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년째 매일 새벽 5시30분
- 안민고개에 올라 일출을 본다
- 그리고 있는 그대로 써내려간다

- 먼저 아내를 떠나보낸 슬픔
- 견디는 시간·집으로 가는 길
- 그가 지내는 생활이 담겨있다

- 특별할게 없어 해설이 필요없고
- 거창할게 없어 마음에 와닿는다

외로움에서 완전하게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과 있을 때도, 여러 사람과 어울려 있을 때도, 문득 외로움을 느낀다. 물론 그 정체를 명확히 설명할 길은 없다. 그나마 나 혼자만 외로운 게 아니라 다행이랄까. 김승강 시인의 시집 ‘봄날의 라디오’에는 외롭고, 슬프고, 쓸쓸한 삶의 풍경이 배어있다. 일상 매 순간에서 느끼는 감정을 담담히 엮은 시들이다. 시집을 읽다 보면 너무 ‘솔직하게’ 쓴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시인의 감정이 낯설지 않게 느껴질 뿐 아니라,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경남 창원시 안민고개의 카페를 찾은 김승강 시인. 그는 13년째 매일 아침 자전거를 타고 안민고개를 오르고 있다.

창원시 안민고개에서 김승강 시인을 만났다. 장복산 산허리 약 9㎞ 고갯길은 창원시 진해구 태백동과 성산구 안민동을 이어준다. 안민동에 사는 김승강 시인은 새벽마다 자전거를 타고 이 고개를 오른다. 새벽 5시30분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어둠을 가르며 달리다 일출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 하루를 시작한 지 13년째다. 40여 분 자전거를 달려 도착하는 곳은 고개 정상에서 진해 쪽으로 조금 더 가서 자리한 휴게 카페이다.

태풍 콩레이가 지나간 뒤의 고갯길에는 나뭇잎이 무수히 떨어져 있었다. “평소에는 풍경이 더 아름다운데 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아쉽네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죠.” 그러고 보니 자전거를 타고 고개를 오르내리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장복산과 시루봉의 등산 기점이라 등산객도 보였다. 카페 야외 탁자에 앉아 내려다보면 시야가 탁 트인다. 진해 시가지가 보이고, 시원하게 바다가 펼쳐진다. 멀리 거가대교가 보였다. 김승강은 아침마다 이 풍경을 바라보고 하루를 시작한다.

■담백하고,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

봄날의 라디오 - 김승강·2017·황금알

김승강은 1959년 마산 합포구에서 태어났다. 7살 때 진해로 와서 자랐다. “고교 때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 시를 썼어요. 시국이 어수선했던 그 시절 주류를 이루던 문학 분위기와 제 시의 분위기가 좀 다르다고 느꼈지요. 시 쓰는 일이 슬펐다고나 할까요. 어느 순간부터 시를 쓰지는 않고, 가슴 속에 담아 두고만 있었습니다.”

부산의 경성대 중어중문학과와 경상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작은 사업을 했다. 경남 여러 지역을 다니며 일하는 동안에도 시는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창원에서 전공을 살려 번역 일을 하면서 다시 시를 썼다. 아니, 가슴에 있던 시가 세상으로 걸어 나왔다. “90년대 이후 문학의 다양성이 나타나는 걸 보면서 시를 썼어요. 그냥 자연스럽게 그날이 온 것처럼요.” 그는 2003년 ‘문학·판’으로 등단했다. 시집 ‘흑백다방’ ‘기타 치는 노인’을 내고, 2017년 6월 ‘봄날의 라디오’ ‘어깨 위의 슬픔’ 시집을 더 냈다.

‘봄날의 라디오’ ‘어깨 위의 슬픔’을 읽고 시인을 만났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고백이 많이 보였다. 아내를 일찍 떠나보낸 깊은 슬픔, 자전거와 클래식 기타에 녹여내는 아픔, 혼자 견뎌내는 시간…. 김승강은 “내가 가진 것, 내 안에 있는 걸 표현했지요. 담백하고, 담담하게. 시적 표현에 연연해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씁니다. 번역을 하면서 읽는 사람을 위해 쓰는 문장을 늘 생각한 영향도 있는 것 같아요. 제 시는 해설할 필요가 없어요.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시집에는 평론가의 해설이 없다. 그편이 더 좋았다. 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건가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감상 영역이 자유롭게 뻗어 나가는 느낌이 든다. 그는 문학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밖으로는 문인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겸손한 시선을 가지고, 내면으로는 나 자신에게 엄격해야 합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낙관적 비애를 담아내는 詩

‘봄날의 라디오’를 읽으면 쓸쓸하고 슬픈 느낌이 마음을 천천히 적셔온다. 그렇다고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도 아니다. “동료 시인이 시집을 읽고 난 뒤 말하더군요. ‘낙관적 비애’가 느껴진다고. 일부러 그렇게 쓴 건 아니지만,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다른 성질을 가진 두 낱말인 ‘낙관’과 ‘비애’로 제 시집에 흐르는 정서를 콕 짚어 말해준 거죠.”

우리 삶은 늘 조금은 쓸쓸하고 슬프다. 따져 보면 마냥 기쁘고 즐거운 날은 그리 많지 않다. 사람들은 묵묵히 그 일상을 견뎌가고 있다. 김승강의 시에서 그 일상이 보인다. 시집의 정서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마음에 와닿는 까닭이다.

시 ‘건널목’에서는 일상의 비장함이 느껴진다. “백주대낮이었다/ 저쪽이 이쪽을 향해 노려보고 있었다/ 이쪽도 저쪽을 향해 노려보았다/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저쪽이 인원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옆 백화점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대원들이 급히 합류하고 있었다/ 이쪽도 내 뒤로 늦게 도착한 대원들이 속속 합류했다” 각자 목적지를 품고 목표 지점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 인생일 터. 어쩌면 매 순간이 일촉즉발인 것처럼, 전쟁 같은 하루는 건널목에도 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이렇게 시작된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간혹 부정하는데/ 집에는 집이 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집을 찾아가는 길” 이 시를 읽으면서 집에 누가 있거나 말거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그 평범한 현실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하고 새삼스레 깨닫는다. 살아가는 일은 힘들고 아파도 비명 지르지 않고 온몸으로 담담하게 견뎌낸 뒤 흘려보내는 것인지 모른다. 김승강의 시에서 그 담담한 자세를 읽어본다. 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