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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6> 소설가 한창훈과 산문집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소설가가 배를 몬다, 낚아올린 글들이 퍼덕인다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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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7-03-20 19:23:25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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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문도에서 태어난 한창훈은
- 그 섬으로 돌아가 어부로 산다
- 책 두권에 담긴 그의 생생한 삶
- 거문도 바다도 그도 눈부셨다

천운이 따랐다. 전남 여수시 삼산면 거문도를 오가는 바닷길은 잔잔했고 날씨도 좋았다. 일 년에 열흘 남짓밖에 볼 수 없다는 환상적인 날씨라니 천운이랄 수밖에. 한창훈은 일곱 살에 낚시를 시작했고, 아홉 살에 잠수를 배웠다. 그에게 바다는 삶이었다. 산문집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와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에 그 생생한 삶이 담겨있다. 책을 펼치면 바다가 품고 키워낸 생명이 파닥거린다. 바다의 생생함을 느껴보고 싶어 거문도를 찾았다.
   
한창훈(오른쪽 서 있는 이) 소설가가 직접 배를 몰며 뭍에서 온 친구 부녀에게 바다낚시를 가르쳐주고 있다.
■소설가와 선장

거문도에서 태어난 한창훈은 다시 섬으로 돌아가 살고 있다. 1992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닻'이 당선되며 소설가가 됐다. 장편소설 '홍합'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았고 제비꽃서민소설상(소설집 '청춘가를 불러요'), 허균문학작가상과 요산문학상(소설집 '나는 여기가 좋다') 등을 수상했다. 탄탄한 구성과 섬세한 문체로 농어촌과 소도시 하층민의 삶을 진솔하게 그려낸 그의 작품은 깊은 울림을 준다. 전라도와 충청도의 질박한 사투리는 해학을 보여준다. 이런 매력에 반해 '한창훈 마니아'가 되는 독자가 적지 않다.

어부 한창훈은 어떤 모습일까. 여수에서 그를 찾아온 친구 부녀와 함께 바다낚시에 나섰다. 바다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작은 배 옆으로 휙휙 지나쳐 조금 무섭기도 했다. "세상천지에 우리밖에 없는 것 같네." 그 소리에 돌아보니 한창훈이 직접 키를 잡고 있다. 그러고 보니 그 넓은 바다에 우리 배만 달린다. 이 순간 이 배의 선장이 한창훈이다!

   
선창에서 낚시 도구를 챙기는 한창훈 소설가.
선장은 거문도 근처 대삼부도와 소삼부도가 보이는 바다 한가운데에 배를 세웠다. 선장이 낚시채비를 준비했다. 볼락 바늘 열 개에 크릴새우 미끼를 끼운 릴대를 받아든 일행은 "지금이야!"라는 선장의 말에 바닷속으로 채비를 넣었다. 친구 딸인 중3 소녀의 릴대에 투두둑, 입질이 오는 게 눈으로 보인다. "올려!" 줄을 감아올리자 볼락이, 바닷속에 피었던 꽃송이가 매달려 올라오듯 주렁주렁 올라왔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에서 한창훈은 볼락 낚시를 이렇게 썼다. "볼락은 무리를 지어 다닌다. 그러기에 연달아 무는 경우가 많다. 마치 입을 벌리고 줄지어 기다리는 것 같다. 크기도 적잖다. 이 정도면 꽃다발이다. 결혼식이나 졸업식장이 바닷속에 만들어졌다."

정신없이 낚아 올리다가도 갑자기 입질이 뚝 끊기기도 했다. "안 물 때는 한참 기다려야 해." 선장은 바다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한 번 더 보고 자리 옮깁시다." 물 흐름을 보면서 배는 자리를 옮겼다. "선장님, 좋은데요!" 말이 들리면 "좀 들어왔지?" 답하며 함께 웃었다. "언제 물지 몰라, 물 때 낚어!" 유능한 선장이 포인트를 제대로 잡은 덕분에 볼락 꽃송이가 만발했다.

■잡았으면 먹는다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2014) 문학동네
"이러다 장판 되겠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마치 바다를 다리미로 다려놓은 것처럼, 파도 없이 매끈해지는 것을 섬사람들은 '장판'이라 말한다. 그 광활한 바다가 '잔잔하다'는 말조차 무색할 정도로 잔잔해졌다. 거대한 손으로 쓰다듬어 놓은 것 같다.

볼락 꽃송이의 흥분이 가라앉기도 전에 선장은 다시 가두리 양식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은 양식은 하지 않고 바다에 그냥 떠 있는 곳이다. 이번에는 장대로 학꽁치를 잡을 참이다. 역시 채비는 선장이 했다.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에서 학꽁치 잡는 법을 이렇게 설명한다. "학꽁치는 대개 눈에 보이는 수면 쪽에서 돌아다닌다. 가볍고 긴 낚싯대에 학꽁치용 바늘을 묶고 새우 살을 아주 조금 단다. 녀석들이 돌아다니는 깊이 정도로 찌를 조절하고 던지면 달려와서 물고 달아난다. 손목 스냅을 한번 줘서 후킹을 시키고 올리면 된다."
책에서 설명한 그대로였다. 선장 친구가 찌가 잠기는 것을 보고 낚아채려 했지만 학꽁치는 사라진 뒤였다. 선장이 말했다. "너무 우아하게 챘구먼. 좀 더 와일드하게!" 와일드하게 낚아채기 시작했다. 책에서 학꽁치를 '바다가 맘먹고 퍼주는 맛'이라고 표현했는데 정말 학꽁치가 줄줄이 올라왔다. 저걸 다 어쩌나 슬슬 걱정될 정도였다. 어쩌긴, 먹어야지. 잡았으면 먹는 것이고, 먹기 위해 잡는 것이다. 그것이 선장이 말하는 '생계형 낚시'이다.

   
선장은 배 위에서 친구와 함께 볼락과 학꽁치를 직접 손질하고 아는 식당에 부탁해 볼락은 구이로, 학꽁치는 회로 장만했다. 얼마 전까지 바다에서 펄펄 살아있던 생물이니, 그 맛은 상상 이상이었다. "한 번도 못 먹어봤다는 말은 한 번도 못 가봤다는 말보다 더 불쌍하다"는 소설가의 자산어보에서 볼락과 학꽁치만 맛본 게 못내 아쉬웠다. 그의 자산어보는 날씨, 물때, 미끼 등 환경이 딱 맞아야 비로소 만들어질 수 있다.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는 책상 위에서만 쓴 책이 아니었기에 거문도에 가서 본 바다는 더 푸르렀고 삶은 눈부셨다.

한창훈은 오늘 아침에도 바람, 일기예보, 물때를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했을 것이다.

책 칼럼니스트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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