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산의 제자로, 그를 흠모해
- 기념사업회 이사장까지 했던
- 김중하 평론가는 당부했다
- “요산을 뛰어넘어라”고
-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 살아 펄떡이는 소설을 쓰라고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68)의 신작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는 일단 손에 잡자, 그다음 대목이 궁금해서라도 계속 읽어나가게 하는 힘이 무척 강했다. 그리고 상상력을 자꾸 자극했다. ‘눈 같은 멋진 은발’의 멘시키 와타루는 어떤 모습일까. (자동차) 재규어와 프리온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어떻게 다르기에 주인공은 감명까지 받을까. 노(老)화가 아마다 도모히코가 그린 그림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튀어나온 노인장 “이데아”와 그보다 지위나 권세가 낮은 것이 분명한 긴 얼굴 “메타포”의 관계는?

지난달 한국어판만 무려 40만 부를 찍었다는 화제의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를 보는 관점은 십인십색, 백인백색으로 다양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예술가 소설 또는 예술 (자체를 정면에서 다룬) 소설로 범주를 좁혀서 받아들이자 이야기를 둘러싼 실타래가 어느 정도 솔솔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기사단장 죽이기’에는 매우 다양한 ‘예술적’ 요소가 흥미로운 형태로 나온다. 예술 또는 인간이 가서 닿고자 하는 초월적이고 궁극적인 실재를 상징하는 이데아(“전에 말했다시피 이데아에게는 시간이라는 관념이 없네.” 제2권 129쪽), 예술을 예술이게 해주는 중요한 요인인 메타포(“아뇨. 저희는 이데아가 아닙니다. 그냥 메타포예요. 단지 조신한 은유라고요. 사물과 사물을 이어주는 존재일 뿐이죠.” 제2권 371쪽). 예술이 피해갈 수 없는 요소인 역사(난징대학살, 동일본대지진, 전통 일본화)와 상처(92세 노화가 아마다 도모히코의 삶과 상처), 예술가의 자기 발견과 고독한 항진(“길을 결정하는 것은 당신 자신입니다.” 제2권 414쪽). 예술로 먹고사는 일의 어려움까지(“그리고 그 일(상업용 초상화를 다시 그리는 것)은 내게 확실한 수입을 가져다주었다. 그 또한 내게 필요한 것이었다. 내게는 부양할 가족이 있으니까.” 제2권 590쪽). 여기 다 쓰지 못한 장면이 많지만, 어쨌든 예술(또는 예술가)이라는 조각을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퍼즐에 딸칵 끼워넣으면 이야기가 풀리는 대목이 많았다.

중요한 것은 하루키라는 작가가 자칫 형이상학적이고 난해하게 흐를 이런 이야기를 독자의 상상력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게 하고, 다음 대목을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기게 하는 살아있는 이야기로 걸림 없이 직조했다는 점이다.

지난 27일 문학평론가 김중하(사진) 부산대 명예교수가 향년 78세로 별세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생전에 그가 하고 또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평생 소설을 공부한 원로 국문학자이면서 부산 소설가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고, 지역문학에 매운 비평을 한 소중한 ‘현장 평론가’였다. 창작자들과 오래 함께 호흡한 소중한 현장 평론가를 우리는 잃었다.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며 저항하고 비판하는 소설을 많이 쓴 요산 김정한 선생의 제자였고, 요산을 존경하여 요산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는 등 생애 내내 요산의 문학정신을 기렸던 그가 생전에 문학 현장에서 틈날 때마다 했던 이야기는 역설적이게도 “요산을 넘어서라” “요산을 뛰어넘어라”였다. 이 메시지의 변주가 (요산이 쓴 저항적 리얼리즘 소설에 머물거나 갇히지 말고) “부산 소설가들! 제발 연애소설 좀 써라”라는 고인의 고언이었다.

되새겨보면, 이 말은 소설가들이 구애됨이나 걸림 없이 자기 길을 개척하고, 살아있는 소설을 써 달라는 당부였다. 김중하 선생의 부음을 듣고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를 들춰본 행동을 생뚱맞거나 부정적으로 보실 분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거듭 생각해도, 고인의 메시지는 ‘기사단장 죽이기’의 독후감은 겹쳐서 들려온다.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