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베트남 전쟁 추악한 비밀
- 경쟁신문 보도로 발칵 뒤집히자
- 특종으로 만회하려 처절한 노력
- 페미니즘·언론 정신 일깨워

지난 28일 개봉한 영화 ‘더 포스트’는 경쟁 신문 뉴욕타임스의 ‘펜타곤 페이퍼’ 특종 보도를 만회하려는 워싱턴포스트(WP) 관계자들의 일화를 다뤘다. 그래서인지 개봉 전부터 개인적인 호기심이 컸다. 기자로서, 지방 중소 신문에서 일약 미국의 유력지로 떠오른 워싱턴포스트의 특종기가 궁금했다.

	영화 ‘더 포스트’(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서 워싱터포스트 벤 브래들리 편집국장(왼쪽·톰 행크스)와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립) 발행인이 토론하는 장면.

1971년, 뉴욕타임스의 ‘펜타곤 페이퍼’ 특종 보도로 미국이 발칵 뒤집힌다. 트루먼과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에 이르는 네 명의 대통령이 30년간 감춰온 베트남 전쟁의 비밀이 드러났다. 겉으로는 평화를 외치던 미국 정부가 오래전부터 베트남에 개입했으며, 전쟁을 확대하려 했다는 것이다.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은 법원을 통해 기밀문서 게재 금지 명령을 발포하고, 언론의 입을 막으려 한다. 특종을 빼앗긴 워싱턴포스트의 편집국장 벤 브래들리(톰 행크스)는 진실이 담긴 정부 기밀문서 입수에 사활을 건다. 하지만 회사를 지켜야 하는 상황에 놓인 워싱턴포스트의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립)은 미국 정부의 압박에도 기어코 4000장짜리 문서를 입수해 보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벤 브래들리와 대립한다.

경쟁 언론사가 특종을 터뜨릴까 긴장을 풀지 못한 채 동향을 살피거나, 다른 언론사의 특종 소식을 듣고 기자들이 거리에서 신문을 급히 사서 읽는 장면은 실제 기자들의 모습을 섬세하게 묘사해 살며시 웃음이 났다. 발행인과 편집국장이 정기조찬 회동에서 신문 논조를 고민하고, 관계가 크게 악화된 백악관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논의하는 장면은 사뭇 진지했다.

‘더 포스트’는 다양한 연령대의 많은 관객에게 탐사 보도의 원칙과 언론의 기능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철저히 조사하고, 취재원을 확보하고, 언론의 자유와 회사의 존립 사이에서 갈등하는 실감 나는 모습이 그렇다. 숱한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고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분투하는 언론인을 다뤘다는 측면에서 2016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스포트라이트’를 연상하게 한다. 하지만 배경이 된 사건과 인물 묘사, 풍자 요소 등은 다른 만큼 비교해서 볼 만하다.

‘더 포스트’는 1970년대 여성 리더십과 페미니즘을 다룬 이야기여서 더 특별하다. 캐서린 그레이엄은 가족이 경영하는 신문사 워싱턴포스트를 물려받은 대표였는데, 여성이었다. 그녀가 사교계의 여왕에서 신문사 리더이자 언론이 정론을 펼 수 있도록 길을 터준 위대한 발행인으로 거듭나는 모습이 흥미롭다. 그레이엄이 남성 중심 조직에서 겪는 난관은 ‘여성의 목소리’와 ‘여성 인권’을 생각하게끔 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도 현재 미국 사회의 페미니즘 운동을 격려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지금 한국의 ‘미투 운동’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영화 상영 내내 “신문 발행의 자유를 지키는 것은 ‘발행’뿐이다”(브래들리) “뉴스는 역사의 초고다. 우리가 항상 옳지도 완벽하지도 않지만, 계속 써나가는 거다”(그레이엄) 등의 대사는 시대를 뛰어넘어 깊은 생각 거리를 남긴다. ‘언론 자유의 중요성’ 같은 익숙한 메시지가 감동을 주는 것은 명배우 톰 행크스와 메릴 스트립의 연기 덕분이다. 개봉일인 지난 28일 상영관에 온 관객들은 그레이엄 발행인이 언론의 사명과 회사 존립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정’을 내리는 장면에서 손뼉을 쳤다. 언론이 권력이 아닌 파수꾼이 되는 시작을 알리는, ‘더 포스트’에서 가장 감동적인 대목이었다.

‘더 포스트’는 4일 열리는 제90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