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사진가 부친따라 절 다니며
- 천장화·벽화 관찰하다가 매료돼

- 인물 등 회화 수법으로 그린 문양
- 수덕사 대웅전벽화 등 14점 전시
- 아버지와 2인展 여는 것이 꿈

불화(佛畵)라는 말을 들으면 보통 부처나 보살을 그린 그림을 떠올린다. 그러나 사찰의 천장과 벽을 찬찬히 살펴보면 보면 화초, 사군자, 용 같은 다양한 소재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렇게 인물이나 산수, 동식물을 회화적 수법으로 그린 단독 문양을 별화(別畵)라고 한다. 이 별화에 매료돼 ‘법고창신’(法古創新) 정신으로 전통 불화를 재해석 하려는 20대 작가가 있어 눈길을 끈다.

부산 영도구 작업실에서 칠성탱화를 그리고 있는 노해 작가. 노 작가는 불화의 한 영역인 ‘별화’를 복원하고 재해석한다. 박수현 선임기자

노해(27) 작가는 지난달 생애 첫 개인전을 열었다. 4년 동안 그린 불화 14점을 모아 선보였다. 작가 본인조차 “대중이 관심을 가져줄까 반신반의”했지만 반응은 꽤 뜨거웠다. 여러 점이 판매됐고, 무엇보다 관람객이 즐거워하며 그림에 호기심을 보였다.

노 작가의 작품은 여타 불교미술과 조금 다르다. 전통적인 불화를 그리고 똑같이 모사하기도 하지만 사찰 속 민화, 즉 ‘별화’라는 불교미술 작가들이 좀처럼 다루지 않는 영역을 시도한다. 이번 전시에도 부처에게 바치는 공양화를 그린 수덕사 대웅전 벽화, 달에 사는 옥토끼 두 마리가 절구를 찍고 있는 고흥 금탑사 극락전 별화, 단청 문양으로 꽃을 그린 통도사 만세루 포벽 벽화 등 다양한 별화를 선보였다. 노 작가의 별화는 ‘사찰에 그려진 그림’이라는 이야기를 따로 듣지 않으면 불화라고 생각지 못할 수도 있다. 전통과 현대, 종교적 색채와 비종교적 느낌이 섞여 있어 어떤 장르인지 쉽게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부터 사람들은 산사에 모여 기도를 올렸어요. 건강, 부귀, 지혜 등 저마다의 염원을 사찰 벽면에 그려 넣었죠. 그것이 바로 사찰 속 민화, 별화예요. 별화는 사찰 천장과 벽 등에 그려져 있어 모르고 지나치기 쉬워요. 혼자 보기 아까운 별화를 대중에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건축물에서 떼내 종이로 옮겼죠. 훼손되거나 박락돼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그림은 복원하고, 이미 있는 그림도 재해석해 저만의 색채가 있는 작품으로 만들어요.”

노 작가가 별화에 관심을 가진 건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불교전문 사진가 노재학(56) 씨를 따라 어릴 적부터 전국 유명 사찰에 수도 없이 다녔다. “아버지가 몇 시간이고 사진을 찍는 동안 저는 전각에 덩그러니 앉아 천장화와 벽화를 관찰했어요. 전각 내외부엔 부처님 형상 외에도 꽃, 동물 등 여러 문양이 그려져 있단 걸 알게 됐죠. 별화 중엔 통도사 영산전 벽화인 ‘견보탑품도’를 가장 좋아해요.”

노해 작가의 첫 개인전에 출품된 고흥 금탑사 극락전 별화.

노 작가는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졸업할 때만 해도 동양화 기법을 적용한 ‘개념미술’(현대미술의 경향. 아이디어나 과정을 예술이라 생각하는 제작 태도)을 하고 싶었다. “전통회화의 색을 배워보라”는 아버지의 권유를 받고 중요무형문화재 118호 불화장 이수자 원여 이승규 씨에게 불화를 배운 뒤 불화 작가로서의 길을 정하게 됐다. “불교미술은 한국화의 한 장르이지만, 한국화의 모든 기법, 기술, 재료가 녹아 있어요. 한국화의 ‘정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예요.” 지금은 한국전통채색화협회 부속기관 원여전통미술학회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문화재수리기능자 화공, 모사공 자격증을 취득했다.

노 작가는 “종교를 떠나 전통 회화인 ‘별화’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싶다. 아버지와 함께 불교사진, 별화 2인 전을 하는 것이 꿈”이라 말하며 활짝 웃었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