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산 증식·고상한 취미 아닌
- 일상서 쉽게 즐기는 미술로

미술품 감상에 ‘공유’라는 새로운 실험이 등장해 눈길을 끈다. 여유 있는 사람들의 고상한 취미로 여겨지던 미술품 소장이 대중에게 한걸음 가까이 다가가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까.

	미술품 공유 업체 ‘MERG&Collector’ 박성은(왼쪽) 대표와 그에게 미술의 즐거움을 알려준 이은미 MERG 대표. 해운대구 재송동 사무실에 공유할 미술품이 놓여져 있다.

부산 해운대구 재송동 주택가의 미술품 공유 업체 ‘MERG&Collector(머그&컬렉터)’를 운영하는 박성은(51) 대표가 ‘미술품 공유’라는 실험을 시작한 건 2015년 3월. 평범한 주부로 미술을 좋아해 한 점 두 점 사 모은 미술품이 어느새 보관장소에 가득 쌓였다. 그는 당장 보지 않는 미술품을 다른 사람과 나누면서 수익 모델까지 만들 수 있는 ‘공유’라는 방식을 떠올렸다.

“이사를 하거나 집안 환경이 바뀌면, 이전엔 어울렸는데 지금은 어울리지 않는 미술품이 생겼죠. 새 미술품을 구입하면 전에 있던 작품은 포장해 창고에 보관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당장 보지 않는 미술품을 지인들끼리라도 공유해보자고 시작했는데, 사업성이 있을 것 같다는 조언을 듣고 발전시켰죠.”

‘MERG&Collector’가 보유한 작품은 박 대표가 가진 30여 점과 지인들에게서 위탁받은 30여 점을 합해 60여 점이다. 전혁림 김점선 김응기 오순환 배병우 김대윤 등 유명한 작가 작품부터 신인까지 다양하다. 애초 구매했을 때 가격은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대로 미술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비싸지 않은 작품들이다. ‘MERG&Collector’에 회원 가입을 하고 1년에 40만 원을 내면 분기별로 새로운 작품을 빌려준다. 30호(1호는 엽서 한 장 크기) 이상 작품은 전문업체가 배송·설치해야 해 크기별로 추가 금액이 든다.

현재 회원은 27명으로 병원과 사무실 몇 군데를 빼면 대부분 집에 걸 작품을 빌려갔다. 박 대표는 규모를 현재보다 더 키울 뜻이 없어 지금 회원 규모를 앞으로도 유지할 계획이다.

박 대표가 미술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미술인 이은미(52) 씨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개설한 미술사·미학 강의를 들으면서부터다.

이 씨와 그의 수업을 꾸준히 들은 주부들이 모여 ‘MERG’(머그)라는 연구소를 만들었다. MERG는 Museum Education Realizing Group의 줄임말로, 누구나 미술관을 즐겁게 관람할 방법을 모색하는 단체다. 미술품과 관람자를 연결하는 다양한 방법을 고안한다. 현재 유치원 어린이를 대상으로 위탁 교육을 하고, 해운대구 반송동의 한 아동센터에서 7년째 미술 감상 교육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박 대표는 “미술품 공유를 통해 회원들이 미술을 재산 증식 수단이 아닌 인생의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박 대표는 “미술품을 공유해 보면, 가격이 오를 거란 기대를 갖고 산 작품보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그림을 볼 때 얼마나 큰 만족감을 느끼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