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시조, 힘들지만 열심히 써”

울산에서 활동하는 김정수 시조시인이 시조집 ‘거미의 시간(목언예원)’을 펴냈다.

	최근 시조집 ‘거미의 시간’을 펴낸 김정수 시인.

2014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김정수 시인은 등단 1년 만에 첫 시조집 ‘서어나무 와불’을 내는 부지런함을 보이더니, 두 번째 시집도 그리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율격 엄격한 단시조를 한 편 한 편 읽노라면 그가 단 하루도 시조에서 떠나지 못한 채 쓰고 연마한 끝에 얻어냈을, 깊이와 일관성을 발견할 수 있다.

피릿재 아랫마을/아직 봄은 이른데//첫 달걸이 했나봐/개짐 씻는 가시나//덜 야문 꽃샘바람이/붉은 소문 부추기네(‘홍매’ 전문)

첫 장 첫 편 ‘홍매’는 이번 작품집에 실린 그의 시조 가운데 유난히 시각적인 상상력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곧 온 산에 피어날 홍매화가 시의 재료지만, 정작 홍매화는 시구에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여자아이가 첫 달거리 천을 씻은 붉은 혈이 홍매화처럼 퍼져나간다. 은밀한 그 의식을 시샘 많은 바람이 굳이 소문내지 않아도, 사람의 성숙이란 밀려오는 봄처럼 표시가 나게 마련이다.

담백한 묘사와 자성적인 사유가 주를 이루는 그의 시조집에서 이 시편을 제일 앞으로 내세운 것에 어떤 의도가 있는지는 몰라도, 김정수의 시 세계에 호기심을 느끼고 다음 작품으로 몰입하게 하는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

허공에 걸어놓은 노스님의 은사 그물,/바람 한 올 걸리지 않은 석양을 배경으로/기러기 푸른 울음만 시나브로 걸린다(‘거미의 시간’ 전문)

거미로 은유한 노스님의 시간. 거미가 기다리는 것은 파리나 잠자리가 아닌 작은 깨달음일까. 기러기 대신 기러기 울음만 시나브로 걸리는 거미줄에 그림 같은 석양이 타들어간다. 표제작 ‘거미의 시간’도 회화성이 두드러지지만, 산속 절에서 오랜 관찰과 명상 끝에 얻어낸 듯 정갈하고 담담하다.

민병도 시조시인은 “김정수의 이번 시집이 특히 주목되는 것은 단시조에 천착했다는 것”이라며 “늦깎이로 문학의 길에 접어들어 여러 가지 조바심을 겪었음 직한 데도 굳이 시조의 본령이라 할 수 있는 단시조에 집중해 새로운 출발 선상에 서보겠다는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고 평했다. 그는 또 “모든 대상물을 통해 자신의 현주소를 파악한다는 점,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듯 자신의 내면에 감춰진 본디 모습을 찾아내는 수단으로 상대 물상과 현장, 사건에 임한다는 점”을 높이 샀다.

“나이도 있는데 마음만 급하고 작품이 아직 좋지 못하다”고 사양한 김정수 시인은 “함축의 미학이 있는 단시조가 깊은 맛이 있는 것 같아 고통스럽지만 열심히 써보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