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척으로 왜함 133척 맞서 싸워
- 명량대첩 승리거둔 불멸의 영웅
- 네 차례 승진 때마다 발령 취소
- 조정의 상이 日 첩자보다 적어

- 고수 몰라보고 뒤틀린 조선사회
- 유가·법가 조화된 인물 충무공
- 장인 제대로 평가하고 알려야

영화 '명량'(감독 김한민·2014년)에서 그린 치열했던 명량해전(1597년) 전투 장면을 기억하실 것이다. 살기등등하게 밀려든 최소 133척의 왜군 선발 함대를 전선 13척뿐이던 이순신 함대가 울돌목에서 쳐부순다. 이 한 번의 전투로 조선 수군은 제해권을 되찾고, 나라의 존망이 걸린 정유재란의 전세를 단번에 뒤집는다. 왜군 선봉대장 구루시마 미치후사는 전사하고, 거물급 왜군 총대장 도도 다카도라마저 부상을 당한다. 일본 측 기록으로 명량해전은 오전 8시께부터 오후 6시께까지 하루 내내 이어졌다.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둔 이 전투에서 아군 피해는 단지 전사 2명, 부상 3명으로'난중일기'에는 나온다.

1597년 이순신 함대의 명량해전을 그린 영화 '명량'(감독 김한민)의 한 장면.

내친김에 기록을 더 살펴본다. 1592년 부산포해전에서 이순신 함대는 '적의 소굴'이 된 부산포를 과감하게 공격한다. 화준구미, 다대포, 절영도 등지에서 왜적 전선 24척을 깨뜨린 이순신 함대는 부산포에 이르러 하루 내내 포격을 퍼부어 왜선 100여 척을 부순다. 이때 아군 피해는 전사 6명, 부상 25명.(한국민족문화대백과)

도현신은 저서 '원균과 이순신'(비봉출판사·2008년)에서 이렇게 밝힌다. 1592년 옥포해전에서 왜적 전함 26척 격침(왜군 2800여 명 전사 추산)을 비롯해 합포, 적진포 해전에서 왜군 수천 명을 사살했는데, 아군 전사자가 한 명도 없다. 한산도해전에서는 2, 3시간 전투에서 왜군 와키자카 야스하루 함대는 9000명에 이르는 왜병이 전사하거나 행방불명됐으나 아군의 인명 피해는 전사 10여 명에 그쳤다. 전선의 손실은 없었다.

오는 28일은 이순신 장군 탄신일이다. 이 뜻깊은 날을 맞아 그때 기록을 찾아 읽고 또 읽을수록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 하는 감탄과 파도 파도 새롭게 볼 내용이 나오는 장군의 깊이와 넓이에 고개가 숙여진다. 하지만 이 글의 목적은 이순신의 위대함을 되새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순신과 같은 절정의 고수(高手)를 알아보지 못하고, 하마터면 속절없이 잃을 뻔한 당시 사회의 뒤틀린 안목과 단견을 비판하고자 한다.

작가 김훈이 소설 '칼의 노래'에서 따로 정리한 충무공 연보를 보면, 1590년 이후 이순신은 네 차례 승진하지만, 사간원 등 조정의 반대로 네 차례 모두 승진 발령이 취소된다. 승진이 너무 빠르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난중일기'를 보면, 명량해전의 엄청난 승리를 놓고 선조는 이순신에게 '은자 20냥'을 상으로 내린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이순신 장군을 모함해 삼도수군통제사에서 끌어내리려는 간계를 부린 일본 첩자 요시라에게 조선 조정이 내린 상은 '은자 80냥'이다.

이순신 연구가들이 '장군의 위대함이 결국 어디에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선공후사(先公後私)'라는 취지로 답변한 것을 읽은 기억이 있다. 나는 그때 반발했다. 이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선공후사의 틀로는 그의 총체와 실체를 거의 보기 힘들다. 먼저, 도리와 애민을 강조하는 유가와 천하에 대한 비전을 모색하면서도 엄정한 신상필벌을 강조한 법가가 절묘하게 조화된 인물로서 이순신을 봐야 한다. 총체성이 필요하다. 예컨대 이순신 장군이 치른 전쟁은 '손자병법'의 세계와 한 치 어긋남 없이 들어맞는다. '싱크로율 100%'다. 그러니 이순신을 알려면 '손자병법'을 알아야 한다. '손자병법'을 알려면 중국 제자백가를 통으로 공부해 그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간단한 과제가 아니다. 이 일은 이른바 전문가들이 먼저 해서 사회에 알려야 한다.

지난 번 이 칼럼에서 '장인 없는 사회에서 고수 나오랴'(본지 4월11일 자 23면)를 쓰고 난 뒤 독자 몇 분이 그 글의 '약한 고리'를 지적해주었다. 장인과 고수를 제대로 평가하고, 알아보고, 사회에 알리는 일의 일차적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그 일차적 책임과 '안목'을 대중에게 떠넘길 수 있는가 하는 지적이 요체였다. 그렇지 않다. 그런 일은 먼저 전문가, 학자, 지자체, 언론 등이 맡는 게 맞다. 그것은 책임이며 사회의 역량을 나타내는 일차적 지표다. 그리고 이를 점점 널리 공유하며 사회적 안목을 높여야 한다. 이 글은 독자의 고마운 지적에 관한 반성이자 답변이다.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