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죽어서 살아난 아티스트, 예술의 본질에 대해 묻다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03-16 19:05:23
  •  |  본지 21면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아티스트:다시 태어나다'는 한 젊은 화가의 죽음을 기리는 추도식으로 막을 연다. 예술의 죽음을 선언하는 서늘한 도입부. '지젤'이란 예명을 쓰는 여류화가 오인숙(류현경)은 덴마크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돌아와 과외선생으로 일하던 중, 갤러리 대표 재범(박정민)이 그녀의 작품을 눈여겨보면서 개인전을 열게 된다. 신인 지젤의 그림은 해외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유명해지만, 정작 작가인 오인숙은 심장마비로 숨을 거둔다. 데뷔하자마자 사라진 천재 화가. 극적인 우연이 겹치면서 그림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성공에 도취한 재범은 지젤의 이름을 이용해 더욱 과감한 기획을 추진한다. 그러나 죽은 줄 알았던 오인숙이 병원에서 깨어나 돌아오면서 재범은 자신의 성공이 단번에 무너질 위기에 처한다.
   
영화 '아티스트:다시 태어나다'의 한 장면. 콘텐츠판다 제공
미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현대 예술은 무가치하며 작품에 매겨지는 가치는 일종의 공모의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이 영화에서 김경원 감독은 '예술의 근원적 가치 따위는 없다'는 보드리야르의 명제에 응답한다. 극 중 지젤은 나름 예술의 본질을 추구하는 작가가 되고자 하지만, 정작 얻게 된 명성과 평가는 본연의 의도나 작품의 속성과는 상관없다. 값을 올려 그림을 팔려는 화랑의 마케팅 전략과 여기에 가담한 비평에 의해 작품의 의미와 가치가 매겨지며, 필요하다면 작가의 인생까지도 대중의 구미에 맞춰 드라마틱하게 조작할 수 있는 상품이 된다. 죽은 것으로 알려진 비운의 천재 작가 지젤의 허상이 살아있는 오인숙 본인을 덮어버리고, 재범은 지젤의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지 않도록 실체인 오인숙에게 침묵을 강요한다. 그림자가 실체를 압도해버리는 기막힌 역전. 이것을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르'(simulacre)라 부른다.

일본 다도의 창시자 센 리큐(千利休)는 대나무 수저나 통발 같은 흔한 물건도 자신이 보고 마음에 들면 감정가를 붙여 명품으로 대접받게 했다고 한다. 현대 미술도 그와 같다. 고전 미술은 자연을 얼마나 생생하게 재현하는지가 평가의 잣대가 되지만, 모더니즘 이후의 현대 미술에서는 해석이 중요하다. 물감을 흩뿌리고(잭슨 폴락), 공장에서 막 생산된 변기를 가져다 전시하고(마르셀 뒤샹), 무대에서 피아노를 때려 부수는 퍼포먼스를 벌이는(백남준) 등 현대 미술은 조형적 아름다움을 포기한 대신 기괴함 또는 기발함에 대한 '해석'을 요구한다. 그리고 얼마나 그럴듯한 해석이 붙이느냐에 따라 값어치가 정해진다. 오인숙은 예술을 평가하는데 객관적인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외치며 미술계 중진 박중식(이순재) 화백에게 "선생님 작품이 과대평가된 거 아시죠?"라고 속삭이지만, 무수한 차이를 빚어낸 현대 미술에서 객관적 기준이나 본질적 가치 같은 건 사라져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감성을 고양시키고 존재의 아름다움을 일깨운다는 예술의 낭만주의적 믿음이 깨어진지 오래다. 그러나 상품이자 껍데기로서의 지젤을 버리고 예술가로서 자기 존재를 선언하는 오인숙의 선택처럼, 영화는 냉소와 허무를 딛고 다시 예술 본연의 진정성으로 되돌아가야 함을 역설한다. 코미디의 가벼운 껍데기를 쓰고 있지만 '아티스트:다시 태어나다'에서 다시 한 번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영화평론가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김해매거진 새창
많이 본 뉴스 RSS
  •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스포츠

김두완 신부의 신앙 이야기
다양성과 일치
최원준의 그 고장 소울푸드
동해 물텀벙 별미
국제시단 [전체보기]
하다가 /김자미
꽃샘추위 /변현상
글 한 줄 그림 한 장 [전체보기]
미쳐라
화염 속에서 불타오른 자유의 영혼
리뷰 [전체보기]
엄마와 딸, 할머니…우리와 닮아 더 아련한 이야기
관객과 하나된 젊은 지휘자의 ‘유쾌한 구애’
문화 소식 [전체보기]
부산문화재단, 문화예술 특성화 지원사업 심의 시작
부산독립영화협회 “서병수, BIFF 탄압…검찰, 재조사 하라”
방송가 [전체보기]
다시 무대에 오른 H.O.T. ‘어게인 1996’
동성이의 ‘발가락 기적’은 이뤄질까
새 책 [전체보기]
이별이 떠났다(소재원 지음) 外
돌아온 여행자에게(란바이퉈 지음) 外
신간 돋보기 [전체보기]
세상을 바꿀 새로운 기술
경제학자가 본 암호화폐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Infiltration Ⅲ-전광수 作
island -정성희 作
어린이책동산 [전체보기]
어른들이 없는 세상 속 아이들 外
재미있는 만화로 만나는 올림픽 역사 外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시냇물 /김임순
홍매(紅梅) /정경수
이기섭 8단의 토요바둑이야기 [전체보기]
제10회 삼성화재배 본선 16강전
제10회 삼성화재배 본선 32강전
이원 기자의 Ent 프리즘 [전체보기]
부산에서 촬영한 ‘블랙 팬서’, 내한행사도 부산서 했더라면
‘천생 배우’ 하지원을 응원한다
조재휘의 시네필 [전체보기]
한국영화가 사회상 담을 때 빠지는 함정
‘인간’ 처칠이 ‘영웅’이 되기까지
책 읽어주는 남자 [전체보기]
나비의 가녀린 죽음이 짓누르는 양심의 무게 /박진명
전쟁 통해 진화하는 문명…인간의 숙명일까 /정광모
책 읽어주는 여자 [전체보기]
어른들은 왜 이기적이죠?…힘들수록 나눠야지요 /안덕자
자비로 세상 대하면 평화·행복 뒤따라와 /강이라
현장 톡·톡 [전체보기]
관객도 영화감독도 ‘안타깝다’ 한숨 “예술영화관 공공재 의미 가졌으면…”
5개 작품 준비하는 젊은 안무가들 변화의 몸짓
BIFF 리뷰 [전체보기]
기타노 다케시 감독 ‘아웃레이지 파이널’
정재은 감독 ‘나비잠’- 뻔한 멜로…그러나 뻔하지 않은 감동
BIFF 피플 [전체보기]
‘레터스’ 윤재호 감독
‘헤이는’ 최용석 감독
묘수풀이 - [전체보기]
묘수풀이 - 2018년 2월 23일
묘수풀이 - 2018년 2월 22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 10월 18일
오늘의 BIFF - 10월 17일
이기섭 8단의 바둑칼럼 [전체보기]
2017 부산 서울 프로기사 초청교류전 2차전
2017 부산 서울 프로기사 초청교류전 2차전
정천구의 도덕경…민주주의의 길 [전체보기]
大計有餘
心術不正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