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사유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지수 옮김

한국인이 사랑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책에서 아우슈비츠를 방문한 경험을 말한다.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산처럼 쌓아 올려진 엄청난 수의 신발과 시계. 이를 보며 인간이 이렇게까지 잔혹할 수 있다는 점을 통렬하게 느꼈다고 한다. 감독은 이처럼 간접적인 것에서 오히려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영화에서 상당 부분 직설적인 전달이 아닌 간접 묘사를 통해 메시지를 전한다. 책은 소설가를 꿈꾸던 청년이 TV 방송 제작사에서 좋은 다큐멘터리를 만들려고 분투하다 영화감독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기 영화와 세상에 대한 생각, 일본 방송·정치·문화에 대한 비판과 제언도 있다. 감독의 영화를 보고, 해당하는 내용을 펼쳐 읽으면 올 여름을 재밌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지훈 철학자·필로아트랩 대표


# 평범한 청년의 예술기행문
　 　
나의 서양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

전문 미술 서적이 아닌, 감수성 풍부한 청년의 수필집이다. 여느 미술 전문가와는 다른 시선으로 인간의 예술 창작 잠재력을 깨운다. 재일동포 2세인 저자는 1971년 문학가의 꿈을 안고 와세다대 불문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서울대 대학원에 유학 중이던 두 형이 재일교포간첩사건에 연루돼 중형을 받는다. 수감생활을 하는 두 형을 위해 남은 가족은 일본에서 구명 운동을 펼치며 뒷바라지하는 고통스러운 생활을 19년이나 계속했다. 그런 도중 부모님이 중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바로 그해 서경식은 유럽 여행을 떠났다. 그 여행을 계기로 그는 예술에 큰 관심을 갖고 글쓰기에 몰두한다. 글을 쓰면서 고통에 사로잡힌 시간과 투쟁해야 했을 것이다.

책은 투쟁의 결과물이다. 그가 자신을 ‘언어의 감옥에 갇힌 수인’이라 했던 그런 결과물.

김선희 부산시립미술관장


# 공포로 전율하는 스릴러

무저갱- 반시연 지음

아무것도 안 보이는 공간 속 하얀 가면이 속삭인다. “네 죄를 말해.” 공포로 시작하는 이 책은 처음부터 전율을 느끼게 해주었다. 어떠한 준비된 각오도 없는데 ‘훅’하고 들어오는 습하고 끈적끈적한 한여름 공기처럼, 스토리는 계속 무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답답함 속에서 이야기는 끊임없이 새로운 가지를 치고, 갈라내지 못할 정도에 이르게 되어 몸통을 잘라낼 수밖에 없는 넝쿨처럼, 한순간도 문장을 허투루 지나치지 못하게 해주었다. 때로는 투박하게 다가온 이야기도 왠지 철학을 담은 이야기인 듯해 몇 번이나 다시 읽게 만들었다. 법의 사회에서 법의 존재감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 정도로 집중력을 보여준 스릴러이다. 바닥 없는 깊은 구멍을 뜻하는 무저갱에 사는 악마는 어쩌면 ‘나’인지도 모른다. 그 오싹함을 이 여름에 느낀다.

조준형 문우당 서점·도서출판 스토리팜 대표


# 모녀가 이해하는 과정　

딸에 대하여- 김혜진 지음

‘82년생 김지영’은 한국 사회 여성이 겪는 구조적 차별을 담담하게 말하며 지난 1년간 페미니즘 이슈 확산에 큰 구실을 했다. 김혜진의 장편소설 ‘딸에 대하여’ 역시 페미니즘 문학 계보를 이으며 여성 독자에게 특히 주목받은 소설이다. 전직은 초등학교 교사이나 지금은 노인요양병원에서 무연고 노인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엄마는 많이 배우고 똑똑한 딸의 동성연애를 마냥 지켜볼 수가 없다. 딸을 바라보는 엄마가 최선의 이해에 도달하는 과정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는 행위의 한계와 가능성을 보여준다. 지금을 살아내야 하는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가 아주 감동적이다. 김혜진 소설가는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치킨 런’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2013년 ‘중앙역’으로 제5회 중앙장편문학상을 받았다.

김민석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연구센터장


# 제주도 4·3의 절규와 눈물

한라산의 노을- 한림화 지음

이 장편소설은 1947년 3월 1일 제주시 관덕정에서 열린 3·1절 기념행사부터 49년 6월 이덕구가 죽은 시점까지 이야기한다. 올 초 제주도 4·3 평화공원에 다녀왔다. 누운 백비 위로 한 줄기 빛이 내려오고 있었다. 4·3을 어서 조명해 달란 뜻으로 읽었다. 그러나 ‘큰넓궤’에서 생존한 할머니를 뵙고는 제주도민의 간절했던 살 길을 나타낸 빛이었음을 깨달았다. 1947~1954년 제주도민 1/10인 3만을 죽인 제노사이드는 인간 상상을 넘어선다. 그래서 이 소설도 르포와 픽션의 경계가 모호하다. 80년대부터 취재한 작가는 죽음의 충동을 이겨가며 이 지옥사를 썼고 91년 ‘4·3 장편’으로는 최초라는 역사가 됐다. 2016년 다시 나온 이 책으로 일독을 권한다. 작가가 묻고 있다. 그들이 왜 47년 3·1절 기념식을 ‘독립운동’이라 증언하는지를.

강정아 어린이서점 책과아이들 공동대표


# 세계 최고 전쟁 이론서

화산의 온통(온전하게 통하는) 손자병법- 화산 지음 /이인호 옮김

‘손자병법’은 진정한 ‘팔색조’다. 읽는 이에 따라서, 시선의 각도에 따라서 팔색조처럼 다채로워진다.

무엇보다, 제자백가가 남긴 중요한 사상서이다. 제자백가 사상서의 요체가 세상이 잘 돌아가게 하고, 백성을 잘 살게 하는 원리에 있다 할 때 ‘손자병법’은 병가라는 영역에서 그 일을 한다.

2000년 넘는 세월에 걸쳐 검증된 전쟁에 관한 최고의 이론서이며 삶의 지침서이기도 하다. ‘손자병법’을 제대로 흡수한다면, 당신의 삶은 위태롭지 않게(不殆) 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이길 수도 있다.

손자병법 해설서는 아주 많지만, 2016년 번역·출간된 이 책은 절실하고 풍부하며 사려 깊고 흥미롭다. 983쪽이면 어떠랴.

휴가를 함께 보낼 좋은 그리고 두꺼운 친구다.

조봉권 국제신문 문화부장

문화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