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들었을 때 강렬하고 감동적
- 고향 통영바다 그리워 하더라"

- "방북은 순전히 음악적 목적
- 북한서 본 강서대묘의 사신도
- 아름다운 작품 '영상' 모티브돼"

윤이상(1917~1995)의 음악은 동서양의 경계 위에 선 '거울'이었다. 플루트에서 대금을, 오보에에서 피리를, 바이올린에서 해금을, 첼로에서 가야금을 느끼게 했다. 낯선 동과 서, 과거와 현재를 마주 보게 했다. 연주자들은 한국 전통 음악의 특징대로 비트가 아닌 호흡을 맞춰 함께 '숨' 쉬었다. 마침내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이루자 "우주의 음악을 내 예민한 귀를 통해 내놓을 뿐"이라던 윤이상의 말이 객석에 와 닿았다.

	지난 1일 경남 통영시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열린 '2017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윤이상 솔로이스츠 베를린'이 윤이상의 '낙양'을 연주하고 있다. 통영국제음악재단 제공

지난 1일 오후 '윤이상 솔로이스츠 베를린'은 '클라리넷 바순 호른을 위한 트리오' '낙양' '협주적 단편'을 차례로 선사했다. 전날 개막한 '2017 통영국제음악제'는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윤이상의 삶과 음악을 들여다보고 있다. 공연이 열리는 통영국제음악당 로비에는 윤이상의 친필 악보, 작품 노트, 안경 등 유품과 윤이상을 기억하는 세계 음악인들의 글귀가 전시돼 관객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공연 직후 윤이상 솔로이스츠 베를린의 오보에 주자 잉고 고리츠키(78·Ingo Goritzki) 씨를 만났다. 고리츠키 씨는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갖는 것은 처음이다. 친구 윤이상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 즐겁다"며 미소 지었다. 그는 1980년대 스위스의 한 초청 연주회에서 윤이상을 처음 만난 후 30년 지기가 됐다. 그는 윤이상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매우 강렬하고 감동적(inspiring)이었다"고 회상했다. 윤이상은 생전 고리츠키 씨의 연주 방식을 좋아해 그를 위한 작품을 세 편 썼다고 했다. 고리츠키 씨는 윤이상이 그토록 갈망하던 고향인 통양에서 그의 탄생 100주년인 해에 연주한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윤이상이 더이상 살아 있지 않아 안타깝다. 그는 언제나 통영의 바다가 푸르른 색이라며 자주 이야기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윤이상은 이 '30년 지기'에게 통영이 자신의 음악적 토대임을 자주 말했던 셈이다. 바다 마을 통영에 울려퍼진 가무악, 오광대, 남해안별신굿 등 풍요로운 전통음악은 윤이상 작품 곳곳에 스며있다.

	윤이상의 사진을 들고 환히 웃고 있는 잉고 고리츠키.

고리츠키 씨가 전한 일화는 흥미로웠다. 윤이상과 함께 북한에서 음악인들과 한 달 동안 연주하고, 고구려 유물인 강서대묘의 사신도를 직접 봤다는 얘기였다. 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그린 1400여 전 그림인 사신도를 직접 보고 영감을 받은 윤이상은 뒷날 '영상'이란 작품을 만들었다. 고리츠키 씨는 "정말 아름다운 작품이었다"고 감탄하면서도 윤이상의 방북은 순전히 음악적 목적이었음을 강조했다. 윤이상의 방북은 동백림 간첩단 사건의 단초가 됐고, 정권의 정치적 잣대로 재단됐기 때문이다.

윤이상은 어머니의 태몽처럼 '상처 입은 용'이었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의 풍파 속에서 음악을 놓지 않은 그는 남한, 북한, 독일에서도 제대로 수용된 적 없는 경계에서 이상적인 세계를 꿈꿨고 이를 음악에 녹여냈다. 고리츠키 씨는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윤이상은 위대한 작곡가이다. 헝가리 민족 색채를 유럽 음악에 녹여낸 작곡가 벨라바르톡, 졸탄 코다이처럼 한국의 오래된 음악을 서양 음악으로 표현했다. 단순한 결합이 아니라 악기를 완전히 이해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냈다. 그게 윤이상이다."

이달 9일까지 열리는 통영국제음악제에서는 윤이상 작품이 계속 연주된다.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 첼리스트 옌스 페터 마인츠, 아르디티 콰르텟, 홍콩 차이니즈 오케스트라, 서울시립교향악단 등이 오페라 '류퉁의 꿈' '서주와 추상' '밤이여 나뉘어라' 등 윤이상을 들려준다.

통영=최민정 기자 mj@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