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동강 서식 바위겟과의 방게
- 봄철 잡아 염장하는 '밀기젓갈'
- 보릿고개 시절 주 수입원이자
- 여름입맛 돋우는 귀한 밑반찬
- '오도독' 거려 식감 좋고 고소
- 국물은 배 아플때 특효약 여겨

낙동강 하구에 사는 지인들이 점심을 먹자고 해 낙동강을 건넌다. 을숙도를 지나 약속 장소의 식당에 들어서니 '봄철 낙동강 별미 음식'들이 떡 하니 한 상 차려져 있다. 면면을 보니 봄철 낙동강 인근에서 잡히는 식재료가 총동원되었다.

'개맛'으로 끓여내어 진하고 시원한 맛이 일품인 '개맛탕'과 밥에다 쓱쓱 비벼 먹으면 최고의 입맛을 제공하는 '갱갱이젓' 그리고 무더운 여름 한 철 짭조름하고 개운하게 입맛 살려주는 '밀기젓갈' 등이 그것이다.

그중 밀기젓갈은 봄철에 젓갈을 담아 여름 내내 먹을 수 있는, 낙동강 사람들의 여름나기용 저장 음식이다. 강 하구 갈대밭에 서식하는 게의 한 종류인 '밀기'를 염장한 것으로, 부산에서는 을숙도가 주 서식지이다. 을숙도를 중심으로 낙동강 갯벌에는 여러 종류의 게들이 서식하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져버린 낙동강 '참게'를 비롯하여 방게, 농게, 도둑게, 말똥게, 엽낭게, 칠게 등이 그들이다.

낙동강 을숙도 일대에서 나는 '특산물'로 밀기(방게)로 담근 밀기젓갈. 도톰한 밀기가 오도독 씹히면서 짭조름한 맛을 낸다.

■바위겟과 '방게'가 을숙도 '밀기'

이 가운데 봄철 '밀기젓갈'을 담아내는 밀기가 바로 바위겟과의 '방게'이다. 이 방게를 낙동강 사람들은 '밀기'라 하는데, 몸집에 비해 집게다리가 적당히 크고 통통하니 오지다. 그래서 젓갈로 먹을 때 잘 익은 집게다리가 '오도독'거려 식감도 좋고 구수해 맛이 좋다.

'방게'는 등딱지의 길이와 폭이 2.5~3.5cm 정도이고, 어두운 청록색을 띤다. 해변에서 가까운 강 하구 모래에 땅을 파고 사는데, 갈대밭 주변으로 많이 서식한다. 부산에도 을숙도를 중심으로 다량 서식하고 있다. 5~7월에 산란한다. 밀기는 겨우내 땅속 깊이 숨어 있다가 '깔촉(갈대 순)'이 올라오는 봄에 집에서 기어 나온다. 그들의 주 먹이가 '갈대 순'이기 때문이다. 특히 여름에는 캄캄한 밤에 무리지어 나와 먹이 활동을 하는데, 한때 횃불을 들고 갈대밭을 뒤지면 갈대를 타고 오르는 밀기 행렬을 쉬 볼 수가 있었다고 한다.

밀기(방게).

보릿고개 시절, 이 '밀기젓갈'은 낙동강 사람들의 주 수입원이었다. 당시 그들은 지천이던 밀기로 젓갈을 담아 낙동강 상류의 마을을 돌아다니며 판매했다. 밀기젓갈을 팔아 봄철 가족의 끼니를 연명했던 것이다. 밀기젓갈 상인들은 낙동강 따라 뱃길로 밀기젓갈 팔러 가는 것을 '웃녘 간다'고 했다. 항아리에 가득 담긴 밀기젓갈을 돛배에 싣고, 낙동강을 거슬러 삼랑진 지나 밀양 수산, 명례, 오산, 유동 등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밀기젓갈을 팔았다.

'웃녘'으로 올라갈수록 밀기젓갈은 귀하게 소용되기에 그 이문도 컸다. 그래서 '웃녘'에서 밀기젓갈은 부잣집에서만 먹을 수 있던 음식이었다. 때문에 젓갈상인들은 해마다 단골 부잣집부터 먼저 들렀는데, 그때마다 밀기젓갈을 손꼽아 기다리던 주인 내외의 큰 환대를 받았다고 한다. 영진수산 김천열(56) 대표는 "내 나이 여섯, 일곱 살 때 어무이랑 아부지가 밀기젓갈 장사를 했심니다. 풍석배(돛배)에 밀기젓갈을 싣고 낙동강 포구마을마다 '께 사이소, 께 사이소' 외치며 다라이(대야)의 밀기를 팔곤 했었지예."라고 회상했다.

■도시락도 책임졌던 귀한 별미

낙동강 봄철 별미의 하나인 갱갱이젓. 밥에 쓱싹 비벼 먹기 좋다.

보리가 익을 때인 '보리누름' 철에 올라가 한 달 여 밀기젓갈을 팔았는데, 대금은 갓 수확한 보리쌀로 받아 양식을 장만했다. 당시 밀기젓갈 작은 종지 하나에 겉보리 세 되를 받고 팔았다 하니, 보릿고개 때의 밀기는 한 가족을 먹여 살리는 '참 고마운 식재료'였다. 이렇게 팔려나간 '밀기젓갈'은 주인 가족의 귀한 밑반찬이었을 뿐 아니라 집안일을 맡아 하던 일꾼들에게도 특별식이었다. 큰 일꾼은 밥 한 끼에 밀기젓갈 두 마리. 작은 머슴은 한 마리를 반찬으로 줬다고.

밀기젓갈은 짜면서도 짙고 구수한 맛 때문에 명지 사람들에게는 '게 다리 한 개에 밥 한 숟갈' '게젓 한 마리에 밥 한 공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밥상에 없어서는 안 될 찬이기도 했다. 특히 작은 밀기가 맛있고, 알을 밴 암게가 더 월등히 맛있단다. 밀기젓갈은 주로 봄에 담가 여름에 먹는 음식이다.

그 때문에 봄철에 밀기를 잡는데, 예전에는 을숙도 인근 모래밭에 산재한 '게 구멍'을 삽으로 크게 떠서 잡았다. 대여섯 삽을 떠야 겨우 한 마리 잡을 수 있었다. 그랬기에 보릿고개 때 밀기 잡으러 가면 삽질조차 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 정도로 밀기는 노동 집약의 식재료였다.

개맛으로 끓여낸 개맛탕.

밀기젓갈을 담그려면 우선 염장을 해야 한다. 항아리에 그날 잡은 밀기를 넣고 소금을 넉넉하게 끼얹는다. 그리고 다음날 잡은 밀기를 그 위에 얹고 재차 소금을 끼얹는다. 이런 방식으로 하루 5~7㎏ 잡은 밀기를 계속 염장한다. 그렇게 염장한 밀기는 한 달 뒤쯤부터 먹을 수 있는데, 2~3년 동안 보관해 먹을 수가 있다.

이렇게 만든 밀기젓갈은 꽁보리밥에 변변한 반찬 하나 없어도 두어 마리면 밥 한 공기 금세 비우는 밥도둑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도시락에도 밀기젓갈 대여섯 마리 반찬으로 싸가기도 했다는데, 밥 위에 얹어 가기에 밥 먹을 때 짭조름하고 고소한 맛이 입맛을 크게 돋웠다고. 밀기젓갈이 제대로 맛이 들었는지는 다리를 보면 안단다. "통통한 게다리가 몸에 딱 붙어있어야 맛이 든 겁니다. 다리를 딱 붙이고 있으면 '참 잘 익었다.' 그러지요." 명지사람 이성만(73) 씨의 말이다. 특히 게장 국물이 맛있는데, 보리밥을 밀기젓갈 국물에 쿡 찍어먹으면, 간간하면서도 고소한 맛에 그냥 밥이 넘어갔다.

■바글대던 밀기가 그리워지는 요즘

낙동강 사람들은 이 밀기젓갈 국물을 집집마다 가정상비약으로도 활용했다. 2~3년 정도 묵은 밀기젓갈 국물은 배 아플 때 특효였다. 배 아플 때 한 종지 떠먹으면 씻은 듯이 나았단다. 위약 효과도 있겠지만 소금이 위 진정효과가 있으니 아주 없는 말은 아닌 듯싶다.

요즘 명지 동리 항에 가면 밀기 잡이 어부 두어 명이 밀기를 잡는다. 주로 6~7월 두어 달 낙동강 하구에서 밀기 잡이를 하는데, 먹이 활동이 왕성한 산란기 즈음의 전후이다. 삭힌 고등어 토막을 넣은 통발을 여러 개 강 하구에 던져두면, 고등어 미끼를 먹기 위해 밀기가 바글바글 통발로 모여든다. 그러나 이도 개체수가 줄어 봄철에 한해 겨우 명맥을 잇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는 낙동강 하구 사람들만 별식으로 귀하게 먹는 밀기젓갈. 이마저도 사라져가는 추세라 마음이 무겁다. 모래톱을 자유자재로 기어 다니던 시절의 밀기가 더욱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문화공간 수이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