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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해체되는 가족과 일본사회의 그늘

영화 ‘어느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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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7-26 18:54:17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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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도 걸어도’(2008) 이래 고레에다 히로카즈(1962~ )의 영화는 가족이란 화두를 통해 일본 사회의 현실을 투영해왔다. 일견 따스해 보이는 가족 드라마의 심층에는 언제나 평온함의 이면에 감춰진 일본 사회의 바닥과 균열을 드러내 보이려는 사회학자의 태도가 깔려있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은 후쿠오카의 도시와 가고시마의 시골로 갈라져 버린 일가족,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는 병원에서 뒤바뀐 친자를 찾으려는 친아버지,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에선 이복 여동생을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세 자매, ‘태풍이 지나가고’(2016)에선 이혼 가정의 일상을 다루면서 전통적인 가족 형태의 해체와 정서적 연대감의 위기, 공동체의 유지를 위협하는 사회적 조건의 문제를 끈질기게 탐구해왔다.
   
영화 ‘어느 가족’ 스틸컷. 가가커뮤니케이션스 제공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근작 ‘어느 가족’(2018)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일본어 원제는 만비키 가족(万引き家族). ‘만비키’는 ‘물건을 사는 척하면서 훔치다’는 뜻이다. ‘태풍이 지나가고’를 낸 후 당분간 가족 영화 대신, 실화를 기반으로 한 사회문제 소재의 영화를 만들겠다고 밝힌 감독은 가족 드라마와 사회파 리얼리즘이 결합한 형태로 ‘어느 가족’을 끌고 나간다. 일용직을 하면서 틈틈이 매장에서 물건을 훔쳐 파는 아버지 칸지, 그의 도둑질을 돕는 아들 쇼타는 아파트 단지 밖에서 홀로 추위에 떠는 어린 소녀 유리를 집으로 데려온다. 이 집안은 사실 혈육이 아닌 사람들끼리 뭉친 일종의 대안 가족이었던 것. 2막 구성인 영화의 절반은 친부모에게 학대받은 상처투성이 소녀가 대안 가족의 일원이 되어가는 과정과 소소한 에피소드에 할애된다.

보통의 일본 영화라면 이 작고 가난한 대안 가족을 정이 메말라가는 현대의 가족제도에 대한 해법처럼 내세우며 결말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감독은 손쉬운 위안 대신 냉혹한 현실을 조명하길 택한다. 가족의 연대감은 반드시 혈연에 매이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면서 온화한 분위기를 자아내던 영화의 온도는 구성원들을 묶어주던 할머니의 죽음을 기점으로 싸늘하게 식어 버린다. 연금에 의지해 살던 가족은 주 수입원을 잃지 않고자 (영화의 모티브가 된 실화처럼) 할머니의 죽음을 은폐하고, 얼핏 끈끈해 보이던 대안 가족의 결속력 또한 위기를 마주하자마자 순식간에 부서지고 만다. 돈과 생존의 문제 앞에서 그동안 감추어져 왔던 이기심의 진실, 인간의 바닥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만다.
‘어느 가족’은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아무도 모른다’(2004) 이래 매달려온 일본 사회 탐구의 한 결정판이자, 현대 사회의 골수에 끼친 병폐를 헤집고 들어내는 메스와도 같은 작품이다. 허울만 남았을 뿐 안식처의 기능을 상실한 가족 제도,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일하다 다쳤음에도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불합리한 고용 현실, 할머니의 연금에 의지하지 않으면 생활할 길이 막막한 서민층의 빈곤과 복지제도의 사각지대, 양극화의 심화 그리고 이 모든 사회적 실패를 국가와 공동체가 아닌 개인의 책임으로 몰고 가는 사회적 풍토의 암담함이 두 시간 남짓한 시간의 가족 드라마 속에 단번에 함축된다.

   
감정의 고임과 흘러넘침을 자제한 채 사건과 인물을 관조하는 ‘고요한 시선의 냉담’이라 할 카메라의 담담함은 비극의 현실을 두고 영화가 취할 수 있는 성숙의 한 경지라 할 것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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