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단 후 첫 소설집 ‘모두의 내력’
- 섬세하고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 오해·편견이 초래한 갈등 해부
- 타인에 대한 애정과 이해 당부

감각은 10대처럼 예민하게 살아있고, 사회를 해부하는 시선은 날카롭다. 사람을 섬세하고 부지런하게 관찰한다. 201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작가 오선영이 첫 소설집 ‘모두의 내력’(호밀밭·사진)을 펴냈다.

	최근 첫 번째 소설집 ‘모두의 내력’을 펴낸 오선영 작가. 그는 저마다의 작은 역사, ‘내력’에 천착한다.

‘해바라기 벽’은 벽화마을에 사는 소녀에게 일어난 일을 다뤘다. 소녀는 마을을 예쁘게 꾸며주겠다며 마을로 몰려드는 자원봉사자들이 마뜩잖다. ‘큰일’을 보러 두루마리 화장지를 손에 쥐고 산 중턱 공동 화장실로 달려가는 모습을 허락도 없이 찰칵찰칵 사진 찍는 블로거들의 무신경도 싫다. 집에 화장실이 없어서 구더기 끓는 재래식 공동 화장실을 써야 하는데, 집 담벼락에 해바라기 그림이라도 그리면 사는 게 나아진다고 믿는 건지. 어쨌건 화장실로 달려가는 모습이 파워블로거에게 포착되면서 소녀는 전국적인 유명인이 됐다. 심지어 소녀의 집에 ‘화장실을 지어주자, 정부가 나서라’는 운동까지 일어나 구청장이 집에 다녀가기도 했다. 수치심에 괴로워하던 소녀는 ‘이 기회에 화장실이 생기면 나쁘지 않겠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돌아서지만, 이번에는 소녀의 ‘내밀한 이중생활’이 까발려져 또 다른 공격을 받는다.

얼렁뚱땅 겉만 치장하는 공공미술·마을재생에 요즘은 비판이 많지만, 작품을 구상하던 때만 해도 벽화가 마을 하나를 살리는 양 유행처럼 번져나가던 때다. 재생 마을의 사생활 보호에 관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친구들과 벽화마을에 놀러 갔다가 떠오른 구상이에요. 나도 블로그에서 예쁜 사진 보고 혹해서 가긴 했는데, 사람들 사는 모습을 직접 보니까 카메라를 들 수가 없더라고요. 우리 집에 누가 카메라를 들이대면 불쾌하겠다는 생각도 들고, 집 담벼락에 예쁜 그림을 그리는 게 이들의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도 알기 어려웠죠. 그렇다고 주민을 피해자·약자로만 묘사하는 것도 오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평범한 소녀, 남들만큼 욕망이 있는 보통 소녀에게 이입하기로 했어요. 한창 예민한 나잇대의 소녀들은 상처받기 쉬우니까. 그들이 이 일을 감당하는 마음을 상상해봤어요.”

그들의 입장에서 상황을 감당해 본다, 상상해 본다는 것. 오선영은 작품 곳곳에서 ‘애정 어린 관찰’의 중요성을 독자들에게 설득한다. 예를 들어 표제작인 ‘모두의 내력’에서 오선영은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의 ‘내력’을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알려고 노력하는 데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배경이 유물 발굴현장이고 스무 살 여대생이 화자죠. 나를 좋아한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선배는 알고 보니 내 친구와 연인 관계였어요. 엄마를 정서적으로 학대했다고 생각했던 아빠의 진실도 진실이 아닐 수 있어요. 보이는 대로만 판단하고 남 생각은 알려고 하지 않는, 그러면서 누군가를 열심히 좋아하는 우리 모두의 스무 살과 비슷하지 않나요. 하하. 오해와 편견에서 비롯된 관계의 비틀림을 푸는 방법은 그 사람을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내력’이란 단어에 의미를 부여한다. “내력이란 단어에는 ‘역사’라는 표현과 달리 개인의 사소하고 은밀한 삶이 담겨 있어요. 역사에 기록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 사회적 약자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문학적 힘은 바로 이 내력에 있어요. 우리는 모두 각자의 내력을 가지고 있잖아요. 저도, 소설 속 인물도, 독자도.”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