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갈치시장 소재 서민의 삶 등 담아
- 재야 떠돌다 1970년대 초 부산 정착
- 미광화랑 5일까지 20점 모아 회고전

고 현재호(1935~2004·사진) 작가는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서민의 삶과 이상향을 발견한 ‘영원한 보헤미안’이었다. 가난 속에서도 평생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을 일군 그는 주류 미술계에 편입되지 않은 재야 작가였기에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미광화랑(부산 수영구 민락동)이 현재호의 생애를 아우르는 20점을 모아 회고전을 오는 5일까지 연다.

부산을 그린 작가 고 현재호 화백의 ‘자갈치’(1982). 미광화랑 제공

현재호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35년 부산 서구 대신동에서 태어났지만 두 살 때, 26살 위의 누나의 보살핌 속에 중국으로 가 만주, 북경, 대련, 상해 등지를 떠돌았다. 해방 이듬해 귀국해 고향 부산에 정착했지만 고아원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게 된다.

유년시절 방황기를 잘 극복해 청구중·고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을 때 운명처럼 ‘고흐’를 만났다. 동창생이 우연히 건넨 빈센트 반 고흐의 판화집을 보고 전율을 느꼈다. ‘해바라기’ ‘까마귀 나는 밀밭’ 등의 작품에서 받은 충격은 그를 화가의 길로 이끌었다.

‘영도다리’(1963).

제대로 미술을 배워본 적도 없던 현재호는 무작정 그림을 그렸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 민중신보사 주최 공모전에서 4회 연속 특선을 했다. 그림의 주요 소재는 부산 자갈치시장이었다. 서민의 고달픈 삶으로서 현실과 행복한 이상향으로서 비현실을 드러냈다.

그가 그린 사람들의 손과 발은 비정상적으로 크다. 고된 노동으로 투박하고 두툼해진 서민의 정직한 손과 발을 극단화해 표현했다. 비현실적인 형상인 듯 보이지만 어떤 그림보다 현실을 강렬하게 드러내는 그만의 독특한 화풍이다. 그의 작품 속 여인들은 풍만한 젖가슴에 큼지막한 손으로 아이에게 젖을 물린다. 어머니의 정을 모른 채 자란 그의 충족시킬 수 없는 갈망이 드러난다.

고 현재호 작가

그는 자갈치시장 근처 화실, 송도 등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 1961년 서울로 떠났다. 그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둘러싼 불협화음에 환멸을 느껴 공모전과 인연을 끊고 철저한 재야 작가로 들어섰다. 전국을 떠돌며 방황하다 1970년대 초 부산에 정착하면서 다시 자갈치시장을 화폭에 담았다. 부인 이기숙 씨와의 만남은 가난한 삶 속에서도 비로소 안정을 찾는 전환점이 됐다.

화가 지망생으로 16세 연하였던 부인은 탈 공예가로 활동하며 서로의 예술에 대해 조언하는 동반자가 됐다. 1980년대 마산에 정착한 뒤로는 마산 어시장 등 마산의 정서를 표현했다. 후기의 작품은 낙천성과 인생사에 대한 달관이 두드러진다. (051)758-2247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