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하얀 리본’(2009)은 1913년 평범한 독일의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기이한 사건들을 메마르다 못해 삭막한 분위기의 흑백 영상으로 담담히 전달한다. 의사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설치한 함정에 걸려 다치고, 농부의 아내는 추락사하며, 창고에 원인 불명의 불이 나고, 남작의 아들과 과부의 아이가 폭행을 당한다.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일련의 사건으로 마을의 인심은 흉흉해지고 서로를 의심하는 상황이 계속되지만 진실은 오리무중으로 빠진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히든’(2005)에서처럼 범인의 정체가 아닌 붕괴되어가는 공동체의 섬뜩한 살풍경에 초점을 맞춘다.
언뜻 보면 평온하고 안정된 질서를 구가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마을의 실상은 썩을 대로 썩어 있었다. 마을의 부를 독점한 남작 집안의 부부 관계는 파탄 났으며, 남작 일가의 미움을 사 생계를 잃은 농부는 절망에 빠져 목을 매달고, 사건의 최초 피해자인 의사는 과부와 불륜 관계 중에 친딸을 겁탈한 위선자이며, 마을의 모범이자 정신적 지주인 목사는 집안에서 인자한 아버지가 아닌 명령과 위계를 중시하는 전제군주로 행세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들은 구석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수상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표면으로만 경건함을 가장하며 허위와 위선으로 균열을 봉합하는 내부의 총체적 타락이야말로 사고를 초래한 원인이자 진범이라고, 하네케는 지적한다.

인천 초등생 유괴 살인, 부산과 서울의 여중생 폭행 사건 등 연이어 벌어진 청소년 범죄에 대한 여론을 접하면서 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1941~)의 명제가 떠올랐다. ‘풍경이란 하나의 인식의 틀이며, 일단 풍경이 생기면 곧 그 기원은 은폐된다.’ 가해 청소년들을 괴물로 몰아세우며 비난하는 건 손쉬운 일이다. 그러나 청소년 범죄에 대한 엄중 처벌과 보호법의 폐지를 말하는 세간의 풍경에는 참극이 일어나게 한 원인, 괴물을 만들어낸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빠져 있다. 동일한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면 개인의 일탈이나 광기를 넘어선 사회적 병리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지만 그런 시선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얀 리본’의 아이들은 권위와 질서에 순종하고 복무하는 대신 이면에 약한 타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억눌린 욕망과 스트레스의 출구를 찾는 가학적 인성이 되어가고 있었다. 평온해 보이는 일상의 표층 아래 사회의 파멸과 붕괴는 조용하지만, 착실히 진행되고 있었다. 훗날 나치즘에 동조하게 될 평범한 ‘독일 아이들’은 타고난 괴물이 아니었다. 그들은 병든 사회와 본보기가 되지 못하는 어른들의 무책임이 빚어낸 결과물이었던 셈이다.

아이들의 모습은 한 사회의 실상을 비추는 거울이다. 세상이 잘못되면 아이들은 그걸 배우고 흡수하며 일그러진 괴물이 된다. ‘휴거’를 운운하며 경멸의 시선을 보내는가 하면, 친구를 인격 대상이 아닌 경쟁 상대로 바라보고, 약자를 배려가 아닌 폭력으로 대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한국 사회가 얼마나 뿌리 깊게 병들어있는지 보여주는 징후에 불과하다. 사태의 본질을 외면하고 반성하지 않는한 괴물이 된 아이들은 언제든 다시 돌아올 것이다. ‘광인일기’의 말미에서 루쉰(1881~1936)은 외친다. “아이를 구하라!” 이보다 더 절박한 외침은 있을 수 없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