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자 처지 다른 인물들 통해
- 죽음에 관한 다양한 시선 그려
- 중견·신인배우 연기호흡 기대

북한산 인근 낙원빌딩. 401호 덕수는 만성신부전증과 뇌졸중 후유증을 안고 고단하게 살아가는 독거노인이다. 잊을 만 하면 쓰러져 바로 옆 건물인 119 안전센터의 구급차 신세를 지고 깨어나길 반복하는 서글픈 처지다.

	연극단체 문화판 모이라 단원들이 18~21일 공연하는 신작 ‘나는 죽는다’를 연습하고 있다. 연극단체 문화판 모이라 제공

덕수는 어느 날 근처 PC방 아르바이트생 아름에게 ‘말벗’이 되어달라 제안한다. 아르바이트비가 시세를 크게 웃도는 고액이라 미심쩍지만, 돈이 궁한 아름은 받아들인다. 그러던 중 덕수는 아름에게 목돈 만들 일을 제안하는데, 그것은 5000만 원을 줄 테니 자신을 죽여달라는 것이다. 단, 벚꽃이 만발한 날에. 덕수가 제시한 유일한 조건이다.

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연극단체 ‘문화판 모이라’가 네 번째 정기공연에 올려놓은 주제는 ‘죽음’이다. 김숙경 대표의 극작과 연출로 연극 ‘나는 죽는다’가 막을 올린다. 연극은 처지가 다른 인물을 통해 죽음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을 그저 보여준다. 간절히 죽고 싶은 덕수, 악착같이 살고자 하는 상만, 타인의 죽음을 막으려는 119 대원 등이다. 죽음은 인간 조건이자, 인류에 주어진 그 어떤 것보다 평등한 요소이건만 덕수와 상만이 보는 죽음은 너무도 다르다.

김숙경 연출은 “삶과 죽음은 붙어 있다. 인간의 실존적 조건이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나를 비롯한 대부분 사람은 죽음을 보지 않고 산다. 떠올리자면 두려움이 앞서고. 그러나 우리 모두 그곳을 향해 가고 있지 않나. 그 죽음을 한 번 응시하고 싶었다”고 기획 배경을 전했다. 무거운 연극일 것 같지만 무대나 대사는 의외로 일상적이고 담담하게 흐른다. 네 개 건물을 배경으로, 배우들은 소소하고 친근한 일상을 연기한다. 보다 보면 ‘키득’ 하는 웃음이 나올 법한 장면도 여럿이다.

김 연출은 “인물의 일상을 부담 없이 보며 자연스럽게 주제에 대한 생각이 차오르길 바랐다. 드라마틱하진 않지만 보는 재미가 있는 연극으로 다가가고 싶었다. 주제를 강요하기보다 풍경과 아이러니를 응시하는 데 높은 비중을 뒀다. 나 또한 답은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희곡을 쓸수록 이 소재로 주제의식을 드러낼 순 없겠다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사람들이 죽음을 조금 덜 두렵게 맞이하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두려움을 덜어낼수록 삶의 의미도 변하지 않을까. 위로라면 그런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양한 연령대 배우가 무대를 꽉 채운다. 호민, 주형준(양지웅), 이한성, 김아름, 손남숙, 송준승, 한혜민, 이태희까지 젊은 배우부터 중견까지 고루 출연한다.

2014년 김숙경 대표가 창단한 문화판 모이라는 2015년부터 해마다 한 차례씩 김 대표의 극작·연출로 공연을 이어왔다. 배우는 작품에 따라 바뀐다. ‘거기, 두루마을이 있다’(2015), ‘세상에 하나뿐인 부동산’(2016), ‘올드 브라더미싱’(2017)이 창작 초연됐다. 공연은 오는 18~21일 경성대 예노소극장(남구 대연동)에서 5회 공연한다. 평일 오후 7시30분, 토요일 오후 3시, 7시. 전석 3만 원. 010-9701-0712

안세희 기자 ahnsh@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