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긍정적인 밥' 함민복 시인과
- 강화도 문학기행을 떠났다

- 독재도, 정보제한도 없는 시대
- 사람들은 공감을 원하는데
- 똑똑해진 독자를 잡아끄는 건
- 더 깊고 진실한 사유와 모색

얼마 전 강화도에 가서 함민복(55·사진) 시인을 만나고 왔다. 국어 교과서에 시가 여러 편 실린 시인이니 자기 자랑을 좀 해도 될 텐데 그는 소박하고 부드러웠다. 함 시인을 바로 곁에 두고 그의 시 '긍정적인 밥'을 읽는 느낌은 뭐랄까 '시와 시인이 참 닮았구나' 하는 흐뭇한 발견이었다.

함민복 시인 문학기행에서 만난 강화도의 갯벌. 함민복 시인의 많은 시가 이런 강화도의 자연에서 태어났다.

詩(시) 한 편에 삼만원이면 /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 시집 한 권에 삼천원이면 /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 국밥이 한 그릇인데 /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을까 /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 시집이 한 권 팔리면 / 내게 삼백원이 돌아온다 / 박리다 싶다가도 /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긍정적인 밥'은 이렇게 시작하고 끝난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가슴 속에 들어온 이 시가 좀체 빠져나가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이것이 감동의 첫 단계인 공감이다. 예술에 시대별 특징을 나타내는 꾸밈말을 붙일 수 있다면, 나는 지금 예술에 '공감의 시대'라는 표현을 자꾸 달고 싶어진다.

한국의 1960년대처럼 정치적 독재와 경제·사회·시대적 한계가 겹쳐 정보와 지식이 제한되고 통제되고 적었던 시대를 떠올려보자. 예술과 관련해 그때를 천재의 시대, 괴짜의 시대, 깃발의 시대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정치적 억압이 강력한 데다 지식과 정보를 얻는 통로도 제한된 시대였다.

그렇다 보니 어떤 예술가가 확신을 갖고 기행(奇行)을 감행하면서 괴짜 예술 행위를 하면 지금보다 잘 통했다. 그 자체로 예술의 진보성을 드러내는 의미도 가졌다. 그런 바탕에서 진짜 천재들이 튀어나왔고, 누군가는 깃발을 올렸다.

지금은 정보와 지식이 '너무 많은' 단계를 넘어 홍수가 날마다 일어나는 수준이다. 견디고 돌파할 정치적 억압도 많이 사라졌다. 게다가 사람들의 지식수준 또는 정보 처리력이 엄청나게 높아졌다. 사방에 전문가급 일반인이고 새 정보는 밀려든다. 이런 시대의 현기증이 많은 사람이 예술에서 공감, 나아가 감동이나 위안을 더 찾도록 이끄는 것 같다.

예술 현장을 취재하면서 '예술작품의 구성 성분은 공감·새로움·아름다움 세 가지인데 작품마다 조류마다 이 세 가지 성분의 함량은 다 다르다'고 느낀(2015년 1월 13일 자 본지 23면) 적이 있다. 요즘은 공감 성분이 높아진 작품을 더 많은 사람이 찾는 것 같다.

그렇다고 천재나 괴짜의 의미가 훼손됐다는 건 아니다. 다만, 비중이나 초점이 변동한 것이다.

'긍정적인 밥'을 읽은 덕분에 거듭 생각하게 된 예술과 공감의 시대라는 화두는 지역문학과도 연관이 있을까. 다른 건 몰라도 한가지는 말할 수 있다. 이런 시대에 문학 작품을 쓴다는 건 더 고되고 힘들어질 것이란 예측이다. 서정시나 시조에서 더 깊은 공감의 단계까지 나아가려면, 시적 사유와 모색이 더 깊고 더 진실해야 할 것이다. 웬만해선 통하기 힘들고, 진실하지 않으면 통하기 힘들 것이다. 소설 등 산문에서는 시도하고 실험하기에 앞서 쓰고자 하는 대상을 더 확실히 '장악'해야 할 것이다. 사방에 전문가급 독자가 즐비하니 지식이나 정보에서 생긴 작은 오류만으로도 공감력이 떨어질 우려는 크다. 그런데 그 장악이란 게 쉽지 않은 과정이라고 많은 문학인은 말한다.

이런 이야기를 겁도 없이, 눈치도 없이 함민복 시인에게 했더니 시인은 부드럽게 웃으며 "철학자 김용규의 명저 '생각의 시대'를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 관대함과 따뜻함이 고마웠다. 이런 게 문학기행의 묘미다.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