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늘 굶주린 귀신 같다해 '아귀'
- 입이 아주 큰 물고기라고 '아구'
- 말린 아귀요리 마산서 최초 유래

- 콩나물 미나리 미더덕 듬뿍 넣고
- 매콤한 양념 방아향 더한 아구찜
- 부산사람의 화끈한 성정과 닮아

- 촉촉 풍성한 살 즐기려면 수육
- 담백하고 시원한 속풀이용 탕
- 고소한 간, 쫀득쫀득한 밥통도

'아귀가 세상을 향해 입을 벌린다. 모든 것 집어삼킬 듯이 꿈틀거린다. 온몸이 모두 입이다. 날카로운 이빨이다. 언뜻 보면 세상의 것들, 다 먹어치우고도 남겠다.' 수조 속 '활 아귀'를 스케치한 화가의 그림을 본 적이 있다. 그림 속 아귀는 그야말로 '아귀(餓鬼)'처럼 세상을 노려보며 으르렁대고 있었다. 그만큼 아귀는 우리에게 친절하지 못한 인상으로 다가오는 생선이다.

	아구찜

아귀는 연안 심해의 바닥에 사는 어류. 대가리 위 발광체의 촉수를 미끼처럼 흔들어 작은 물고기를 유인하고, 순간적으로 큰 입을 벌려 단숨에 덥석 잡아먹는 어종이다. '자산어보'에는 낚시를 하는 물고기라 하여 '조사어(釣絲魚)'라 기술하고 있다.

생긴 모습이 흉측하여 늘 굶주림에 고통받는 귀신, 아귀(餓鬼)에서 그 이름을 차용했다 하기도 하고, 부산 식 표현으로 입을 '아구'라 하는데, '입이 아주 큰 물고기'란 뜻에서 '아구'라 쓰기도 한단다. 입이 큰 만큼 물고기나 오징어 등을 단번에 삼키는 등 탐식성이 강하다. 한 번에 자기 체중의 30% 이상을 먹고도 소화를 시켜내는 대식가이다. 하여 '탐욕과 욕심의 상징'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아귀의 배를 갈라보면, 통째로 삼킨 생선이 가득 들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간혹 조기나 가자미, 큰 새우 등 비싼 생선이 들어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렇게 뜻하지 않게 행운이 따를 때를 일러 '아귀 먹고 가자미 먹고'란 속담으로 전래되기도 한다.


◇옛날엔 '물텀벙이', 이젠 귀한 몸

	아구탕

한때는 하도 못생겨서 잡히면 바다에 '텀벙' 버렸다고 '물텀벙'이라 부르기도 했다. 우리네 바다에는 '물텀벙이 3총사'가 있는데, 탕이 시원한 겨울의 진객 물메기와 매운탕과 수육이 기꺼운 동해의 도치 그리고 아귀이다. 모두 큰 몸집에 흉측하게 생겨 오래도록 상업화되지 못하고, 그 맛을 잘 아는 어부들이나 해안가 사람들의 별미로만 사랑받아 왔다.

아귀는 우리나라 전 연안에서 어획되는 어종으로, 부산에서도 기장과 다대포 일원에서 겨울부터 봄 사이에 주로 어획된다. 근래 들어 아귀찜이 전국으로 보급되면서, 대부분의 아귀를 중국에서 수입할 정도로 대접받는 생선이 되었다.

	아구수육

아귀는 부산 사람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부산 사람들은 입맛이 없거나, 화가 나고 답답한 마음 풀 수 없을 때, 뭔가 화끈한 음식으로 속이 확 뚫리도록 먹고 싶을 때, '아구찜'을 먹는다. 칼칼하게 매우면서도 강한 양념 맛 때문에 스트레스를 일시에 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 접시 가득 푸짐한 양으로 마음마저 푸근해지기에 그렇다. 매운 음식을 먹고 마음을 확 풀어내는 부산 사람들의 기질과 궁합이 딱 맞는 음식이 바로 '아구찜'인 것이다.

아귀는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2월부터 3월까지가 맛있어지는 시기다. 저지방, 저칼로리 어종으로 찜, 수육, 탕, 전골, 회 등 다양한 음식으로 요리하여 먹을 수 있다. 아귀에 함유된 DHA 성분은 성장하는 아이와 공부하는 학생의 두뇌 발달에 좋다. 또한 혈압을 저하시키는 효과가 있어 고혈압 환자에게도 좋다. 타우린 성분은 간과 심장의 기능을 강화시켜주고, 단백질이 풍부해 필수 아미노산 보충에도 유효하다. 숙취 해소에도 뛰어나 음주 후 먹기에 안성맞춤이다.


◇푸아그라에 비견되는 '아구간'

	아구 간·밥통

이렇게 함유 영양소가 풍부한 아귀는 생겨먹은 모습 때문에 오래도록 대접받지 못한 어류 중 하나였다. 그래서 아귀를 식재료로 하는 음식의 상업화도 그리 오랜 역사를 가지지 못했다. 아귀 요리의 상업화는 경남 창원시 마산 지역에서 말린 아귀로 만든 아귀찜이 최초라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아귀가 많이 잡히는 동남해권 해안가 마을에서는, 오래전부터 아귀를 말리거나 생으로 국을 끓여 먹거나 수육으로 먹었다고 한다. 부산의 경우 기장과 다대포 지역에서 아귀가 다량 어획되었는데, 잡은 아귀를 회로도 떠먹고 국으로도 끓여 먹었다는 것이다.

싱싱한 아귀를 3마리 사서 다양한 요리로 밥상을 차린다. 부산 식으로 '아구수육'과 '아구간'과 '아구밥통', '아구탕', '아구찜' 등등이 순서대로 상에 오른다. 먼저 '아구수육'. 싱싱한 '생 아구'로 장만해 살이 부드럽고, 육즙이 촉촉하다. 수육의 희고 풍성한 살을 한입 베어 물면 허벅질 정도로 부드러우면서도 입 안에 꽉 차는 웅숭함이 대단하다.

'아구탕'이 모락모락 김을 내며 상에 오른다. 아귀는 저지방 저칼로리 식품이라 탕으로 끓이면 맛이 담백하고 시원하다. 한술 뜨니 뜨거운 국물이 입안에 가득 찬다. 첫맛은 깊은 심연처럼 시원하면서 먹을수록 진한 맛이 돌아 끝이 없다. 뜨겁고 시원함이 절묘하게 사람 속을 풀어주기에 해장국으로도 최고의 반열이다.

'아구간'도 일품이다. 한입 먹어보니 그 고소함이 비할 바가 없다. 고소하면서 입에서 살살 녹아 씹을 새도 없다. 일부 식도락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위 간 요리 '푸아그라'와 맞먹는 일미로 손꼽기도 한다. 고소함의 깊이가 남다르기에 귀하게 대접하는 식재료이다. '아구밥통'도 먹을 만하다. 쫀득쫀득 몰캉몰캉 식감이 대단하다. 씹을수록 쫄깃하고, 담백하면서도 깊은 바다의 풍미가 은은하게 풍긴다.


◇부산 사람이 사랑하는 화끈한 아구찜

마지막으로 '아구찜'이 나온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아구찜'이 큰 접시에 담겨 푸짐하게 상에 올랐다.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벌건 양념 또한 아주 호전적으로 보인다. 아구찜이 가지는 붉은 색감의 확연함, 붉은 색조의 맛깔스러움이 참 좋다. 과연 부산의 음식답다.

아주 매운 양념에, 부드러운 아귀의 속살 그리고 아삭아삭 콩나물과 향긋한 미나리의 시원한 식감, 방아의 강렬하고 풍부한 향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음식이다. 아귀 살 한 점을 한입 가득 넣고 씹는다. 짭조름하면서도 걸쭉한 육즙이 진하게 전해진다.

희고 고운 두툼한 살집은 부드럽게 씹히고, 아귀껍질은 쫀득쫀득 오돌오돌 입안에서 내내 맛있게 돌고 돈다. 물렁뼈에 붙은 살을 입으로 쪽쪽 대며 뜯는다. 뼈 사이 양념이 육즙과 함께 촉촉하게 배여 나온다. 미더덕 한 톨 입에 넣는다. 톡 터트리니 해감내가 왈칵 쏟아진다. 오동통한 미나리는 향긋하게 코끝에 감돌며 상쾌함을 준다. 콩나물은 숨이 갓 죽어 아삭아삭 식감이 참 좋다. 숟가락으로 걸쭉한 국물을 한 술 뜨는데 깊은 바다 내음이 물씬 난다. 그윽하고 짙고 환하다.

이처럼 생긴 모습과 달리 살이 담백하고 달아서 다양한 음식의 재료로 활용되는 '아구' 특히 '아구찜'은 부산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으로 부산 사람들의 화끈한 성정과도 많이 닮은 부산의 음식이다.

한때 3대 물텀벙이로 잡는 즉시 버렸다는 아구. 이제는 부산 사람들에게서 널리 사랑받는, 없어서는 안 될 어류가 되었다.

문화공간 수이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