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뜻한 성질의 대파+양파 작물
- 추위에 지친 몸 원기 돌게 만들어
- 미각 깨우고 춘곤증 해소 도움

- 바닷바람에 달고 순한 기장쪽파
- 반죽·해물 올려 도톰하게 부치면
- 그 유명한 향토음식 '동래파전'

- 데쳐 말아 초고추장 콕 '파강회'
- 짭조롬한 밥도둑 '파김치'까지
- 입안에 넣는 순간 '봄이로구나~'

봄이 완연하다. 몸이 나른하고 괜스레 노곤해진다. 바야흐로 '봄을 타는' 것이다. 움츠렸던 삼라만상이 기지개를 켜며 잠에서 깨어나는 가운데 새로운 생명은 왕성한 활동을 시작한다.

	'동래파전 먹으러 동래장 간다'는 부산의 향토음식 동래파전. 기장 쪽파를 넉넉하게 쓰는 것이 맛의 비결이다. 사진가 김도근 제공

이 시기에 사람들도 새로운 생명력을 취하기 위해, 봄을 이겨내는 음식을 찾는다. 이완되는 몸을 살짝 긴장시키는 봄나물이 그것인데, 그중 입과 몸과 마음을 깨우는 것 중 하나가 요즘 제철인 '쪽파'이다. 쪽파는 대파와 양파를 교잡하여 만들어낸 식물이다. 알뿌리 하나를 심으면 여러 쪽의 파줄기가 분화하여 자란다고 쪽파라 한다. 재배하기도 쉬워 예부터 집 주위에서 흔히 키우던 작물이다. 부산을 비롯한 경상도에서는 자잘한 파라고 '잔파' 또는 '당파'라고도 한다.

쪽파는 대략 기원전 660년전부터 중국에서 재배한 첫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약 1500년전으로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정한다. 고려시대 '향약구급방'에 파를 약재로 활용한다는 기록을 뵈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고려시대 시인 이규보의 문집에는 '가냘픈 손 인양 무성한 파줄기 옹기종기 많은데 / 아이들 그 잎 뜯어 피리 삼아 불어댄다 / 술자리에 좋은 안주가 될 뿐 아니라 / 고깃국에 파를 넣으면 맛이 배가되니 그 아니 좋은가'라는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를 보더라도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이 파를 상용했음을 알 수가 있다.


◇봄 쪽파의 단맛…미각과 몸을 깨우네

	파를 돌돌 말아 초고장에 찍어 먹는 파강회.

쪽파는 따뜻한 성질을 지녀 나른한 봄날에 인체의 활력을 부추기고, 겨우내 지쳤던 몸에 원기를 돋게 한다. '동의보감'에는 성질이 따뜻하고 비장과 신장을 좋게 하며 기운을 북돋워 피로를 이기게 하는 작물로 소개돼 있다. 특히 봄날의 쪽파는 잃었던 미각을 일깨우고 춘곤증과 심신을 안정시키는 데 유효하다.

한때 선남선녀의 결혼식에 주례가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기를…"이라는 말로 두 사람의 장도를 격려했다. 그 말 속에는 오래도록 해로하라는 뜻도 있지만, 겨울을 이겨낸 파의 생명력처럼 건강하고, 무병장수하라는 의미도 있다.

요즘 수확되는 쪽파는 일 년 중 단맛이 가장 좋고 특유의 매운 맛도 이즈음에는 순하고도 곱다. 그래서인지 주로 양념장이나, 탕국의 고명 등으로 쓰이는 쪽파가 이즈음에는 파김치, 파전, 파강회 등 음식의 메인으로 활약한다.

소금물에 살짝 데친 쪽파를 돌돌 말아 초고추장에 콕 찍어 먹는 '파강회.' 고슬고슬 잘 지은 흰 쌀밥에 얹어 먹으면 밥 한 그릇 금방 뚝딱인 '파김치.' 잘 달군 팬에 반죽 입힌 쪽파와 채 썬 채소를 듬뿍 올려 부친 '파전'등이 그것이다.


◇요즘 기장은 쪽파의 푸른 물결

	향긋한 쪽파 김치.

봄을 맞은 요즘 부산 기장군의 밭에서는 쪽파가 푸른 물결을 이루고 있다. '울울총총(鬱鬱蔥蔥)'하다. 기장 쪽파는 바닷바람을 맞아 맛이 달고 순하며, 향과 식감이 좋아 예부터 다른 지역의 쪽파보다 비싸게 팔렸다. 기장쪽파로 만들어 먹는 부산의 향토음식 중 대표적인 것은 동래파전일 것이다. 당시 동래 인근 기장의 쪽파로 쉬 해 먹을 수 있었던 음식으로, 동래기생들에 의해 널리 계승된 것으로 보인다.

매년 삼월삼짇날 동래부사가 임금께 진상했던 귀한 음식이기도 했거니와, 일제강점기 이후로는 '동래장'에서 술추렴 안주나 주전부리로도 꽤 인기를 끌었던 음식이다. 오죽하면 '동래파전 먹으러 동래장 간다'는 말까지 있었을까?

기장쪽파를 번철에 넓게 두르고 미나리, 홍합, 굴, 새우, 조갯살, 쇠고기 등 부침개 재료와 찹쌀 등 곡물을 이용한 반죽가루, 멸치와 다시마 등으로 우려낸 반죽육수에, 파전 위에 올리는 달걀 등 갖은 재료를 이용하여 부쳐내는 음식이 동래파전이다. 보통 파전과는 달리 두껍고 속이 촉촉하다. 파 이외에도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 각각의 식감을 즐길 수 있다. 때문에 동래파전은 제각각의 맛을 내는 다양한 음식재료가 '한 가지의 맛' 속에 모여 서로 어우러지고, 하나의 공통된 맛 아래 스스럼없이 뭉치는 '개성과 화합의 음식'이다.

이를테면 근현대사를 거치며 부산에 정착한 여러 지역 사람들이, '부산'이라는 장소에서, '부산 사람'으로 하나가 되어, '부산의 정신'을 만들어낸 것과 다르지 않은 음식이 '동래파전' 아닐까?


◇파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잘 다듬은 기장 쪽파

봄의 기장 쪽파 음식은 '파전' 이외에도 고춧가루와 기장 멸치젓국 등만 넣어 만드는 '파김치'와 파를 소금물에 살짝 데쳐 돌돌 말아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파강회', 쪽파를 생채로 새콤달콤하게 무쳐 먹는 '쪽파 겉절이' 등이 있다.

파김치는 쪽파를 멸치젓국에 절여 담근 김치. 멸치젓국, 고춧가루 등을 섞어 만든 양념에 잘 손질한 쪽파와 함께 버무린 후 적당히 익혀 먹는 음식이다. 입맛 없는 봄날에 밥 위에 얹어 함께 먹으면, 최고의 봄 반찬이 되는 것이 바로 '파김치'이다. 강회는 숙회(熟膾)의 일종으로 파나 미나리를 소금물에 데쳐 돌돌 말아 만든 회로, 이른 봄의 향이 강한 채소를 주재료로 만들어 먹는다. 예부터 파를 감을 때 민간에서는 상투 꼴로 똬리를 틀듯 감았고 궁중에서는 족두리 꼴로 감아 먹었다고 전해진다. 봄맛을 상징하는 음식으로 색상이 아름답고 맛이 깔끔해 술안주로 애용했다. 초고추장에 곁들여 먹는다.

기장 쪽파를 한 단 사서 다양한 쪽파음식을 만들어 보았다. '파김치'와 '파강회', '쪽파 겉절이' 등이다. 봄을 맞아 쪽파가 살이 올라 통통하다. 향도 은은하게 상쾌하다. '파김치'를 맛본다. 기장 멸치액젓이 배여 구수하고 짭조름하다. 기장의 건강한 황토흙 냄새가 물씬 난다. 한입 넣고 씹으니 싱그러운 파 향이 입 안 전체로 퍼져난다. 알싸하니 기분 좋은 매운맛도 돌고 아삭아삭 식감 또한 경쾌하다. 구수하고 아릿한 맛이 봄의 노곤함을 일시에 가셔주는 느낌이다.

쪽파를 데쳐 한줄기씩 돌돌 감은 강회를 회초장에 찍어 맛본다. 쪽파 머리 부분이 와드득 씹힌다. 그리고 푸른 줄기는 부드럽게 혀를 감싸며 들큰한 맛을 자아낸다. 회초장의 새콤달콤한 맛과 어울리면서 해풍 맞은 기장 쪽파가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부산의 봄 알리는 음식재료

파무침은 상쾌한 식초와 알싸한 생파가 어우러져 봄을 알리는 음식. 한 젓가락 먹으니 '아~! 봄이로구나~' 완연히 알아챌 수 있겠다. 음식으로 계절을 느낀다는 말이 제대로 실감이 나는 음식이다. 다진 쪽파로 고명을 올린 고소한 계란찜도 한입 먹는다. 간간이 씹히는 파 고명이 향긋한 파 향을 내며 은은하게 씹힌다. 달걀 특유의 비린내도 잡아주고 식감도 좋게 한다. 거듭 떠먹을수록 봄이 입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만 같다.

부산의 봄을 알리는 기장 쪽파 음식 한 상으로, 봄은 이미 곁에 와 있다. 가끔씩 봄비 소식에 파전도 부쳐 먹고, 일상이 나른한 날에는 파김치 한쪽으로 입맛도 살려보자. 이러구러 봄은 봄이러니~!

문화공간 수이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