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보내고 봄을 기다리는 찰나의 계절, 웅크린 감각을 흔들어 깨우는 시집 두 권이 나왔다.

■문인선, 사랑의 본질을 탐구하다

‘날개 돋다’(작가마을)는 1997년 등단한 후 성실하게 시를 쓰고 있는 시인 문인선의 작품집이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풍경에서 추출하는 그의 시를 읽노라면 어느새 시인과 나란히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누구의 마음을 엿본다는 것/어느 가슴에 스며든다는 것은/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일 것이냐… 사라질 수 없어/오줌싸개 아이가 남긴 지도 같이/어쩔 수 없는 그림 하나/슬쩍 그려 놓았다

쪼그리고 앉아 빗물이 번진 자리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썼음 직한 ‘빗물이 그린 그림’을 읽으면 그 옆에 같이 무릎을 끌어안고 앉은 기분이 든다. 빗물이 남긴 흔적, 빗물이 조용히 온몸으로 그린 그림을 보며 시인은 상대의 가슴에 스며들고자 하는 사랑의 본질을 생각한다.

산 넘어 바람은/산사의 적막을 알았나보다/슬그머니 찾아와/덩그렁 댕그렁/적막을 노크한다… 긴 계곡을 거슬러온 사람은/무슨 사연 있기에 부처님께 저리도 매달리는지/보다 못한 풍경이/바람을 붙들고 운다(‘풍경 2’ 중)

바람 한 점 없이 적막한데 어떤 이의 절박한 기원만이 소리 없이 퍼지는 산속 절간. 산을 넘어온 바람은 참지 못하고 처마 밑 풍경을 흔들어 그 간절한 적막의 무게를 흩뜨린다. 소리가 그림이 되는 순간이다. 바람 한 점에 깨어나는 시인의 예민함이 읽는 이의 감각마저 일깨운다.

■김해경, 고통과 진실을 직시하다

비슷한 시기 출간된 ‘먼나무가 있는 곡각지 정류장’(빛남)은 시인 김해경의 세 번째 시집이다. 같은 풍경을 응시하지만, 김해경이 읽어내는 것은 삶의 고통과 절망적인 진실이다. 동시에 존재의 가치에 대한 끈질긴 희망이다.

삶의 중심을 잃어버린/어제의 아버지들이,/느닷없는 사월 꽃바람에/역사 안으로 몸을 들이려는데/그 몸을 따라오는 남루는 두고 오라고/그냥, 사람들이 눈총을 쏘아댄다(‘꽃샘추위’ 중)

부산역 노숙인들은 역 주변 나무를 벽 삼아 추위도 피하고 나무 그늘 아래서 더위도 피한다. 역 정화작업을 구실로 나무들을 싹 뽑아버리자 기댈 데 없어진 노숙인들은 역 안으로 들어오려 하지만, 사람들은 매섭게 쏘아본다. 오래 견뎌왔을 추위보다 눈총 실린 꽃샘추위는 더 매섭다.

오래 전 그 터에 살던/사람들의 웃음 소리와/발자국 소리가 기억나네/주인 없이/저 홀로 우람하게 무성한/목련 나무/저 속에 사람 있다(‘애틋하게’ 중)

목련 나무, 맨드라미, 부산역 앞 나무, 겨울 먼나무…. 김해경의 시에는 식물이 많다. 식물은 우뚝 서 있으나 과시하지 않고, 의식하지 않고도 아낌없이 내어준다. 계절 따라 모양은 변하지만 쉽게 죽지 않는다. 옛것을 할 수 있는 한 오래 지켜가기를, 한결같기를,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기를. 사람에게 바라는 덕목을, 시인은 식물을 보면서 말한다. 신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