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명을 세례명으로 바꾸고
- 도서관 들락거리며 4권 출간
- 그의 시는 역사에 바치는 진혼곡

- “사람 빨리 발음하면 삶이 되죠
- 가족·이웃들 생활 들여다보다
- 도시 소외계층으로 외연 확장
- 위안부 할머니·시리아 소년 등
- 시대의 아픔 담고 싶었어요”

주변 사람들이 불행을 겪고 있다면, 우리는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자신에게 불운이 닥쳐오지 않았다는 것으로 마음이 편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 아무런 일이 없다 해도 누군가의 불행과 아픔에 마음이 불편하다. 그것이 ‘공감’이다. 김요아킴 시인은 그런 마음으로 사람들을, 세상을 바라본다. 시인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는 아프고 불행했던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살아냈던 역사가 있다. 그의 시는 수많은 개인의 삶과 시대의 역사에 바치는 진혼곡이다. 씨줄 날줄로 얽힌 삶과 역사를 시로 담아내는 김요아킴 시인을 만났다.

■도서관에서 시를 쓰는 시인

김요아킴 시인이 부산 북구 화명동 화명도서관을 찾았다. 김 시인은 집 근처인 화명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김요아킴은 1969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초·중·고등학교를 다녔다. 경북대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고, 현재 부산 경원고에서 국어 교사로 근무하며 시를 쓰고 있다. 2010년 계간 ‘문학청춘’ 제1회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가야산 호랑이’ ‘어느 시낭송’ ‘왼손잡이 투수’ ‘행복한 목욕탕’과 올해 4월 출간한 ‘그녀의 시모노세끼항’까지 5권의 시집과, 산문집 ‘야구, 21개의 생을 말하다’를 펴냈다. 그는 두 권의 시집을 낼 때까지 김재홍이라는 본명을 사용했다. 그런데 동명 시인도 있고, 평론가도 있어 어릴 적부터 불려온 세례명 요아킴을 필명으로 쓰고 있다.

“지금까지 책을 6권 냈는데 그중 4권이 화명도서관에서 태어났어요.” 김 시인은 부산 북구 화명동 화명도서관으로 들어서며 환하게 웃었다. “집에서 걸어오면 15분, 자전거를 타고 오면 금방이죠. 이 도서관에서 3권의 시집과 1권의 산문집을 썼어요. 화명도서관이 창작공간이며, 작품의 고향인 셈이죠.” 도서관에 오면 일종의 의식처럼 커피부터 마신 뒤에 읽고 싶은 책을 대출한다. 열람실에서 책도 보고, 작품을 구상하거나 정리한다. 입력해 둘 내용이 있으면 디지털실에 가서 입력 작업도 한다.

그는 화명도서관에서 가장 멋진 장소가 옥상이라고 말했다. “일몰 무렵이 되면 이곳에서 노을에 물들어가는 하늘과 낙동강, 그리고 화명대교가 한눈에 보입니다.” 도서관 옆 장미공원도 그가 좋아하는 산책길이다. “장미와 연꽃이 만발할 때, 한여름 짙푸른 녹음…. 이 동네의 심장 같은 곳입니다.”

■사람이 곧 시의 경전

그녀의 시모노세끼항 - 김요아킴/황금알/2017

“처음에는 저와 가족, 제 이웃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시를 썼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 의미가 점점 확장되는 걸 느꼈어요. 역사와 현실 속 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하고 싶은 말이 생겼고, 불행한 역사와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삶도 보이더군요. 한 개인의 삶과 죽음이 시대와 무관하지 않으니까요.” 그의 시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는 느낌이 드는 이유이다.

‘그녀의 시모노세끼항’에 수록된 ‘그 집 앞, 사진’에서는 한 가족을 만날 수 있다. “철거가 궁지에 몰린 변두리 마을 입구/한 사진관에 내걸린/문밖의 액자가 나이를 먹는다//화목을 시도한 가족사진들이, 서둘러/쇼윈도의 먼지로 빠져나가는 사이/돌 지난 아이의 벌거벗은 얼굴이/몰려다니는 흙바람에 잠시 주름이 진다”로 시작하는 이 시는 북구 만덕 5지구의 철거 과정을 보며 쓴 시다. 도시 개발과정에서 내몰리고 있는 한 가족의 힘겨운 삶이 느껴진다.

“제대 후 복학 전에 마산수출자유지역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어요. 강하고 힘 있는 사람보다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창노동자문학회에 참여해 회지도 만들며 글도 썼지요. 사람이 뭔가, 사는 게 뭔가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했던 시절이었어요. 아픈 사람들의 삶을 시에 담고 싶었고, 그 불행을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는 사람과 시대를 깊이 들여다보고, 서사 구조를 가진 시를 쓴다. 짧은 시 한 편이지만 한 사람의 삶이 다 보일 것 같은 느낌이다. 시 ‘이용녀 할머니’의 마지막 구절 “종로 일본 대사관 앞 시계는/늘 방년 16세의 나이로 멈춰 서 있지/천 번을 모여도 꿈쩍하지 않는/이 모질고 험한 세월/단 한 송이 꽃이라도 피우려는/희망은 또 꺾이고 말지/이제 나 같은 늙은이들/얼마 남지 않았어”에는 위안부할머니의 서러운 세월을 잊지 말자는 마음을 담았다. ‘한 소년이 있다’는 시리아 내전 와중에서 다리를 잃은 소년이 시멘트바닥에 앉아 자신의 다리를 그리는 사진을 보면서 쓴 시다. “시멘트 차가운 자리, 하얀 분필로/또박또박 다음 생을 그려나간 한 소년이 있다”는 구절은 전쟁의 참혹함이 소년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렸는지, 그 소년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제 시의 경전은 사람입니다. ‘사람’을 빨리 발음하면 ‘삶’이 되지요. 그 삶을 들여다보면 행복 이면에 드리워진 불행이 있고, 보기 시작하면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사람과 역사가 있지요.” 개인의 삶이 모여 역사를 이룬다. 사람을 경전으로 섬기는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삶이 무엇인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 보이는 듯하다. 책칼럼니스트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