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향 담양 떠나 부산서 살며
- 태종대·이기대를 마주하곤
- 떠도는 존재의 고독을 알다

- 디아스포라처럼 떠도는 삶
- 머무르는 곳에서 만난 것들이
- 반짝반짝 시가 되어 빛난다

어릴 때 고향 담양을 떠나 부산으로 이사 온 아이는 대야에 물을 받아놓고 들여다보았다. 영산강이 그리워서 물대야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다. 아이에겐 그 물이 떠나온 고향이었다. 버스터미널에서 고향 쪽으로 가는 광주행 버스를 오래 지켜보기도 했다. 보다 못한 부모님이 고향으로 돌려보내 초등학교 1학년을 다녔다. 이번에는 부산에 두고 온 가족이 그리웠다. 그래서 부산으로 되돌아왔다. 손택수 시인에게 부산은 '고향의 결핍'을, '서글픔의 감각'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 땅이다.

	손택수 시인이 부산 남구 이기대 도시자연공원에서 만난 부산의 바다 앞에 섰다. 그는 부산에서 "고향의 결핍과 서글픔의 감각을 배우며 시인이 됐다"고 말했다.

손택수 시인은 1970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났다. 부산에서 소년기와 학창시절을 보내며 자랐다. 경남대 국문과, 부산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어 시인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호랑이 발자국' '목련 전차 '나무의 수사학'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등의 시삶을 냈다. 최근에 청소년시집 '나의 첫 소년'을 펴내며 새로운 시 세계를 펼쳐 보인다. 경기도 일산에서 살고 있는 손 시인이 아버지 기일에 맞춰 부산으로 왔다. 이기대 도시자연공원에서 그를 만났다.

■잃어버린 고향, 처음 만난 바다

이기대 뒷산인 장자산은 손 시인에게 많은 의미가 있다. 어릴 적 놀던 곳이며, 아버지 유해가 묻힌 산이다. "저 산의 산벚나무 아래에 아버지가 수목장으로 잠들어계십니다." 시집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에 수록된 시 '벚꽃 개화예상도를 보며'에는 아버지를 기리는 마음이 엿보인다. "서귀포에 벚꽃이 피는 건 3월 17일,/어머니 사시는 부산 이기대 바다는/23일이다//이기대 언덕에서 수목장을 한 아버지의 벚나무도/예상대로라면 그날 피어날 것이다" 벚꽃은 시인에게 아버지의 소식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묻힌 산을 바라보며 산책길을 걷는 시인 앞에 탁 트인 바다가 나타났다. "산을 넘어와 바다를 보는 이 순간이 참 좋아요. 제가 부산에 와서 처음 본 바다는 태종대였어요. 바다는 생전 처음으로 맞닥뜨린 넓은 공간이었죠. 공포스러울 정도로 넓었지요. 그리고 이기대에서 보는 이 바다는 제가 가장 많이 본 바다일 거예요. 도심 가까이에 이런 바다가 있다는 건 행운이죠."

그에게 이기대는 이야기의 공간이기도 했다. "담양에 계신 할머니가 친구들과 함께 죽공예품을 팔러 전국을 돌아다녔어요. 그러다 부산에 오시면 이기대에서 긴 여정의 땀도 식히고 바다 구경도 했죠. 할머니들이 이 바닷가에 앉아 놀 때 그 옆에 함께 있었어요. 할머니들이 살아온 이야기에는 정한이 많았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았어요. 그 이야기와 이기대 바다가 저의 문학, 제 시의 원천이 된 셈이지요."

그는 산기슭 벤치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담양은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져 하나의 생명체가 되어 우애를 나누던, 제겐 유토피아 같은 곳이었습니다. 고향은 제가 처음으로 이별 체험을 하며 떠나올 때 그 시점에 머물러 있어요. 현재의 담양이 아니에요. 다시는 돌아갈 수 없고 경험할 수도 없는, 제 마음속에서만 존재하는 고향입니다. 근대로서의 도시를 처음 경험한 부산에서 고향을 발견하는 결핍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부산이 저를 시인으로 만들었죠."

■떠도는 존재, 시를 발견하다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 손택수 지음/창비

그에게 고향은 단순한 '장소의 의미'를 넘어서는 것이다. 잃어버린 그 고향이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해 어찌해볼 수 없는 절대고독으로 나타나는 걸까. 그 느낌을 시에서 짐작해본다. '살구나무 그림자가 바위를 미는 동안'이라는 아름다운 제목의 시 중 마지막 대목이다. "제가 평생을 기다리고 있는 건 저녁이 올 때까지 하염없이/무엇을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기다림 속에 빠져 있던/그 외로운 아이인지도 모릅니다/기다리는 일 하나만으로도 참 멀리 갔다 온 듯합니다/이걸 영원이라고 불러도 좋을지요/언젠가 저도 저 산등성이를 밀며 가는 구름을 따라 흘러가겠습니다"

구름을 따라 흘러가겠다는 시인은 말했다. "인간은 왜 이리 외로운가, 어디로 갈 것인가. 사람은, 저는 근원적으로 디아스포라입니다. 늘 어딘가로 떠도는 존재이지요. 시인은 디아스포라 감각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는 자신의 탯말인 전라도 사투리도, 성장기를 보낸 부산 사투리도 안 된다고 했다. '표준어'도 마찬가지다. "제가 떠도는 존재여서 그런가 봐요. 마치 뱀의 혀처럼 갈라진 언어 체험이랄까. 그래서인지 언어에 대한 명상도 많이 했죠. 나무는 왜 나무라고 불러야 하나, 내가 정한 것도 아닌데. 혼자서 나만의 국어사전도 만들어봤어요. 그것이 문학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떠도는 존재, 손 시인은 떠돌다 머무는 곳에서 시를 발견한다. 시집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는 그가 일상의 사소한 풍경에서, 주변의 삶에서, 여행길에서 만난 것들이 시가 되어 빛나고 있다. 우리는 모두 떠도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디서나 빛나고 있다는 위안을 이 시집에서 받아본다.

책 칼럼니스트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