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년 평론·칼럼 엮은 산문집엔
- 최근 3, 4년 페이스북에 쓴
- 70편의 짧은 글도 실렸다

- 그의 서가에 있는 액자 속 시구
- 난작독서인 難作讀書人
- 책읽는 사람 되기 참 어렵다

문학책을 읽을 때 함께 수록된 평론을 꼼꼼하게 읽는 독자가 얼마나 될까. 평론가의 입장에서 서운하겠지만 그들의 글이 혹시 어렵지 않을까 지레 겁먹고 못 본 척 넘어가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런데 평론가라고 해서 문학 작품에 대한 글만 쓰는 건 아니다. 그들도 글을 쓰는 사람인데, 늘 다른 작가의 작품에 대한 글만 쓰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의 머릿속에 오가는 생각이며 마음을 스치는 감정은 어떤 결을 가지고 있을까. 그것이 궁금하던 차에 김명인 문학평론가의 산문집 ‘부끄러움의 깊이’를 만났다. 표지에는 산등성이인지, 외길인지, 외줄을 따라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이 선화로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제목 중 ‘깊이’라는 단어는 세로로 놓였다. 어딘가로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 김명인을 만나기 위해 인천시에 있는 인하대학교를 찾았다.

김명인 문학평론가가 인천시 인하대 교수연구실을 가득 메운 책 앞에 섰다. 산문집 ‘부끄러움의 깊이’를 펴낸 김 평론가는 “모든 텍스트가 비평의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난작독서인’

김명인은 1958년 강원도 삼척 도계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초·중·고·대학을 다닌 후, 1992년부터 인하대에서 대학원 공부를 했다. 현재 인하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계간 ‘황해문화’의 주간을 맡고 있다. 1985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해 1980년대 ‘민족문학주체논쟁’을 이끌며 활동했고, 1990년대 ‘주례사비평’과 2000년대 ‘표절 문학’ 논란에서 비타협적인 태도를 견지해왔다. ‘희망의 문학’ ‘잠들지 못하는 희망’ ‘자명한 것들과의 결별’ ‘환멸의 문학, 배반의 민주주의’ ‘내면산책자의 시간’ ‘문학적 근대의 자의식’ 등의 저서를 펴냈다. ‘부끄러움의 깊이’는 40여 년간 평론과 시사칼럼을 써온 그가 자신의 삶과 지나온 시대를 돌아보며 쓴 산문집이다. 최근 3~4년간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수백 편의 글 중 70편을 가려 뽑아 묶었다.

그의 연구실에는 책이 가득했다. 출입문, 창문을 제외한 모든 벽이 서가였다. 집에도 연구실만큼의 책이 있다. 읽었던 책, 읽고 있는 책, 읽어야 할 책들…. 마냥 부럽지만은 않은 기분이다. 그래서 “책을 얼마나 많이 읽느냐”고 질문했다. “나는 책을 많이 읽는 독서가는 아니다”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책 읽기는 지적인 축적 과정이에요. 읽으면 읽을수록 퍼즐 맞추기를 하는 것처럼, 지나온 자리와 관계들이 보여 마지막 퍼즐 조각을 놓을 수 있게 되는 거죠. 봐야 할 책은 늘 있지요. 어려운 책인데 책장이 술술 넘어갈 때도 있고, 평이한 책이 오히려 안 읽힐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저는 멍 때리고 있거나 생각하고 있을 때가 더 많아요.”

그의 서가 한 쪽에 ‘난작독서인(難作讀書人)’을 한글 붓글씨로 쓴 작은 액자가 있다. 매천 황현의 절명시 중 한 구절로 ‘책 읽는 사람 되기가 참 어렵다’는 의미인데, 자기반성의 좌우명으로 삼아 책 앞에 놓아둔 것이라 했다. 책에도 그런 마음을 담은 대목이 있다. “나는 늘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부지런한 사람이지만, 지적으로는 대단히 게으른 편에 속한다. 무엇보다 책을 잘 안 읽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평론가라고 해서 하루 종일 책만 죽어라고 읽는 건 아니라는 것, 그런 사람이 되기도 어려운 일이라는 고백이 그 구절에 담긴 것 같다.

■세상 모든 것이 비평의 대상

부끄러움의 깊이- 김명인/빨간소금/2017

김명인은 페이스북을 어떤 공간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그는 책의 서문에 “페이스북이란 곳은 개인적인 낙서장도 아니고, 완연히 공적 매체도 아닌 반공반사(半公半私)의 독특한 매체다”며 “일기만큼은 아니겠지만 내 일상과 심사의 한 구석을 제법 드러낼 수도 있고, 본격 비평만큼은 아니겠지만 동시대의 공적 문제들에 대해 어지간한 의견 표명도 자유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세상의 많은 일과 다양한 현상을 바라보는 평론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글 쓰는 공간이 이동하면서, 그의 비평 대상이었던 텍스트도 확장된 것은 아닐까. “한때 시대의 담론을 이끌었던 문학의 역할이나 비중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그러나 비평은 줄어들 수 없어요. 모든 텍스트가 비평의 대상입니다. 사회 현상, 사람의 생애, 특정 사건 모든 것이 대상이 될 수 있어요.” 묵직한 책 뒤에 서 있던 비평가가 옆으로 다가왔고, 그와 더불어 마음껏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다.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그가 쓰는 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실감 나게 하는 글이 한편 있다. 가수 김광석에 관한 글이다. “불쌍한 광석이…. 불쌍한 우리 세대…. 너무 멀리 보았던, 그런데 지금은 발밑만을 보고 살아야 하는 자들의 슬픔, 저편의 휘황한 불꽃을 보고도 그곳으로 가지 못하고 그 불꽃의 잔상만을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고 있을 뿐인 자들의 슬픔.” ‘불쌍한 광석이, 불쌍한 우리 세대’라는 대목에 자신의 이름을 놓고 불러보라. 우리의 삶을, 이 시대를 보여주는 페이스북 친구가 손을 내밀고 있다. 그 손을 잡고 책을 펼쳐보면 더 깊은 이야기, 더 넓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책칼럼니스트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