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교 시절 별명이 '책벌레'
- 인생의 등불이자 스승이었던
- 책읽기를 알려주고 싶었다

- 시인으로서 문학교사로서
- 함께 책을 읽어나간 게 30년
- 처음에는 싫어하던 아이들도
- 열정을 품고 시를 즐기더라

- 아이들의 변화가 나에게
- 문학에 대한 믿음을 주었고
- 그 과정을 다시 책에 담았다

학창시절 시를 배울 때, 별 재미가 없었다. 시의 주제, 소재 등을 받아 적고 외우다 보면 무얼 말하는 시인지 점점 알 수 없어졌다. 소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감동을 저만치 미뤄두어야 했기에 답답해하거나, 문학에서 점점 멀어지는 친구들도 있었다. 왜 좀 더 재미있게 문학을 만날 수 없었을까. 그렇게 가르칠 수밖에 없었던 교사도 답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 풀이 교실에서도 문학 감상의 길을 열어가는 교사들이 있었다. 국어교사인 조향미 시인은 교실에서 재미있고 의미 있는 문학수업을 이끌어낸다.

조향미 시인은 1961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다. 부산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86년 무크지 '전망'으로 등단했다. '그 나무가 나에게 팔을 벌렸다' '새의 마음' '길보다 멀리 기다림은 뻗어 있네' 등의 시집을 냈다. 그에게 시는 삶의 등불이었고, 자신의 삶을 시에 담아왔다. 시인이며 국어교사인 그가 문학을 가르쳐온 지 30년이 넘었다. 그 세월 동안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나누어 온 문학 이야기를 담은 책이 '시인의 교실'이다.

■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는다

조향미 시인(만덕고 국어교사)이 부산 북구 만덕고 교정에서 자신의 산문집 '시인의 교실'을 펼쳐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여러 학교로 전근 다니는 동안에도 끊이지 않던 시인의 교실은 현재 조향미 시인이 근무하는 만덕고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만덕고 학생들이 쉬고 싶을 때마다 찾는다는 작은 공원 같은 쉼터에서 그를 만났다. 학교 건물이 그 공간을 큰 울타리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나뭇잎은 연두에서 초록으로 짙어지고 있고, 학생들이 직접 키우는 상추도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벤치에 앉은 시인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 어디선가 "선생님, 멋져요!" 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국어 선생님을 알아본 학생들의 응원이었다. 그 순간 시인이 학생들을 올려다보며 활짝 웃어 보였다. 인터뷰 동안 그가 보여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별명이 책벌레였다. "책은 내 인생에서 가장 가까이 있었던 친구이고, 스승이었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언제 어디서나 늘 좋은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죠. 하지만 책은 마음만 먹으면 쉽게 만날 수 있어요. 책은 내 인생의 등불이고, 희망이었습니다. 그런 걸 아이들에게도 주고 싶었어요. 책을 읽을 수 있으면, 읽는다면, 힘든 상황에 놓여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어요." 그것이 학생들과 함께 책 읽기를 시작한 이유다.

학생들에게 책을 읽히기 시작한 건 1986년 부산진여상부터다. "막 고등학생이 된 1학년 아이들에게 '어린 왕자'를 읽게 했어요. 독후감도 쓰게 하고, 과제도 주고…. 그런데 책을 읽히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더라고요. 우리나라 교육 현실은 중고등학교는 문제풀이 중심이고, 초등학교까지만 읽기가 가능한 상황이잖아요."

국어 교과에는 문학수업이 포함돼 있기에 책 읽기, 시 읽기를 수업 중에 했다. "아이들이 좋은 시와 소설을 읽고, 신문도 읽기를 바랐어요. 그러다가 문득 내가 작품을 고르고, 읽히고…, 아이들 입에 넣어주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아이들이 스스로 읽고,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필요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시를 정해 해설지와 함께 아이들에게 주곤 했다. 그런데, 제공하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아이들에게 스스로 시를 찾게 했다. 좋은 시를 찾아서 공책에 베껴 쓰게도 했다.

■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책

시인의 교실 /조향미 지음 /교육공동체벗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아이들도 1년쯤 지나면 변화를 보였다. 그 변화의 기억은 '시인의 교실' 속의 글 '나도 시를 와싹 깨물어 먹었으면'에 실려 있다. "시와 문학이 사람을 얼마나 성장시켜 주는가를 크게 깨닫게 해 준 학생이 있다. (중략) 무슨 말을 하면 삐딱하게 받아들였다. '돈과 물질도 중요하지만, 사람에게 진짜 중요한 것은 마음이고 영혼이다.' 특히 이런 말에 녀석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건 돈이에요. 돈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말은 위선이에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듯 보였다." 그랬던 학생이 1년이 지나자 감수성이 풍부하고 순수한 열정이 가득한 소녀가 되었고, 시를 즐기고 있었다. 조향미 시인은 그 소녀를 "교육이란 변화와 성장이란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해 준 아이, 문학작품을 그냥 읽기만 해도 저절로 마음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제자로 기억한다. 그 제자의 독후감을 고이 간직했다가 이 책에 수록했다. 그리고 그 독후감에 "문학교사, 시인으로서의 나에게 문학에 대한 믿음과 용기를 새삼스럽게 준 글"이라는 감상을 놓아주었다.

"교과서에 실려 있지 않지만 좋은 시, 소설이 많습니다. 그 작품을 읽으면서 느꼈던 나의 감동을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아이들이 어리고 경험이 없어서 알까 싶었지만, 선생님의 감동이 전염될 때 아이들도 함께 감동하더군요."

그는 교육 현장에서 교사와 학생이 어떻게 문학으로 만나고 소통하는지에 대해 공유하고 싶어 '시인의 교실'을 썼다고 말했다. 문학을 중심에 두고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하나의 세계가 시인의 교실을 가득 메운다. 마음의 키가 자랐던 아이들은 세상으로 나와서도 기억하지 않을까. "얘들아, 이 책 함께 읽자"고 말했던 국어 선생님을.

책 칼럼니스트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