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에 관한 두려움·고독
- 정진의 태도로 시집에 담아

내가 늙었다는 사실, 죽음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마음은 어떨까. 그 직시라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이유경 시인.

문학은 직시에서 시작된다. 원로 시인 이유경의 새 시집 ‘바다로 간 강’(책만드는집)은 나이 듦을 무정하리만치 끈질기게 직시한다.

노년의 삶에도 행복과 보람이 있다는 진실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길 가는 수많은 노인의 얼굴이 무기력한 것은 좋은 표정조차 짓기 어려울 만큼 나이 들어 버린 탓은 아닐 것이다. 그 얼굴에는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살아왔다는 뿌듯함으로 메워지지 않는 근원적 두려움이 있다.

시인은 죽음에 관한 두려움과 강박, 세상의 중심에서 야멸차게 밀려나는 서러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후의 고독을 숨기지 않는다. 그 고통은 자신의 것이며, 세상 모든 노인의 것이다.

나 여기 불쌍한 몰골로 살고 있다… 적막한 새벽에 혼자 길 나서듯/오래전 네가 한 것처럼/세상에의 기억 다 지우려고/살아 있으니까, 살다 가기 위하여(‘너 없이 살기’ 중)

나이 든 사람을 쓸모없는 물건 취급하는 천박한 사회가 아니라면, 늙음을 누구에게나 다가올 인생의 과정으로 인정하고 배려하는 사회였다면 노인의 표정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우리 사회에서 공존의 가치가 속절없이 무너져감을 비판하기에 그의 토로는 넋두리 아닌 시다.

아는 얼굴들 다 어디로 가 있는 걸까… 우리 기다려주던 사람이나 나무들/풍경 하나씩 바꾸며 없어져 갔고/옛것들 다 비켜서라! 며/새것들 차례로 와서 치장할 거고/그들끼리는 쉽게 친해지겠지… 우리가 보낸 세월까지 지우면서(‘아는 얼굴들 다 어디로’ 중)

두려움 속으로 침잠하다 막다른 벽에 부딪혀 무너진다면 시는 존재 의미를 상실할지도 모른다. 시 ‘가구처럼’에서 시인은 말한다. ‘새벽을 구기고 일어난 늙은 사내 하나가 주린 몸 컴퓨터 앞에 차려놓고 세상과 대면’하는 순간, 노년의 고독과 무위는 정진과 사색으로 빠져든다. 그는 ‘무엇하려고 詩 몇 줄에 누더기 같은 말 걸치면서 새벽마다 머리칼 빗어왔는지’ 자문하지만, 그렇게 계속 시를 쓰며 또 하루를 보내기로 한다. 마치 ‘가구처럼’. 이 조용한 결심의 거룩함은 종교적이기도 하다.

만 77세 이유경 시인은 마지막 시집을 낸다는 마음으로 시를 썼다고 말한다.

“친구들은 듣기 싫으니 그런 말 좀 하지 말라고, 다음 시집 내야지 무슨 소리냐고 그래요. 이번이 10년 만에 낸 시집인데, 그동안 잠 안 오면 시만 붙들고 고치고 고치고 했어요. 나이 들어서 쓰는 시가 요즘 사람한테 무슨 감동을 주겠는가 하는 무력감에서 벗어나려고 더 매달린 것 같아요. 시인은 그래요. 오늘 쓴 시가 지금까지 쓴 것 중 제일 낫다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고. 그래서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어쨌든 그렇게 시집을 내고 나니 ‘모든 것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유경 시인은 경남 밀양 태생으로 1959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사상계’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으며 최계락문학상 등을 받았다.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