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가 실시한 2016학년 논술고사의 제시문 중 하나로 백인 남성과 결혼을 통해 열등 콤플렉스를 극복하려 했던 '마요테'란 흑인 여성의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 제2장에서 부분 발췌한 지문이었습니다. 흑백 인종 갈등과 신분 상승에 대한 시대착오적인 지문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식민과 비식민, 지배와 억압의 정치 심리학적 카테고리로 본다면 한국 청소년에게 충분히 던져봄직한 좋은 지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인도 제도의 하나인 마르티니크에서 흑인 혼혈로 태어난 파농은 프랑스에서 의학과 심리학을 공부한 후 알제리로 건너갑니다. 프랑스 식민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알제리의 독립투쟁에 뛰어든 파농은 그곳에서 식민지인들의 심리에 대한 연구를 함께 시도합니다. 그때의 경험이 바탕이 된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그가 스물일곱이던 1952년에 쓴 처녀작입니다. '식민주의 심리학' 연구와 저작의 효시로 상징되는 이 책은 아프리카의 문학·철학·심리학 등 학문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반세기가 흐른 지금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의 포스트콜로니얼리즘(탈식민주의) 연구의 필독서가 되었습니다. 해방과 독립 이후에도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남은 일제 식민주의적 잔재와 열강의 이념과 서구 문화로 발아된 신식민주의의 지배에 시달리는 지금의 우리에게 이 책은 다른 대륙, 다른 인종의 이야기로만 읽히지 않습니다.
'흑인은 인간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책의 서문에 실린 파농의 자기 가학적 전제는 꽤 충격적입니다. 그는 세상에는 황폐하고 건조한 비존재의 영역이 있고 그곳에서 진정한 반역은 시작되지만 흑인들에게 반역은 역부족이다, 라고 덧붙이며 진정한 해방은 유색인 그 자신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말합니다. 식민지인이 자신의 흑인성 또는 원시성을 폐기하고 백인화되어 가는 것은 극복이 아닌 굴복이며, 내재화되고 육화된 열등감은 식민지인 스스로가 조장해 왔음을 인정하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흑인들의 자발적 각성 없이는 피지배인, 식민지인의 열등 콤플렉스와 자기 폄훼를 영원히 극복할 수 없음을 그는 거듭 강조합니다.
파농은 이 책이 프랑스 백인과 앙띨레스 흑인의 갈등에 국한된 경험과 관찰이라고 그 한계를 밝힙니다. 그리고 흑백 인종 간의 악순환을 갈무리할 방법을 찾는 것이 책을 쓴 목적이라고도 말합니다. 하지만 유색인으로서, 식민지인으로서 씁쓸한 공감이 절로 일어나는 걸 보면 지구 반대편 남의 역사만은 아닌가 봅니다.
8장 결론에서 파농은 말합니다. '나, 유색인으로서 바라는 것은 이것 하나뿐이다. 도구가 인간을 소유할 수 없다는 것. 한 인종에 의한 다른 인종의 노예화는 반드시 중단되어야 한다는 것. 인간, 그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내가 그를 찾아내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것 뿐이다.' 1961년, 염원하던 알제리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파농은 백혈병으로 숨을 거둡니다.
흑과 백, 지배와 피지배, 식민과 비식민의 아프리카 역사를 식민주의 심리학으로 연구했던 파농의 시각으로 바라본 지금은 어떨까요. 미와 추, 부와 빈곤, 갑과 을. 현대에도 여전히 우월과 열등, 돈과 권력의 있고 없음으로 차별할 수 있는 상황은 무수히 존재합니다. 그런 행위의 존속은 비인간화를 합리적으로 조직화할 뿐입니다.
인간의 가치를 존중하고 긍정적 작용의 존재가 되며 사유하고 행동하는 인간이 되는 것. 파농은 그것이 모든 인간의 일차적 의무라고 말합니다. 과연 우리는 그 의무를 다하고 있을까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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