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극횡단 중 배 침몰하자 맨 나중 하선
- 섬 상륙 후 직접 16일간 구조요청 항해
- 타고간 배 파선하자 36시간 동안 걸어
- 확고한 신념과 인내로 대원 전원 구조

'배를 포기한다'.

1915년 남극 탐사에 나섰다가 얼음에 갇혀버린 인듀어런스 호. 뜨인돌 제공

1915년 10월 27일 오후 5시, 탐험대장 섀클턴은 비통한 마음으로 명령을 내립니다. 배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썰매개들을 대피시키고 전 대원이 하선한 후에야 섀클턴은 마지막으로 배에서 내립니다. 남극 횡단을 목표로 28명의 대원을 실은 인듀어런스호가 목적지를 불과 150km 앞두고 부빙(움직이는 얼음)에 갇힌 지 9개월째였습니다. 극지에서 배를 포기한다는 것은 곧 생존과 생환의 불확실성에 대한 기한 없는 사투를 뜻합니다. 섀클턴은 몰랐을 것입니다. 앞으로 겪게 될 엄청난 좌절을. 또한 그것이 성공보다 더 위대한 실패가 되리라는 것을. 그럼에도 오늘날까지 우리가 그를 기억하는 것은 극한의 위기 속에서 그가 보여준 진정한 리더십에 있습니다.

침몰한 인듀어런스호를 뒤로하고 섀클턴과 대원들은 부빙 위에 캠프를 설치합니다. 그들에게는 작은 배 세 척, 썰매개들, 풍족하지 못한 물품이 전부였습니다. 기온은 영하 39도까지 떨어졌고, 가까운 육지는 600㎞ 밖에 있었습니다. 부빙은 녹거나 움직이며 안전을 끝없이 위협했고, 육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섀클턴은 육지를 찾아 배를 띄우기로 합니다. 데려갈 수 없는 개들을 정리하고 세 척의 배에 나눠 탄 탐험대는 표류와 항해를 거듭한 끝에 가까스로 엘리펀트 섬에 상륙합니다. 섀클턴의 위대한 리더십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와 다섯 명의 대원이 커드호를 타고 포경기지가 있는 사우스 조지아 섬까지 가기로 합니다. 섬은 1000㎞ 떨어져 있고, 자칫 잘못하다간 대서양으로 쓸려나갈 수 있는 망망대해를 겨울에 지나가야 하는 도전이었습니다. 커드 호의 항해가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면 남은 대원들의 생존 가능성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후 16일간 항해 끝에 커드호는 간신히 사우스 조지아 섬에 도착합니다. 하지만 포경기지는 섬 반대편에 있었고, 거의 부서져 버린 배로는 도저히 갈 수 없었습니다. 섀클턴은 다시 한번 큰 결정을 내립니다. 그와 두 명의 대원이 섬을 가로지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은 바위와 크레바스,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미지의 산이었습니다. 다른 선택은 없었습니다. 엘리펀트 섬에 두고 온 22명 대원의 빠른 구조가 최우선이었습니다. 그와 두 대원은 36시간을 쉬지 않고 협곡과 얼음 절벽을 타고 넘어 마침내 스트롬니스 포경기지에 도착합니다. 남극 횡단을 목표로 출항한 지 18개월여 만이었습니다.

'섀클턴은 쌍안경을 들고 초조한 모습으로 대원들의 숫자를 헤아렸다. 정확히 22명이었다. 엘리펀트 섬의 대원들은 일제히 한목소리로 외쳤다. 모두 무사합니다.' 대원들 구조를 끝낸 섀클턴은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적습니다. "한 사람도 잃지 않았소." 글쓴이는 덧붙입니다. "위기 상황에서 그가 발휘했던 탁월한 리더십의 핵심에는 평범한 사람이라도 상황이 닥치면 영웅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리더로서 섀클턴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힘과 인내를 대원들에게서 이끌어냈고, 모든 대원을 똑같이 존중했다."

훗날 T.S. 엘리어트는 '황무지'에서 섀클턴과 대원들에게서 받은 영감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항상 그대 곁에서 걷고 있는 제삼자는 누구인가/ 세어 보면 그대와 나 둘뿐인데/내가 이 하얀 길을 내다보면/ 그대 곁엔 언제나 또 한 사람이'. 문득 '황무지'의 첫 구절이 함께 떠오릅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생각이 많아지는 봄, 사월입니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