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사 스타강사 설민석의
- 민족대표 33인 폄훼 발언
- 역사학자가 해야할 일까지
- 우린 스타에게 기대고 있었다

- 무턱대고 명성에만 기대지않고
- 인문적 수준 높여 판단하는
- 문화 향유자가 필요한 때다

한국사 강사로 스타 반열에 올랐던 설민석(사진) 씨의 '3·1운동 민족대표 33인 폄훼 발언'이 한창 문제가 됐을 때였다. 머리도 마음도 복잡했다. 신중치 못했고, 역사의 사실관계를 따지는 데 엄밀하지도 않았던 데 대한 비판 여론에 수긍하면서도 이 상황을 뒤집어 생각해볼 필요도 느꼈다.

우리(대중)는 설민석 씨로 표상되는 '스타 강사'에게서 무엇을 바랐던가. 그는 한국사 강의를 잘해서 스타 강사가 됐다. 그런 뒤에는 우리가 이 스타에게 기대는 양상이 생겼다. 박수 칠 준비를 미리 하고 있다가, 그가 명쾌하고 재미있게 역사의 실타래를 정리해주면 "역시! 설민석이야. 역시 스타야!"하고 찬탄을 보내곤 했던 모습이 있었다.

그런데 그는 강사다. 정리 또는 해석된 것을 더 잘 정리해서 잘 전달하는 것이 그의 주된 일이다. 그 이전에 사실(史實)을 놓고 이렇게 봐야 맞니, 여기엔 이만한 의미가 있니 하며 더 근본적으로 따지는 일을 맡은 이들이 있는데 바로 역사학자다. 둘의 일이 때로 서로 넘나들기도 하지만, 원문·원전·유물·유적·기록과 직접 부딪혀 해석하고 이론을 만드는 역사학자의 일과 그 결과물을 시민이나 수험생에게 잘 전달하는 역사 강사의 일은 똑같이 소중한 가치를 지닐지언정 맥락은 같지 않다.

우리가 '스타'라는 지위에 너무 빠져 역사 영역의 중요한 해석마저 스타 강사에게 시나브로 기대던 사례가 조금씩 쌓여 급기야 '민족대표 33인 폄훼 발언'이라는 상황까지 낳았고, 여기에 사회가 화들짝 놀란 모습을 이번 일에서 본다. 요컨대 향유자나 대중 또한 '공급자' 못지않게 안목을 알맞게 높여가야 이런 소동을 줄이고, 각 영역에서 인문적 수준을 고루 높일 수 있을 거란 주장이다.

이 글에서는 편의상 장인(匠人)과 고수(高手)를 구분해서 쓰고자 한다. 장인은 자기 영역에서 피나는 노력으로 최고 수준에 오른 사람이다. 고수는 장인의 단계를 넘어 자기 분야를 두루 꿰뚫을 뿐 아니라 세상 전반에 걸쳐 혜안을 갖추는 데까지 나아간, 실천하는 사람이다.

사회가 장인을 기르고 장인문화를 가꾸지 못하면, 피해와 부작용은 여러 방면에서 온다. 고수가 나오지 못하고, 문화의 내실이 허약해지며, 함량을 채우지 못하고도 '행세'하는 이는 늘게 되는 것 등이다. 다만, 이 글에서는 장인문화를 가꾸는 데서 장인 자신의 노력 말고도, 이를 알아보는 대중 또는 개인들의 안목도 긴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말하자면, 무턱대고 스타의 명성에만 기대거나 빠져들지 않는 '나 자신'의 노력과 판단이다.

'귀명창'이 대표적인 우리 문화 속 사례다. 명창이 판소리를 잘해도 그 솜씨를 제대로 알아채는 관객인 귀명창이 없으면 걸맞은 자리매김은 이뤄지기가 어렵다. '맛집'도 비슷하다. 음식 재료와 조리법에 관한 지식을 잘 갖추고 음식 문화에 녹아있는 정서적 특징을 잘 이해하는 '맛객'이 많은 곳에서는 어떤 요리사도 어중간한 솜씨로 명성을 얻지 못할 것이다. 이런 것이 쌓여 문화의 수준을 높인다.

다시 말해, 지역의 문화를 가꾸는 일에서는 '공급자'뿐 아니라 시민의 구실도 중요하다.

시대를 불문하고, 이렇게 '알아보는' 일은 쉽지 않았던 듯하다. 지난주에 나온 책 '칼 융의 말'(정명진 엮음·부글 펴냄)에서 정신분석학과 분석심리학의 고수를 넘어 '도사' 반열에 오른 칼 융조차 이런 말을 했다. "아무리 현명한 사람일지라도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바보로 여겨지고, 대단히 어리석은 생각을 처음 큰 소리로 선언하는 바보는 예언자나 지도자로 통한다. 그런데 다행하게도 간혹 이와 반대 현상도 나타난다."

오래전 읽은 글 가운데 이런 것도 있다. "문화라는 태양이 낮게 떠 있으면 난쟁이들의 그림자 역시 길게 비친다-칼 크라우스"(막스 오테 지음, '정보왜곡 경제' 중)

문화라는 태양이 높게 뜨게 할 힘을 시민, 관객, 우리도 지녔음을 알면 문화도 높아질 것이다.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