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적인 프로그램, 현대음악에 관한 탁월한 해석과 재능으로 인정받는 최 지휘자가 부산시향과 함께 어떤 음악을 선보일지 세간의 기대가 높다. 최 지휘자가 이끄는 부산시향은 당장 첫 연주회부터 국내 최초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교향시 전곡 사이클에 돌입한다. 이달 초 취임한 최 지휘자의 최초 임기는 애초 2년이었으나 부산시와의 협의를 거쳐 3년으로 늘어났다. 지난 25일 부산시향과 첫 정식 연습을 마친 최 지휘자를 만나 두 시간 동안 인터뷰했다.

최 지휘자는 주소를 부산으로 곧 옮길 예정이다. 부산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함께하겠다는 의지다. 그간 장인 장모의 고향인 부산을 방문할 때마다 가졌던 호감은 지난해 4월과 지난 4월 부산시향을 객원 지휘하면서 더 커졌다. “서울시향 부지휘자로 있으면서 좋은 경험을 쌓았습니다. 다른 악단을 지휘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죠. 부산시향 지휘자가 됐다는 소식에 장인 장모님이 정말 기뻐하셨어요.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아내와 딸은 서울에 있지만, 미래를 부산에 두고 그리고 있습니다.”

■R.슈트라우스·현대음악+α

최 지휘자가 이끄는 부산시향은 2019년까지 ‘멕베스’ ‘알프스교향곡’ ‘돈키호테’ 등 R.슈트라우스의 모든 교향시를 국내 최초로 완주할 예정이다. 그는 자신과 부산시향, 부산의 교집합에 R.슈트라우스가 있다고 했다. “전곡 연주는 부산시향에 ‘무기’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시작하게 됐어요. 제가 국내에서 슈트라우스 음악을 많이 선보인 지휘자 중 한 사람이고, 부산시향도 슈트라우스 음악을 연주한 경험이 많죠. 슈트라우스 음악은 30분 안에 모든 걸 쏟아내는 천재적인 기질이 돋보이는데 직설적이고 자신감에 넘쳐요. ‘모 아니면 도’ 같은 슈트라우스 작품이 부산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웃음)”

현대음악 지휘에 입지가 두터운 최 지휘자는 부산 청중에게 현대음악을 어떻게 소개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그는 “현대음악은 대중에게 쉽게 통하는 장르가 아니어서 무턱대고 유명한 작곡가 작품이라고 무대에 올려서는 안 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우리가 보존해야 할 고(故) 윤이상 선생,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진은숙의 작품 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상주 작곡가를 두고 부산시향과 음악회 주제에 맞는 현대음악을 만들어 부산시향의 작품으로 남기면 어떨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공간에서 하는 실험적인 연주도구상 중이다. 광안리해변, 부둣가, 근대 건축물 등 의외의 장소를 찾아가 연주하거나 리허설 공간에 관객을 초대하는 연주에도 관심이 있다. 정기연주회 전 기자간담회도 정례화할 예정이다.

최 지휘자는 클래식 음악 애호가와 클래식에 크게 관심이 없는 일반인을 모두 아우르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 곡을 가지고 두 관객층이 각자 생각할 수 있도록 하고, 주제와 의미에 맞게 자연스럽게 동화돼 흘러가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시민 발길을 부산시향으로 끌겠다고 했다. “부산에는 클래식 말고도 영화 야구 등 즐길 거리가 많은 건 사실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남녀노소 시민의 흥미를 끄는 프로그램을 짜고 홍보해야죠. 부산의 많은 즐길 거리와 마스코트 중 하나가 부산시향이 되도록 조금씩 거듭나야죠.”

■유연한 음악적 리더십

부산시향은 1년 8개월간 지휘자 공백, (재)부산문화회관 출범에 따른 변화, 악단 안팎의 묵은 갈등 등에 따른 과제를 안고 있다. 최 지휘자는 이를 잘 알고 있다며 어렵게 입을 뗐다.

“우리나라 교향악단은 역사가 약 70년으로, 안정된 유럽 등지의 오케스트라에 비해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해요. 단원들이 자발적으로 오케스트라를 꾸려가고, 지휘자는 그저 그 오케스트라를 거쳐 가는 음악적 리더인 것이 이상적인데 그렇게 하기엔 우리 환경은 많이 다르죠. 저는 ‘모두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사람이면서 모두의 말을 듣는’ 유일한 사람이어야 해요.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악단인 만큼 여러 변수에 유연히 대처하며 최선을 다해 음악을 할 방법을 연구하는 자리입니다. 부산시향을 객원 지휘하면서 적극적으로 연주에 임하는 단원들의 자부심 강한 면모를 보며 더 좋은 악단으로 거듭날 가능성을 봤어요. 악단에 건강한 긴장감을 주는 것도 제 역할이죠.”

최 지휘자는 부산문화회관과 방식과 시기를 조율해 빠른 시일에 악장, 부지휘자, 수석 등을 임명할 계획이다. 이어 그는 “부산시향을 ‘아시아 몇 번째 가는 오케스트라’ 하는 식의 평가를 받게 하기보다는 부산시향만의 음색으로 ‘부산시향이 잘하는 레퍼토리는 이것이다’로 각인되게하고 싶다. 특색 있고 희소성 있는 악단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051) 607-3111  

 최민정 기자 mj@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