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짓말 같이 떠난 홍콩배우
- 우수 어린 눈빛과 감정으로
- 아웃사이더 역할도 공감 얻어
- '아비정전' 아비 뒷모습처럼
- 고독한 청춘 이미지로 남아

장국영(張國榮·1956~2003)은 1980~90년대 홍콩영화 전성기의 얼굴이었다. 가수로 성공 가도를 달리며 연예계에 입문한 그는 '영웅본색'(1986)에서 형제의 정과 직분 사이에서 번민하는 경찰 송자걸, '천녀유혼'(1987)에서는 막 사랑에 눈 뜬 어수룩한 청년 서생 영채신을 훌륭히 소화해 본격적인 배우의 길로 접어든다. '천녀유혼'에서 왕조현과의 물속 키스 장면은 장국영을 이야기할 때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추억의 명장면이다. '아비정전'(1990)에 출연할 무렵부터 가수를 은퇴하고 연기에만 전념한 그는 '패왕별희'(1993)에서 연기파 배우로 완숙한 기량을 발휘하게 된다.

	영화 '아비정전'(1990)에서 열연하는 배우 장국영. 4월 1일은 그의 14주기가 되는 날이다.

'동사서독'(1994) '해피투게더'(1997) '성월동화'(1999) 등에 출연하며 활발한 연기 활동을 펼치던 장국영은 '이도공간'(2002)을 유작으로 남기고 2003년 4월 1일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향년 47세. 예기치 못한 죽음이었고, 고인의 흉중에 무슨 생각이 감돌고 있었는지 영영 알 길이 없다. 그의 사후 14주기를 맞는 오늘날 남아있는 건 생전의 그가 남긴 영화 속 모습, 그리고 58편의 필름 안에 멈춰버린 과거 시간과 이미지 뿐이다.

배우로서 장국영의 입지와 이미지에는 실로 독특한 일면이 있다. 적룡과 주윤발이 몸소 보여주었던 의협에 불타는 협객상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성룡과 이연걸 같은 육체적 강인함을 내세우지도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천녀유혼'에서는 조연 오마가 맡았던 퇴마사가 전통적인 영웅호걸에 가까웠고, '동사서독'의 구양봉은 동생의 복수를 부탁하는 소녀의 청을 매몰차게 거절하는 비정한 반(反) 영웅이었다. '영웅본색'에서는 형의 본심을 일부러 외면하는 반항적인 동생이었고, '아비정전'의 아비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고 주저 없이 연인을 버리는 몰인정한 사내였으며, '패왕별희'의 데이와 '해피투게더'의 보영은 주류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동성애자였다. 일세를 풍미한 명배우로 이름이 높았지만, 정작 장국영은 전형적인 주인공과 동떨어진 아웃사이더로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왔다.

그럼에도 그의 연기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우수 어린 표정에 깃든 감정의 섬세한 결, 날카로운 인상의 이면에 배어나오는 인간적인 흔들림 때문이었다. 항상 냉정하고 태연한 척하지만 '영웅본색'의 송자걸은 형에 대한 뜨거운 정을 억누르지 못했고, '동사서독'의 구양봉은 백타산에 두고 온 옛 연인을 끝내 잊지 못하며, '아비정전'의 아비 역시 내면의 깊은 상처와 외로움을 감춘 불행한 영혼일 따름이었다. 마치 '영웅본색 2'(1987)에서 전화부스에서 쓰러져 죽어가면서도 딸의 이름을 지어주던 송자걸을 지켜보는 안타까운 심정처럼, 관객은 동정과 연민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이런 역설적인 면모가 배우 장국영이 지녔던 비극적 파토스(pathos)의 근원이었다.

'아비정전'의 한 장면에서 아비는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듯 애써 찾은 생모의 집을 등지고 걸어나간다. 주먹을 꼭 쥔 채, 당당한 걸음이지만 뒷모습에는 미처 떨쳐내지 못한 미련과 슬픔이 묻어나온다. 영화 속 아비처럼, 장국영은 다신 돌이킬 수 없는 길로 홀연히 걸어 들어갔고 외로운 사내, 예민한 청춘의 모습으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