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멜치 메루치 메르치…
- 부산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 기장 대변항 멸치 먹어봤을터

- 한류·난류 만나는 해역서 자라
- 크기가 크고 굵으며 살도 단단
- 연간 생산량만 4000t 달해

- 회초장에 야채와 버무려먹고
- 시래기와 칼칼하게 끓여먹고
- 석쇠에 얹어 숯불에 구워먹고
- 그래도 남으면 젓갈로 곰삭히는
- 입맛 사정없이 자극하는 밥도둑

'후드득, 후드득' 멸치가 튀어 오른다. 봄날, 기장 대변항의 오후. 항구의 멸치배 옆으로 한 무리의 어부들이 그물의 멸치를 털고 있다. 힘찬 후리질로 멸치를 후리는 것이다. 그물을 후릴 때마다 멸치가 하늘로 튀어 오른다, 봄 햇살에 은빛 비늘이 새파랗게 반짝인다.

기장 대변은 멸치의 고장이다. 전국 멸치 어획량의 약 60%를 차지한다. 때문에 대변에서는 다양한 멸치음식을 맛볼 수 있고, 깊고 구수한 맛의 멸치젓갈을 사시사철 구입할 수 있다. 전국 최대 규모의 멸치젓갈 산지이자 유통시장이기에 그렇다. 하여 전국적으로 '대변'하면 '멸치', '멸치'하면 '대변'이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특히 젓갈용 '대멸(멸치 성어)'을 어획하기에 '멸치젓갈'의 본고장이다.

	먹음직한 대변 멸치로 바글바글 끓여낸 멸치찌개와 싱싱한 멸치회 한 상 차림. 사진가 문진우 제공

■벚꽃철엔 봄멸치도 몰려온다

대변 멸치는 벚꽃 피는 4월에 대변 연안으로 몰려온다. 벚꽃이 피면 대변 앞바다 멸치도 은빛 비늘 퍼덕이며 화들짝 피어오른다. 체장이 10~15㎝ 안팎으로 다른 지역 멸치보다 크고 굵어, 주로 젓갈용, 횟감용, 음식재료로 이용된다.

해마다 봄, 가을에 연근해 유자망 어선으로 주로 어획하는데, 위판되는 대변 멸치의 연간 생산량은 약 3000~4000t. 동해 깊은 수심과 한류·난류의 소통이 좋은 해역에서 잡히기에 살이 단단하고 맛이 월등하다.

봄날에 대변 멸치음식 한 번쯤 안 먹어 본 부산 사람은 없을 게다. 싱싱한 생멸치를 장만하여 갖은 채소를 섞고, 온갖 양념으로 조물조물 버무려 먹는 '멸치회', 얼큰하고 구수한 맛 '멸치찌개', 고소한 살집을 발겨먹는 재미 쏠쏠한 '멸치구이' 등이 봄 입맛을 사정없이 자극한다.

대변항은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에서 이주한 일본인들에 의해 크게 축항되고 멸치산업도 발달하게 된다. 동해와 남해가 만나는 지점에 있어, 동해를 드나드는 배들의 피난항으로 유명했으며 경상남도 주요 10개 항에 속하기도 했다. 1932년에는 길이 180m 방파제를 수축하는 등 근대 항만 시설을 갖추게 된다.

1910년 발행된 '한국수산지'와 1942년 간행된 '조선어업조합요람'은 일본에서 이주해 온 어민들이 조기, 갈치, 청어, 복어와 함께 멸치를 잡았다고 기록하면서, 기장에서 잡힌 주요 어류로 정어리와 멸치를 소개한다.

■싱싱한 비린내와 곰삭은 풍미

	멸치를 말리는 기장의 어민.

부산에서는 '멜치, 메루치, 메르치' 등으로 불리는 멸치는, 주로 말리거나 염장하여 육수를 내고, 젓갈을 담아 먹는다. 특히 통영을 중심으로 멸치를 잡자마자 솥에 끓이고 햇볕에 말려 저장하는 방식은 일본인들에 의해 전래되었다.

일본에서는 이렇게 말린 멸치 등 생선으로 육수를 내는 것을 '니보시(煮干し)'라 하는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 방식의 음식이 정착하게 된 것이다. 이전까지 조선에서는 멸치를 주로 염장해서 젓갈을 담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자산어보'에 생멸치로 국을 끓여 먹었다는 기술이 있기는 하나, 요즘처럼 말린 멸치로 육수를 내는 방식과는 다르다. 말리는 방식도 잡은 멸치를 배를 따고 일일이 펴서 말린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도 대변에는 그런 방식으로 멸치를 말리는 아낙들이 눈에 띈다. 이를 대변에서는 별미로 굽거나 찌개로 만들어 먹었다.

현재 대변항에는 멸치회와 멸치찌개, 멸치구이 등을 파는 멸치음식 전문점들과 멸치젓갈 상점이 집단을 이루고 있다. 멸치 중에도 산란 전의 봄멸치가 제일 맛이 좋은데, 그중에서도 4~5월이 한창 적기이다. 그래서 이맘때 대변항은 싱싱한 멸치 비린내와 멸치젓 곰삭는 냄새로 활기차다. 특히 매년 4월 열리는 대변멸치축제를 보려고 전국에서 관광객이 모여드는 통에 멸치항구 대변항은 장사진을 이룬다. 멸치축제가 있는 4월의 대변항은 말 그대로 멸치로 파시를 이룬다. 멀리 통영에서까지 몰려온 멸치잡이 배들로 대변 앞바다는 불야성이 되고, 전국에서 몰려든 멸치관광객으로 골목이 왁자지껄하다.

■멸치회와 멸치찌개의 매력

	도톰한 멸치를 석쇠에 구워서 내면 고소한 멸치구이가 된다.

멸치 전문 음식점에서 '멸치회' 한 접시 시킨다. 싱싱한 생멸치를 장만하여 갖은 채소를 섞고, 온갖 양념으로 조물조물 버무려서 먹는 멸치회는 봄을 알리는 갯것 음식 중 최고 반열이다. 상추에 멸치회와 회초장 버무린 채소 가득 올리고, 땡초 하나, 마늘 한 조각 올려 한 입 크게 싸 먹는다. 멸치의 비릿한 회 맛과, 미나리, 깻잎 등 온갖 채소의 싱그럽고 향긋한 풋내, 회초장의 새콤달콤함이 어울려, 온 입안이 봄맞이하듯 파릇파릇해진다. 입안으로 봄 바다가 출렁이고, 봄바람이 살랑인다. 멸치떼가 이리저리 튀어 오르고, 온갖 채소가 상쾌한 봄노래를 불러준다. 아~ 봄은 이렇게 오는 것이다.

멸치회와 함께 대변의 멸치음식으로 쌍벽을 이루는 것이 멸치찌개다. 멸치찌개는 시원하고 구수하고, 얼큰하고, 걸쭉하고… 참 다양한 맛을 내는 음식이다. 우선 멸치육수에 토속 된장을 풀고, 부드러운 시래기와 싱싱한 통멸치, 대파, 고춧가루를 얹어 끓여낸다. 얼큰하고 시원하게 먹으려면 땡초를 넉넉히 넣어 해장국으로 즐길 수도 있다. 특히 찌개 위에 방아 잎을 넉넉하게 올려 두기에 향긋한 방아향이 물씬 돌아, 부산 사람 입맛을 더욱 다시게 한다.

찌개 속 멸치가 수북하다. 한 입 맛본다. 멸치의 보드라운 살이 입안에서 파닥이는 것 같다. 그 맛이 짭조름하면서도 구수한 게 그저 그만이다. 다시마나 상추에 쌈을 싸 멸치젓갈과 곁들이면, 이 또한 기껍다. 밥 한술에 우거지 한 줄 꺼내 먹는 재미도 무시할 수 없겠고, 남은 멸치찌개 국물에 밥 한술 쓱쓱 비벼 먹어도 아주 흔쾌하다.

■멸치구이는 또 어떠한가

또한 대변에서만 맛보는 멸치음식 중에는 숯불에 고소하게 구워내는 멸치구이가 있다. 특히 멸치축제 때는 굵직한 멸치를 포구 곳곳에서 석쇠로 구워 먹느라 난리가 난다. 멸치처럼 작은 생선을 어떻게 구워 먹겠나 싶겠지만, 숯불에 은근하게 구워 먹으면 그 고소함은 어디에 내놓더라도 손색이 없다. 원래 고등어, 꽁치, 삼치처럼 등 푸른 생선은 살 속에 기름이 많아 구워 놓으면 부드럽고 고소하다. 멸치도 그렇다. 다만 살이 좀 더 부드럽고 발라 먹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겠다.

세월을 곰삭힌 멸치젓갈은 또 어떤가. 상추쌈에 멸치젓갈 한 점 얹었을 뿐인데, 누구에게도 주기 싫은 귀한 밥상이 되는 것이 멸치젓갈밥상이다. 예부터 대변항에서는 팔고 남은 멸치를 오래 보관하기 위하여 자체 염장법이 발달했는데, 그 시절의 젓갈 담는 비법이 오늘날에 이어져 맛이 깊은 멸치젓을 생산해오고 있다.

이렇듯 대변항은 멸치의 싱싱함과 곰삭음이 서로 어울리고 상호 보완되는 곳이다. 잘 곰삭음에는 세월의 더께가 묵직해야 하고, 싱싱함이 빛을 발해야 맛의 깊이도 더해지는 법. 때문에 대변항은 싱싱함과 곰삭음이 공존하는, 인생의 모든 맛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우리 부산, 부산 사람을 닮은 역동적인 포구가 바로 이런 곳이다.

문화공간 수이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