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 아이들에게 들려주고픈 얘기를
- 여러 권의 동화책으로 써내
- 어린이는 옛 이야기 듣듯 즐겁고
- 어른은 옛 추억에 젖어드는 글

달걀 가격이 올랐다, 안정세다…. 이런 보도를 보면서 생각나는 책이 있었다. 박선미의 '달걀 한 개'이다. 닭을 키우고, 달걀을 귀하게 여겼고, 달걀 한 개에도 행복했던 어린 날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어린이도 재미있어할 책이지만, 어른에게는 어릴 적 추억을 되살려준다. 그런데 세월이 많이 달라졌다. 가격이 좀 오르긴 했지만, 예전과는 달리 달걀은 흔하게 볼 수 있다. 달걀은 우리 밥상에서 대체할 수 없는 조연이다. 그래서 가격이 주요 관심사가 된다. 그렇다. 가격이 올랐든, 안정세이든, 달걀은 변함없이 귀한 먹거리다.

	박선미 동화작가가 '달걀 한 개'의 배경이 된 경남 밀양시 하남읍 백산마을에 있는 고향집 텃밭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동화작가보다 '이야기 선생님'

박선미는 1963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부산교대를 졸업하고 30여 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 중이다. 그는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우리 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 공부를 계속했다. 교과서 밖 살아있는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는 책을 여러 권 썼다. 본인이 자라면서 겪은 일을 입말로 생생하고 재미나게 풀어쓴 책들이다.

'달걀 한 개'(2006)를 비롯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친구를 추억하며 아이들이 자라면서 한 번쯤은 맞닥뜨리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들려주는 '산나리'(2007), 아이들 마음속에 있는 화를 욕 시험을 통해 다 풀어내는 '욕시험'(2009), 1학년 아이들이 친구와 세상을 알아가는 교실 이야기 '학교 참 좋다 선생님 참 좋다'(2010), 초경을 맞은 여자아이에게 이제는 어른이 되는 거라고 찬찬히 일러주는 '앉을 자리'(2015), 자신이 좋아하는 권정생 선생의 이야기를 담은 '빌뱅이 언덕 권정생 할아버지'(2016).

이 책들은 모두 도서출판 보리에서 나왔다. 어린이들이 읽으면 옆에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정겹고, 어른들이 읽으면 지난 시절이 환히 떠오르는 그의 책은 이야기 문학의 자리를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책을 쓰고 있는 박선미는 '동화작가' 보다는 '이야기 선생님'으로 불리고 싶어한다.

■달걀 한 개로 행복했던 시절

	달걀 한 개- 박선미 지음 /보리 /2006

'달걀 한 개'는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이다. 밀양시 하남읍 백산마을과 지금은 폐교가 된 백산초등학교가 배경이다. 그와 함께 백산마을을 찾아가보았다. 원래 있던 옛집 자리에서 조금 옮겨 새로 지었다는 그의 친정집에 들어서자 상추, 양배추, 시금치 등을 심은 텃밭이 보인다. 담벼락 옆은 모과나무와 보리수가 지킨다. "어머니가 땅을 그냥 놀릴 수 없다고 채소를 가꾸셔서 마당이 점점 좁아지고 있어요." 그 마당에서 암탉이 알을 낳는 장면을 쓴 '달걀 한 개'의 장면이 연상됐다.

책에는 이렇게 묘사됐다. "탱자나무 울타리에서 흙을 파헤치고 놀거나, 담장 아래서 햇살을 쬐고 놀다가 알 낳을 때가 되잖아. 그러면 살찐 궁뎅이를 실룩거리면서 알 자리로 바쁘게 달려가.(…)궁뎅이에 힘을 한번 준다 싶어. 그러면 하얀 알이 쑤욱 빠져 나와." 실감 난다. 요즘은 보기 힘든 장면이다. 달걀이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상품인 줄 아는 아이들도 있을 정도이다.

달걀은 시원한 곳에 모았다가 장날에 내다 팔았다. 닭이 품은 알은 병아리가 됐고, 닭이 됐다. 배 타는 삼촌이 오고, 시집간 고모가 오고, 공부하러 간 오빠가 오면 한 마리씩 고아 먹였다. 그러니 달걀이 얼마나 귀했을까. 날이 더워져 달걀을 모아두기 어려우면 할머니 밥상에만 달걀찜이 올랐다. 할머니가 조금이라도 남겨주지 않을까 침을 꼴딱 삼킬 수밖에. 책 속의 "할매가 넘겨 주는 쌀밥을 달걀찜에 비벼 먹었는데, 입에서 씹히지도 않고 목구멍으로 바로 넘어가는 그 맛이란"이라는 대목에서 그 마음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아버지께 갖다 드리라는 달걀부침의 흰자 주위를 야금야금 뜯어먹는 모습은 그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슬며시 웃음이 날 법한 추억이다.

어느 날은 수술하고 힘없이 돌아온 선생님을 위해 반 아이들이 달걀 두어 개 씩 들고 학교로 온 일도 있었다. 선생님은 그 많은 달걀을 어떻게 했을까. 학교 뒷동산에 큰 솥을 걸고 달걀을 모두 삶아 아이들과 고루 나누어 먹었다. 얼마나 행복했을까. 아픈 선생님을 위해 귀한 달걀을 보낸 학부모의 마음, 달걀을 아이들과 함께 다시 나누어 먹는 선생님의 마음, 집에 있는 할머니나 동생도 달걀 먹고 싶어 할 텐데 하면서 삶은 달걀을 한 알씩 챙겨가려는 아이들 마음. 귀하고 예쁜 마음이 책에 가득하다.

달걀을 삶아 먹던 학교는 폐교가 되었지만, 청년회 활동과 마을의 문화 중심지로 거듭났다. 나무가 아름드리 서 있는 뒷동산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옛 추억의 장소에 선 박선미는 환하게 미소 지었다. "학교 급식에 나온 삶은 달걀을 제대로 먹지 않는 아이들에게 작은 달걀 한 개라도 귀한 음식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어서, 따뜻했던 제 어린 시절을 들려주고 싶어 이 책을 썼지요."

그는 어른이 아이에게 '가르치는' 형식이 아니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한다. 그것이 오늘도 그를 '이야기 선생님'의 길을 걷게 한다.

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