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 명소인 부산 기장군 더 무빙 카라반을 찾은 가족이 바닷가에서 한가롭게 책을 보며 여름 휴가를 보내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kookje.co.kr

휴가철에 들어섰다.

올 여름 당신의 피서지가 어쩌면 늘 누워 있던 그 ‘방콕’일수도 있지만, 책 한 권이 당신을 남국의 바다나 골 깊은 휴양림으로데려다 줄 수도 있다.

‘휴가철 하고 싶은 일’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당신의 독서를 위해 문화계 곳곳에서 책 추천을 받았다.

지휘자, 만화가, 박물관장, 미술관장, 소설가, 서점 주인, 음악을 사랑하는 의사가 휴가 때 한번 읽어보라고 권한 책은 뭘까.

교양을 업그레이드시켜 줄 책, 예술 지식을 채워줄 책, 잔잔한 웃음을 안겨줄 책, 말라붙은 감성을 적셔줄 책, 등골이 오싹한 스릴을 안겨줄 책.

자, 취향대로 골라잡으시라.


# 각박한 세상 단순함의 역설

꼬마 니콜라- 르네 고시니 글 /장 자크 상페 그림

어린 시절 삽화가 마음에 들어 가까이 했던 책이 있다. 성인이 된 뒤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다시 만났고, 반가운 마음에 주저 없이 샀다. ‘꼬마 니콜라’. 역시나 내용보다 삽화 위주로 페이지를 넘기는 나를 발견했다. 두 쪽마다 한 번쯤 나오는 삽화가 장 자크 상페의 그림은 재미있고 디테일한 요소와 함께, 순수함과 따스함을 동시에 지녔다.

그림 속 아이들은 웃거나 찡그리는 등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표현하는 반면, 신기하게도 어른들은 대부분 그들 감정을 숨긴 모호한 표정임을 발견한다.

복잡하고 빠른 이 각박한 세상에서,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고민하고 재면서 살아간다.

때로는 여과 없는 순수함과 단순함이 각박한 세상을 따뜻하게 하고 본질적인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 믿는다.

최수열 부산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 부산 관광지 호러 베케이션

딥(DEEP)- 토우 글 /김태헌 그림

인파로 가득한 성수기의 광안리 해수욕장에 수십 구의 시체가 떠내려온다. 아니, 시체는 아니다. 이들은 분명 눈을 뜨고, 호흡하고 있다. 뉴스를 통해 이들은 모두 16년 전 실종된 사람들이라는 것이 확인되지만, 과연 이들은 살아있는 것인가. 그리고 이들은 어디서 왔는가. ‘부산 토박이’ 김태헌 작가가 그린 웹툰 ‘DEEP’은 좀비와 바다를 합친 독특한 소재를 다루고, 부산의 바다를 배경으로 해 주목받았다.

광안리, 해운대, 일광, 금련산청소년수련원, 용호동 등 시작부터 끝까지 부산의 관광지에서 벌어지는 로컬 스릴러다. 판타지적인 내용이지만 부산 곳곳을 정밀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다 보니 몰입도가 높다. 작품을 읽고 나서 작품에 나오는 지역만 찾아다녀도 ‘호러 베케이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배민기 만화가·부산경남만화가연대 대표


# 아는 만큼 보이는 서양미술

김영나의 서양미술사100- 김영나 지음

책 제목과 450쪽 분량으로 우선은 묵직함으로 다가온다. 미국에서 유럽 현대 미술을 전공하고 30년 넘게 미술사 교수와 5년 동안 제11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김영나 교수가 한 일간지에 매주 연재한 원고를 보완해 단행본으로 엮었다. 곧 2쇄를 찍는 등 반응이 좋은 책이기도 하다. 책을 펼치면 그야말로 읽고 보는 즐거움으로 묵직한 첫인상과 달리 손에서 놓기 싫어지는 매력적인 책이다. 현학적이지 않은 쉬운 문체, 군더더기 없는 서술 …. 작품 이해와 미적 본질에 쉽게 이르게 한다.

서양 미술 중 회화를 중심으로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걸작을 신화 신앙 정치 권력 시대 도전 등 8주제로 나눠 10점 안팎씩 안배했다. 무더위에 찌든 몸과 마음에 청량감과 정서적 만족을 주는, 한마디로 재미있는 양질의 교양서이다.

이원복 부산박물관장


# 도시속 혼자들의 삶 예찬

혼자를 기르는법 1,2- 김정연 글·그림

휴가철에 보는 책이라면 만화를 먼저 떠올린다. 만화의 ‘완결’을 보고 나면 소설책의 결말을 읽을 때와는 다른 ‘후련함’ 같은 것을 느끼는데 이게 휴가를 보내는 마음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화라 해서 가볍게 생각하지는 말자. 후련함 뒤 찾아오는 놓칠 수 없는 생각 덩어리가 마음속에 둥둥 떠오를 때도 있으니.

주인공 ‘이시다’는 이십대 후반 직장 여성으로 스스로를 돌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혼자를 지켜내려 안간힘을 쓰는 이시다는 햄스터 ‘쥐윤발’을 키우면서 자기 삶과 주변으로 시선을 확장해간다.

깔끔한 그림선, 시니컬한 문장, 시적인 표현, 동시대를 사는 젊은이라면 공감할 만한 내용은 읽는 사람 마음 위로 사회와 시스템에 대한 생각 덩어리를 띄운다. 급기야 일터로 돌아가면, 고군분투하는 우리 모두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이정임 소설가


# 내려놓으니 보이는 지혜

백만 광년의 고독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류시화 지음

사위는 온통 초록 물결이다. 5·7·5 열일곱 자로 된 일본의 정형시 하이쿠는 물소리 맑은 계곡의 피서에 더 안성맞춤일 것 같다. 짧은 형식 속에 번갯불처럼 번뜩이는 삶의 통찰이 들어있다. 압축과 여백이 일품이다.

‘고요함이여 / 바위에 스며드는 / 매미의 울음’(바쇼), ‘목욕한 물을 / 버릴 곳 없네 온통 / 풀벌레 소리’(오니쓰라)

그 짧은 형식 속에 계절의 순환이 흐르고, 삶에 대한 관조의 시선이 은근하고, 뭇 생명에 대한 외경이 넘치고, 우리네 인생에 대한 성찰이 엿보이고, 상상력의 실마리가 숨어있다. 이 책은 젊은이에게 질풍노도의 욕망에서 한 발 비켜서는 배려와 여유를, 나이 든 이에게 되돌아보기와 내려놓기의 지혜를 줄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마음의 키가 자라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행복감은 소소한 덤이다.

김문홍 극작가

문화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