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진왜란 때 다대진 지키다 전사
- 윤흥신 장군 파란만장한 일대기
- 예산·무대 등 갖은 악조건에도
- 을숙도문화회관 집념으로 성사

- 21일·22일 세 차례 공연 예정
- 홀로그램·3D 프로젝션 맵핑 등
- 오페라 공연으로는 이례적 도입

"적군들이 무서워 백성들을 버리리오. 조총이 두려워 내 한 몸 피하리오. 도대체 몸을 피해 어디로 가자는 게요. 여기는 땅끝, 갈 곳이 없소. 여기는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요. 여기는 우리가 죽어야 할 곳이요. 반드시 이곳을 지켜야 할 것이오. 죽음을 무릅쓰고 지켜야 할 곳이요."

왜군에 맞서 죽음을 결심한 윤흥신 장군의 아리아가 군사들의 사기를 고취했다. 지난달 21일 찾은 부산 사하구 을숙도문화회관 지하 1층 연습실은 '오페라 윤흥신'의 노랫소리로 가득했다.

지난달 부산 사하구 을숙도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촬영된 다대성 전투 장면. 3D 프로젝션 맵핑을 활용해 더욱 실감 나는 장면을 연출한다.

창작 오페라 '윤흥신'은 임진왜란 당시 다대진을 지키다 순절한 윤흥신 장군의 일대기를 그린다. 부산을 소재로 부산에서 만들어진 오페라는 1986년 '부산성 사람들'(부산예총 제작), 2013년 '해운대'(해운대문화회관 제작)에 이어 세 번째다.

윤흥신은 조선 시대 최고 권력자의 아들로 태어나 을사사화 때 관노로 전락했다. 32년 만에 신분이 회복된 뒤 다대첨사가 된 윤흥신은 왜구의 침범에 대비해 군사 훈련을 강화했다. 윤흥신은 왜적의 첫 공격은 물리쳤지만 다음 날 전투에서 전사했다. 오페라는 윤흥신의 파란만장한 삶과 신씨 아씨와의 사랑,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기개 등을 담았다.

사실 윤흥신 장군의 공로는 부산진성과 동래성을 지켰던 정발 장군, 송상현 부사보다 주목받지 못했다. 2015년 부산 사하구와 을숙도문화회관은 창작 오페라 소재를 찾던 중 시민 설문 조사와 을숙도문화회관 운영자문위원회 의견을 반영해 역사 속 윤흥신의 충절과 영웅의 면모를 다기로 했다.

■구 단위 문화회관의 유쾌한 집념

을숙도문화회관 연습실에서 장미여성합창단이 오페라 '윤흥신'의 합창과 춤을 연습하고 있다. 부산로얄필하모니오케스트라 제공

오페라 '윤흥신'은 창작 오페라를 향한 을숙도문화회관의 끈질긴 '집념'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을숙도문화회관은 넉넉하지 않은 재정에도 2014년 오페라 '투란도트'를 시작으로 2015년 '메리 위도우', 2016년 '맥베스'를 자체 제작해 선보였다. 기본적인 제작비용만 해도 수 억 원을 쉽게 넘는 오페라를 1~2억 원이라는 적은 예산으로 제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을숙도문화회관 측은 무대에 오케스트라 피트(orchestra pit)가 없어 난관에 부딪히자 객석을 뜯어내 피트를 마련하고, 제작비가 모자라자 국가 공모 사업에 지원해 예산을 확보하는 등 '이가 없으면 잇몸' 정신으로 돌파했다.

윤흥신 일대기도 오페라로 탄생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2016년 상연을 목표로 2015년 시놉시스를 공모했지만 적당한 작품이 없어 상연일을 1년 연기하고 작품을 위촉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을숙도문화회관 송필석 관장은 "지역 인물을 작품 소재로 삼으면 자칫 지역 홍보용이나 치적용 공연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사례를 밟지 않으려면 정말 작품성 있는, 새로운 오페라 레퍼토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준비 기간이 더 걸렸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송 관장을 비롯해 경성대 김원명 음악학과 교수, 부산로얄필하모니오케스트라 김일택 대표, 동서대 백진현 음악학과 교수, 조문선 사하구 의원 등이 TF 팀을 구성해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았다. 송 관장은 "지역 예술인들과 새로운 콘텐츠를 담은 작품에 도전하는 것이 공공극장이 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생소한 소재여서 공연 홍보가 어렵지만, 그 길을 공공극장이 개척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느냐"고 말했다.

■새로운 음악과 영상기술의 만남

창작 오페라의 묘미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음악을 듣는 것이다. 오페라 '윤흥신'은 서양음악의 대중성과 함께 클래식, 현대음악, 한국 전통음악의 요소를 모두 혼용했다. 최천희 작곡가는 '서양 음악을 자주적으로 수용하고 한국 전통 음악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특색 있는 음악으로 창작 오페라 '논개' '소나기' '대장경'을 작곡했다. 최 작곡가는 "이번 오페라에도 뮤지컬 '캣츠'의 '메모리' 같은 스타일의 아리아가 있는가 하면, 한국 전통 음악의 선율도 있고, 불확실성에 기댄 현대음악의 특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오페라 '윤흥신'은 오페라로는 이례적으로 홀로그램과 3D 프로젝션 맵핑 기법을 도입했다. 적어도 부산에서 상연된 오페라 가운데서는 최초다. 홀로그램 필름을 이용해 인물이나 사물 위에 다른 이미지나 색을 덧입히고, 3D 프로젝션 맵핑을 통해 전투 장면에서 수백 명이 싸우는 모습을 연출한다. 또 뒤로 갈수록 높아지는 경사 형태의 무대를 제작하고, 무대와 객석을 다리로 연결해 공연장 전체를 무대로 만들었다.

김성경 연출가는 "역사를 소재로 만든 창작 오페라는 자칫 무겁고 지루할 수 있어, 대중성과 오락성을 충족할 수 있도록 춤 연기 노래를 연출하고 입체적인 무대 활용으로 시각적 효과를 높였다"고 말했다. 김 연출가는 고증을 거쳐 임진왜란에 쓰인 칼, 조총, 의상 등도 제작했다고 덧붙였다.

■부산 예술인이 만든 공연 예술

'부산발' 창작 오페라에 출연하는 인원만 220여 명이다. 세계 정상급 성악가와 지역 동호인 등 프로와 아마추어가 모여 조선 시대 민중의 삶을 보여준다. 사하구소년소녀합창단, 장미여성합창단, 로얄오페라합창단, 나드림미션콰이어, 극단 미지, 최정화 무용단 등 출연진의 연령대는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합창단, 극단, 무용단 등이 장르를 초월해 종합예술을 완성한다.

이들과 함께할 주역인 윤흥신 역에는 테너 이정원 허동권 김충희가, 신씨 아씨 역에는 소프라노 전지영 김나영 구민영이 캐스팅됐다. 소프라노 김우영 김조은, 바리톤 임성욱 안세범, 테너 김기형 우원석이 참여한다. 연주는 부산로얄필하모니오케스트라가 맡는다. 출연진 대다수가 부산 경남에서 활동한다.

사하구소년소녀합창단과 장미여성합창단을 이끄는 엄현섭 지휘자는 "새로운 노래와 안무를 동시에 암기해야 해 본업이 있는 단원이 소화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400년 전 우리 지역의 실존 인물을 그린다는 점에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예술감독인 김원명 교수는 "부산의 자산으로 부산 예술인들이 만든 오페라라는 점에서 지역 창작 문화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부산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앞두고 창작 오페라의 초석을 다진다는 의미가 크다. 부산 시민의 예술적 자긍심을 고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페라 '윤흥신'은 오는 21일 오후 7시30분과 22일 오후2시·6시 을숙도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상연된다. (051) 220-5805


※주요 스텝과 출연자

▷대본: 김봉희 임오섭

▷작곡·지휘: 최천희

▷예술감독: 김원명 ▷제작: 김일택 ▷연출: 김성경 ▷음악감독: 이소영

▷윤흥신: 테너 이정원 허동권 김충희 ▷신씨 아씨: 소프라노 전지영 김나영 구민영

▷윤흥제: 바리톤 임성욱 안세범

▷이부장: 테너 김기형 우원석

▷달래: 소프라노 김우영 김조은

▷기타: 최정화무용단, 극단 미지

▷합창: 사하구소년소녀합창단, 장미여성합창단, 로얄오페라합창단, 나드림미션콰이어

▷오케스트라: 부산로얄필하모니오케스트라(BRPO)


최민정 기자 mj@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