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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힘든 일상 작지만 확실한 나만의 행복 소확행(小確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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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확행. 작지만 확실한 행복. 요즘 부쩍 많이 듣는 말이지만 사실 1986년 발간된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표현이 시작입니다.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 만 깨끗한 팬티가 잔뜩 있다는 것은, 작기는 하지만 확고한 행복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이건 어쩌면 나만의 특수한 사고체계인지도 모르겠다” 그 표현이 30년 세월을 건너뛰어 현대 젊은이들의 행복관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떠올랐죠.
   
부산대 앞의 한 만화카페 모습. 요즘 만화카페는 대개 산뜻하고 편리하고 쾌적한 면모를 갖췄다.
‘대확행’ 아니라 ‘중확행’도 잡기 어려운 현실에서 스스로를 다독이며 자족하려는 의식이 소확행으로 번졌다는 해석도 있습니다만, 많은 돈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 소소한 일상에서 찾는 행복이라야 만족감과 ‘가성비’가 더 크기 때문에 나온 말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부산 사하구 다대동에 사는 30대 여성 A 씨는 둘째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면서 자신만의 소확행을 발굴했습니다. A 씨는 유치원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15분쯤 걸어 다대도서관으로 갑니다. 책을 빌려서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자료실 좌석에 앉습니다. 경쟁률 높은 자리인데 오늘은 운이 좋네요. 지겨우면 옥상정원으로 올라갑니다. 시원한 바람과 탁 트인 풍경을 즐기며 캔커피를 마십니다. 배가 고프면 도서관 식당에서 점심까지 해결하고 아이를 데리러 갑니다. 요즘 아이에게 화를 덜 내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책, 음악, 공연, 영화, 춤… 일상의 작은 즐거움, 그러나 확실한 만족감을 찾는데 문화·예술 만한 것이 있을까요. 힘든 마음과 버거운 일상을 위로하고 삶에 새로운 힘을 보태줄 ‘문화 소확행’을 당신도 한두 가지 누리고 있을지 모르겠군요. 국제신문 문화부 기자들의 체험을 조심스럽게 제안해봅니다. 당신의 문화 소확행을 찾아내는 데 작은 힌트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만화카페에서의 반나절

- 돌아온 신식 만화방 ‘만화카페’
- 후루룩 짭짭 라면 한그릇 백미

   
어린 시절, 만화에 파묻혀 살았다. 담배 연기 가득한 지하 만화방에서 한 권 50원에 빌려주는 만화를 쌓아놓고 보던 중학생. 지금 봐도 여느 문학작품을 능가하는 품격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신일숙), 종잡을 수 없지만 매력적인 판타지에 묘한 성적 코드가 뒤섞여 소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 ‘갈채’(김영숙) 시리즈, 주인공의 비극적 운명에 눈물 콧물 짜던 ‘아뉴스데이’(황미나)는 어린 날, 그리고 그 이후 오랫동안 내 감성을 지배했다. 식당 하시던 아빠가 카운터 돈을 몰래 빼간 딸을 쫓아오기 전까지 배고픈 줄도, 목마른 줄도 모르고 만화를 파고 또 팠다. 만화도 좋았지만, 너무나 현실적인 세상에서 도피할 수 있는 만화방이라는 동굴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만화의 시대, 엄밀히 말해 만화방의 시대가 갔다. 완전히 갔나 싶었는데 몇 년 전 다시 돌아왔다. 옛날과 다른 점은 퀴퀴한 냄새와 얼룩이 잔뜩 묻어있던 소파가 사라지고, 시설이 꽤 산뜻해져서 ‘만화카페’라고 불린다는 것. 게다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동굴’이 구현됐다는 것! 신발 벗고 들어가는 반 평짜리 작은 방을 여러 개 만들어서 누워서도 앉아서도 엎드려서도 만화를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개인 사업체보다 프랜차이즈가 많고, 서면 부산대 덕천동 남포동 사상 해운대 사직동 등 부산 전역에서 찾을 수 있다. 도심에 있는 만화카페들은 접근성이 좋은 만큼 손님이 많아 주말에 꽤 시끌벅적하고, 만화책도 많이 닳았다.

예나 지금이나 만화방의 백미는 라면이다. 옆자리 아저씨가 짜장면 먹는 모습을 슬쩍슬쩍 보며 군침을 삼키던 어린 시절을 보상하듯, 컵라면 말고 조리 라면을 시켜서 후루룩 후루룩 먹는다. 개인적으로 라면을 먹으면서 만화책을 보지는 않는다. 만화책은 소중하니까, 국물 튈까 봐. 점포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음료 한 잔+ 2시간 이용권이 6500원, 세 시간은 8000원 정도. 휴일 반나절을 보내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이지만, 먹성을 통제 못 하면 장담 못한다. 퇴근 후 아니면 이번 주말, 집 가까운 만화카페를 한 번 찾아보시길. 누가 아는가, 스트레스로 꽉 막힌 심신이 어릴 적 보던 만화와 라면 한 그릇으로 스르르 해소될지.


★퇴근 길 들르는 ‘살롱 음악회’

- 화려·웅장한 공연은 아니지만
- 아늑한 공간 클래식연주 ‘힐링’

   
퇴근 후 그냥 들어가기엔 아쉬운 어느 평일 저녁. 어딜 가볼까 고민하다 결정한 곳은 ‘작은 음악회’였다. 평소 참고하는 소셜 미디어를 뒤적였다. 공공 문예회관, 공연이 어우러진 카페, 맥주 한잔을 곁들일 수 있는 라이브 클럽까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도심 곳곳에서 가볼 만 한 음악회는 금세 찾아낼 수 있다. 심지어 길거리 버스킹 일정까지 말이다.

대개 입장료는 저렴하고 출연진의 무대는 기대 이상이다. 그 어느 공연장보다 정다운 무대와 객석의 교류는 작은 공간이라 가능한 즐거움이다. 이날은 부산 동래구 명륜동의 ‘스페이스 움’으로 향했다. 평소 카페 영업을 하지만 전시, 공연, 강좌가 수시로 열리는 아늑하고 꽉 찬 문화 공간이다.

오후 8시 공연을 넉넉히 앞두고 도착했다. 입장료 1만 원에 포함된 커피와 간식을 즐기며 공간을 둘러봤다. 지역 작가들이 만든 수공예품, 액세서리가 진열됐고 이지우 작가의 ‘도자 조명전’이 함께 열리고 있었다. 느긋하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며 공연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어쩐지 반가운, 나와 같은 ‘혼공족’(혼자 공연을 즐기는 관객)도 상당했다.

클래식 음악 공연의 원형은 소규모 살롱 음악이라 했다. 그 옛날 분위기도 이러했을까? 피아니스트 나예지, 바이올리니스트 이라희, 첼리스트 하경희로 구성된 ‘트리오 하나리’가 알기 쉬운 해설을 곁들이며 탱고 음악의 대가인 피아졸라의 ‘사계’와 쇼스타코비치의 ‘트리오 Op.8’, 숀필드의 카페 뮤직을 차례로 연주했다. 탱고의 역사, 숀필드 음악의 작곡 배경 이야기는 특히 흥미로웠다. 40여 명의 관객이 옹기종기 앉아 연주를 감상했다. 세밀한 현의 울림과 피아노 건반의 터치까지 오롯하게 느낄 수 있는 무대였다.

별다른 준비도 없이 들어갔지만, 역시나 충만한 만족감이 드는 ‘작은 음악회’였다. 화려하고 웅장한 공연도 좋지만 평일 저녁 가벼운 마음으로 ‘살롱 나들이’는 어떨까. 다른 세상에 살 것만 같은 예술인들도 이곳에선 한결 가깝게 느껴진다.

신귀영 안세희 기자 ahnsh@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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