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통감’(資治通鑑)의 경우처럼 오랜 사서(史書)의 제목에는 으레 거울 감(鑑)이 붙는다. ‘자료(資)가 되어 역사를 통하여(通) 거울(鑑)을 삼는다’는 뜻처럼, 귀감(龜鑑)이 된다는 관용적인 표현처럼, 과거의 역사를 고하는 것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참고가 되고 본보기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극 또한 마찬가지이다. 에이젠슈테인이 ‘전함 포템킨’(1925)과 ‘이반 대제’(1944)를 만들며 그 안에 당대의 정치 상황에 대한 은유를 불어넣었던 것처럼, 역사를 재현하고 재해석하는 시대극은 지금의 관점에서 옛날을 돌아보며 우회적으로 현재를 다루고 반영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다음 달 2일 개봉하는 ‘택시운전사’.

한국 영화에 심상치 않은 시대극 바람이 불고 있다. ‘암살’(2015)과 ‘경성학교:사라진 소녀들’(2015), ‘아가씨’(2016)와 ‘밀정’(2016)이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배경으로 들어간 이래, 식민지 시대의 역사를 다루는 시대극의 흐름이 형성되어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이준익 감독은 시인 윤동주의 삶을 그렸던 ‘동주(2016)에 이어 무정부주의자이자 항일운동가로 활동한 박열의 실화를 다룬 ’박열‘(2017)을 만들었고,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2017) 또한 소재상 이런 경향을 이어받고 있다. 근대의 물결이 밀어닥치던 시대의 미장센 속에서 장르 영화의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한편, 한국적 근대화의 기원을 파헤치고자 하는 감독들의 작가 의식이 민족주의 서사를 요청하는 대중적 갈망과 어우러지며 ’일제강점기 시대극 유행‘이라는 조류를 만들어내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변호인‘(2013)의 연장선상에서 근현대사의 사회정치상을 다루는 또 다른 시대극의 경향이 자리 잡고 있다. 관객 531만 명을 모은 ’더 킹‘(2017)에서 한재림 감독은 박태수라는 한 젊은 검사의 입지출세(立志出世)을 통해 1980년대 운동권의 시대부터 2000년대 참여정부를 거쳐 현재에 이르는 시간을 일목요연하게 관통한다. 악인의 몰락과 회개라는 피카레스크 문학의 플롯을 따르면서 부패와 타락으로 얼룩진 근현대사의 과오를 반추하는 영화는 새 인물로 거듭난 정치인 박태수의 모습에서 적폐를 일소한 미래의 정치를 희망하며 결말을 맺는다.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2017) 또한 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장 한가운데 뛰어든 독일 기자와 택시 운전사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비극의 역사를 되짚어 반성과 성찰을 끌어내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4k 디지털 복원을 통해 블루레이로 출시한 고전 ’최후의 증인‘(1980)에서 이두용 감독은 말한다. “구악을 일소하고 새 질서를 확립하려는 1980년 이 시대에 어제의 진실이 무엇이고 가짜가 무엇이라는 것을 한 수사관의 집념적인 인간 보호를 통해 가식 없이 토론하고 싶었다. 얘기도 어두운 얘기. 화면도 어둡다. 80년대엔 이러한 어둠이 사라졌으면 한다.” 영화를 통해 근현대사의 질곡을 되짚으며 새 시대의 여명을 바라보고자 했던 이두용 감독의 의지는 오늘날 한국영화에 맞닿아 보인다. 앞서 언급한 영화들은 오늘날 한국의 역사적 정체성을 재정의하려는 노력의 소산이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의 근현대사를 배경 삼은 시대극의 유행은 과거라는 거울에 현재를 투영하고 미래를 도모하려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일 것이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