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살 때 입산해 수행 정진
- 학교 졸업장은 하나도 없어

- 돌·나무·바람소리가 스승
- 프랑스·독일 등 전시회 호평

- 소식지 게재 글·그림 엄선
- 세월호 희생자 추모글 눈길

수안 스님이 자신의 그림을 전시한 수안 미술관(경남 양산 하북면 문수원 옆)에서 선서화의 세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서정빈 기자 photobin@kookje.co.kr

스님이 주먹 쥐듯 붓을 잡고 쓱 쓱 쓱, 선 몇 개를 그린다. 눈, 입, 얼굴, 몸통이 생기더니 어느새 동자승 하나가 태어나 세상 근심 없는 미소를 짓는다. 붉은 물감으로 양 볼에 점을 하나씩 찍으니 제페토 할아버지가 나무를 깎아 피노키오를 만들듯 동자승 얼굴에 생기가 돈다.

경남 양산 통도사 축서암 가는 길목에 자리한 문수원에서 선서화(禪書畵) 대가 수안 스님을 만났다. 문수원은 스님이 수행하고 그림을 그리는 암자다. 선서화는 수행의 한 방편이자 수행자의 수행력이 드러나는 그림이다.

수안 스님은 몇 가지 색깔과 단순하지만 힘 있는 선으로 자신만의 예술적 경지를 이뤘다. 프랑스 모나코 독일 대만 러시아 등 세계 각지에서 전시를 열어 현지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그런데도 스님은 ‘졸업장’이 단 한 개도 없다. 1940년 통영에서 출생해 17살 때 입산한 스님은 초등학교는커녕 승가대학인 강원도 나오지 않았다. 스님의 말대로 돌 하나, 나무 하나, 바람 소리가 스승이었고, 사방천지가 불법이요, 만물이 불법 문중의 일불제자이며 스승이었다. 정식 미술 교육을 받거나, 특정한 스승을 두지 않았기에 누구의 그림과도 다른 스님만의 그림이 탄생했는지도 모른다.

스님이 최근 선서화 시집 ‘행복 주머니(사진)’를 출간했다. 통도사 소식지 ‘등불’에 실은 글과 그림, 생명나눔실천본부가 매달 발간하는 ‘삶과 생명 나누기’ 소식지에 실은 표지 그림과 글 등 100여 편을 모았다. 시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잡화 장사 할배, 아랫마을 할매 보살님, 남도에 사는 막내 누이, 해소병 심하신 우리 할배, 얼굴에 하얀 분 바른 아랫마을 아지매 보살, 시골 농협 여자 직원 등 모두 평범한 이웃이다. 이들을 바라보는 스님의 시선에는 따뜻한 무심함이 가득하다. 사랑과 관심으로 바라보되, 나서서 끼어들거나 시비를 가름하지 않는다.

갯가 선창가 돌 틈의 다북쑥, 출입문 중간에 웅크리고 앉은 작은 새, 낙화한 동백꽃, 남쪽 섬에서 얻어온 수선화 몇 포기, 길섶에 놓인 빈 병에 꽃가지, 큰 은행나무의 노란 잎새, 작설차 나무 아래 흙집 짓는 두꺼비…. 흔하디흔한 주변 풍경도 스님의 눈엔 모두 부처님의 화현이자 스승이고, 도반이며, 가족, 친척이다.

스님은 “가장 그리고 싶은 건 어머니”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도 되고, 진리이며 스승이다. 관세음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32가지 몸으로 현신하듯, 몸은 하나이지만 다양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수안 스님의 선서화 작품.

책 속에는 세월호 사건으로 희생된 아이들을 추모하는 글도 실려있다. 세월호 사건은 스님이 최근 가장 가슴 아파한 일이다. 스님은 희생된 아이들을 위해 수없이 기도했다.

‘참담하고/부끄럽고 기막히다./거울 앞에서 나를 본다./거울 속에 비춰진 나와/거울 앞에 내가 있다./지금 당장 내가 누고?/연꽃 속에 동남동녀/참선으로 지혜등 밝힌 수행자들/은하수 수많은 별보다/밝은 선지와 덕행은/향연처럼 피어나는/갑오 여름 안거 성만 있기를…//갑오 하안거 결제 들고나는 모든 선지식 前에’.(‘나 그리고 세월호’)

단순하고 친근한 글과 그림으로 구성돼 있지만 쉽게 읽고 덮을 책이 아니다. 오래오래 곁에 두고 펼쳐 보면 입가에 작은 미소가 떠오르고, 어두운 마음에 한 줄기 빛이 들어온다. 수안 스님은 오는 11월 1일 부산 중구 코모도호텔에서 출판기념회 및 전시회(5일까지)를 연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