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씨앗'(2017·사진)은 쉽사리 헤어 나올 수 없는 폭력의 굴레에 관한 이야기이다. 군 복무 중인 이주용(이가섭) 일병은 분대원과 단체로 외박을 나가지만, 그중 누군가 고참 박대웅 병장의 부정을 상부에 고발했다는 일이 알려지면서 분위기는 험악해진다. 내부고발자로 의심받은 후임병 박필립(정재윤)이 선임병으로부터 폭행당해 이가 부러지자 주용은 매형인 수남의 병원에서 치료해주고 복귀하기로 한다. 마중 나오기로 한 누나는 연락이 되지 않고, 다급해진 주용은 직접 매형과 누나를 찾아간다. 주용을 기다리고 있던 건 가정폭력의 희생양이 된 누나의 모습이었다.
지난 6일 폐막한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영화 경쟁 부문 대상을 차지한 이 작품에서 임태규 감독은 군대의 현실에 관한 이야기를 넘어 한국 사회에 만연한 폭력의 구조를 탐구하고자 한다(이 영화는 극장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중반까지 폭력이 일상화된 군대 내부의 풍경을 묘사하는 영화는 주용이 필립을 데리고 병원을 찾는 시점부터는 가정 폭력을 암시하며, 각기 다른 양상의 폭력이 실은 같은 연원을 지니고 있음을 꼬집는다. 진실은 상관없이, 폭력을 행사해 자백을 받아내려는 선임병과 순종하지 않는 누나를 구타하는 매형, 피해자이면서도 도리어 가해자 편을 들어 폭력의 굴레 안에 머무르려는 필립과 누나의 모습이 데칼코마니처럼 고스란히 포개진다. 가급적 후임 필립을 보호하려는 주용 또한 종국에는 마찬가지로 폭력에 의지하며 같은 길을 걸어갈 것이다.

'폭력의 씨앗'은 폭력에 의해 수직적 위계가 구조화되고 질서의 원리가 되는 악순환, 민주화를 겪고도 사라지지 않고 연연히 이어지는 군사 문화의 영향이 특수한 집단을 넘어 사회적 일상으로 만연한 살풍경을 섬뜩하게 들춰내 보인다. 한국 남성 일반의 인성 구조에 심겨 있는 전사 기질. 20대 청년기의 일부를 군대 조직에 바치면서 거침, 난폭함, 비합리성, 악바리 근성, 상명하복 등 전사적 심성을 훈육 받은 남성들은 사회와 가정으로 돌아와서도 대화가 아닌 폭력에 의지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군인의 습속을 버리지 못한 채 살아가지 않던가. 대학에서 신입생을 대상으로 군기 잡는 복학생의 행태 또한 실은 오랜 군사주의 문화의 연장 선상에 놓여있다.

1960~70년대 진행된 한국 사회의 근대화는 1930~40년대의 독일, 일본처럼 군사주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온 사회의 병영화. 군대를 거쳐 간 시민은 사회에서는 산업 전사, 또는 반공 투사의 구호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획일적 로봇, 전사적 신체로 개조되었다. 명령에 따르는 수동적 신체가 되도록 개인성을 박탈하는 과정에서 폭력은 일상화되었으며, 이처럼 군사주의적 심성이 주입된 마당에 민주주의와 개인주의의 전통은 깊이 뿌리박을 수 없었다.

하길종은 '바보들의 행진'(1975)에서, 윤종빈은 '용서받지 못한 자'(2005)에서 군사주의 문화가 팽배한 한국 사회를 영화적으로 소묘해냈다. 그리고 지금 다시 '폭력의 씨앗'이 도착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가 왔지만 수십 년이 지나도 폭력과 위계로 갈등을 봉합하는 한국 사회의 저변은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주용이 부대에 복귀하기 전 누나에게 묻는다.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나갈래, 여기 있을래?"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젊은 작가의 외침이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