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능 기부=공짜'라는 인식 탓
- 지역 예술·문화인 처우 소홀
- 요청시 오용 말고 존중부터
- 자선공연단체 '유코' 모범 사례
- 기부금 모아 아동 수술비로

부산 문화계에 '딱히 현안은 아닌 것 같은데, 실제로는 현안이 아니었던 적이 한 순간도 없었던' 현안이 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재능기부다. 현안이 아닌 듯한 현안이란 무슨 뜻인가? 많은 이가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만, 하도 안 고쳐지니 그냥 잊고 지내려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예술·문화인들은 이에 관해 별로 말을 안 한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대로 있다. 이른바 현안 아닌 듯한 현안이다.

	재능기부와 자선 음악 활동을 꾸준히 펼치고 있는 부산의 오케스트라 유코(UKO)의 연습 장면. 국제신문 DB

지역의 예술·문화계에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매우 바람직한 재능기부의 형태가 있다. 개인이나 단체가 정말로 스스로 원해서 꾸준히 재능을 기부하는 경우다. 지역에서 소문이 난 사례를 꼽아보면, 유코(UKO·United Korean Orchestra) 같은 단체가 먼저 떠오른다. 유코는 2006년 창단한 뒤로 10년 동안 자선 공연을 해 기부금을 5억 원 넘게 모았고 난치성 질환을 앓는 어린이 200여 명이 수술을 받도록 도왔다. 이쯤 되면 앞뒤·안팎 따질 것 없이 이들의 활동은 재능기부고, 유코는 훌륭한 재능기부 단체다.

진짜 문제는 알게 또는 모르게 재능기부가 '오용'되는 사례가 많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런 오용은 재능기부의 핵심은 결과가 아니라 '관계'에 있다는 것을 모르거나 무시하는 데서 온다. 꽤 비싼 강의료를 언제든 받을 수 있지만, 자기를 꼭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면 먼 길 마다치 않고 전국 어디든 달려가 기꺼이 무료 강연도 하는 인문학 분야의 학인(學人)은 이런 경험담을 들려줬다. "지인을 거쳐 재능기부 강연 부탁을 받고 KTX 타고 한 학교에 갔더니 막상 학생들은 어떤 주제의 강연이 있는지 전달도 못 받은 채 한 명도 필기구나 노트도 가져오지 않고 멀뚱히 앉아있더라고요."

최근 만난 공연예술인은 "지원금 받고 만든 공연이 망해버리니까 우월한 위치에 있는 기획자가 출연료를 한 푼도 안 주면서 봉사(그러니까 재능기부)한 셈 치라며 입을 닦았을 때 받은 상처가 아직도 가슴에 있다"고 했다. 젊은 예술·문화인일수록 계통 없이 들이대는 재능기부 요청에 반감이나 허탈감이 높은 경향은 확실히 있다.

딱 떨어지는 사례는 아니지만,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어떤 기관이었는지는 잊었지만, 전화로 받은 요청의 요지는 이랬다. "신문을 보니 글을 자주 쓰시던데 강연을 부탁하고 싶어요. 근데 어떤 강연을 해줄 수 있으시죠?" 그때 느꼈다. 아! 강연을 요청한다면서 정작 상대에 대한 아무런 존중도 관심도 없구나. 아득한 절망감 같은 게 가슴을 치고 지나갔다. 잘 자라날 수 있었을 '관계의 싹'이 꺾여버린 느낌이었다.

자! 그래서 이 글에서 주장하는 게 무엇이냐? 재능기부는 결과가 아니라 관계이며 과정이다. 대상자의 '재능'에 대한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존중이 먼저다. 그러려면 그 내용을 알아야 한다. 그 대상자는 그 능력을 쌓기 위해 평생 노력했을 것이다. "당신이 가진 재능과 전문성을 잘 알며 깊이 존중한다. 우리는 그것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여러 상황으로 (충분히 대가를 드리지 못하니) 그 재능을 기부해주시기를 요청한다." 진정으로 나오면, 거절할 예술·문화인은 없을 것이라 단언한다. 예술인은 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절로 쏠리는 사람이다.

그렇게 서로 존중하며 차근차근 성사된 재능기부 프로그램의 참여도와 만족도가 낮을 리 없다. 기부받은 쪽도 기부한 쪽도 내면이 충만해지는 멋진 경험을 하게 되고, 이는 더 많은 재능기부로 확산된다. 더 좋은 '관계'가 맺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재능기부는 관계'라는 명제의 핵심이다. 재능기부는 '수공업'이다.

또 한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재능기부를 활성화하려면, 예술·문화인의 활동에 대한 알맞은 처우가 전제 조건이다. 지역사회에서 예술·문화인의 재능은 실상 그들의 '생계'일 때가 대부분이다. 그 생계를 재능기부의 이름으로 더 어렵게 해선 안 된다. 젊은 예술인들이 힘겨워하는 현실도 바로 '생계'의 자리에 재능기부를 들이미는 일부 관계자의 행태에서 온다. 예술·문화인의 활동에 알맞은 처우를 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이 먼저이며 전제 조건이다.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