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출간
- 민주주의 언제든지 후퇴 가능
- 나치 등 20세기 역사 사례들며
- 정치 참여 스무가지 조언담아

지난 1월 이슬람권 국민들의 이민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영국 런던을 방문하자 시위 인파가 트럼프 대통령의 그림(오른쪽)을 들고 항의 집회를 열고 있다. 국제신문 DB

피 흘리고 땀 흘리고 사랑을 쏟아 민주주의 제도를 성취해놓고 그것을 '역사의 진전'이라고 믿으면서, 웬만해선 이 시스템이 후퇴하거나 부서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선 안 된다. 이것이 최근 몇 년의 정치 상황을 겪으며 한국인이 배운 교훈이다.

미국에서는 '막 나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이 이런 교훈을 지식인 사회에 넓고 깊게 퍼뜨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일대 사학과 티머시 스나이더(사진) 교수가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이후에 펴낸 책 폭정: 20세기의 스무 가지 교훈은 노예 폐지론자 웬들 필립스의 발언을 소개한다.

"영원한 경계는 자유의 대가이다.(Eternal vigilance is the price of liberty)." "대중의 자유라는 만나(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 신이 주신 음식)는 매일 거둬들여야지, 그러지 않으면 썩는다."

행여 썩을까 봐 날이면 날마다 거둬들인다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경계하지 않으면 민주주의 시스템이 언제 어떻게 폭정으로 다시 바뀌거나 후퇴할지 모른다고 홀로코스트 연구의 권위자 스나이더 교수는 이 책에서 밝힌다.

160쪽 남짓한 책자인 이 책은 날카롭고 묵직하다. 그 이유를 두 가지 꼽을 수 있겠다. 먼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뜻하는 홀로코스트 연구로 잔뼈가 굵은 저자가 생생하고 딱 맞는 사례를 책 곳곳에 심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자가 받아들이기 좋게 '스무 가지 교훈'이라는 간명한 형태로 정돈해놓았기 때문이다.

행간 곳곳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에 관한 저자의 비판적 시선이 스며 있다. 그러나 스나이더 교수는 현재의 정치현실에 관한 쓰린 반성을 감정적으로 드러내는 게 아니라 '차가운 머리'로 정제해 보편성을 부여하고 스무 가지로 정리하는, 인문학자다운 힘을 발휘한다.

스무 가지 교훈 가운데 13번째 항목은 '몸의 정치를 실천하라'이다. "권력은 우리의 몸이 의자에 파묻혀 나약해지기를, 우리의 감정이 스크린 속에서 허비되기를 원한다. 밖으로 나가라. 당신의 몸을 낯선 장소에,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있게 하라.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함께 전진하라."(스나이더 교수가 이 13번째 항목을 정확히 실천한 한국의 촛불혁명을 어떻게 볼지 호기심이 생기는 게 사실이다.)

1번째 항목은 '미리 복종하지 마라'이다. "권위주의는 권력의 대부분을 거저 얻는다. 권위주의가 지배하는 시대의 개인들은, 억압적인 정부가 무엇을 원할지 미리 생각한 다음, 요구가 없어도 자신을 내어준다. 이런 식으로 순응하는 시민은 권력자에게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것이다." 이 항목에 맞는 역사 사례를 함께 소개하는 식으로 책은 구성됐다.

'제도를 보호하라' '앞장서라' '직접 조사하라' 등 현대인이 받아안기에는 좀 버거워 보이는 교훈도 물론 꽤 있다. 하지만 역사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응전하고 사유해 보편성을 지닌 대안 제시까지 나아가는 저자의 행보가 미덥다.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