 나락으로 떨어진 이병헌은 의수를 한 채 건물 옥상에서 왼손으로 라면을 먹는다. 이때 충복 배성우가 찾아오자 나눠 먹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파트 옥상에서 라면을 먹던 이병헌은 뜨거운 라면을 허겁지겁 먹다가 다시 뱉고는 소주로 입 안을 헹군다. 이때 믿었던 배성우가 적들을 데리고 이병헌을 찾아온다. 같은 라면이지만 정반대의 상황에서 등장하는 것이다.
물론 라면이 어두운 상황에서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파송송 계란탁'에서 라면은 임창정과 그의 아들 이인성이 나누는 부자의 정을 보여준다. 임창정이 아들을 위해 "파송송, 계란탁"을 흥얼거리며 라면을 끓이는 장면에서는 부정을 듬뿍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만일 이들 장면에서 주인공이 라면이 아니라 스파게티를 먹고 있다면 어땠을까? 아마 그 느낌이 제대로 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정서에는 역시 라면이 딱이다.

   
(PS:'신라의 달밤'에서 분식집 주인으로 출연한 김혜수가 인터뷰 때 많은 라면을 맛있게 끓이는 비법을 알려줬다. "다량의 면을 따로 살짝 익히고, 수프를 따로 끓인다. 그리고 다시 한데 섞어 살짝 끓여주면 라면 기름이 지니고 있는 느끼함이 없어진다. 채소와 계란 노른자를 살짝 얹어주면 더 예쁘고 맛있다.")

latehop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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