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동체 해체·신뢰의 상실 등
- 사회문제 소재 작품 다수 수록
- 고전 재해석한 색다른 소설도
-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 다뤘다”

소설가 강동수가 세 번째 작품집을 냈다. 강동수 소설의 독자라면 이 사회의 크고 작은 부조리에 날을 세워 온 그의 작품세계를 익히 알고 또 기대할 것이다. 이번 소설집에도 대한민국 층층에 쌓인 부조리의 결과물, 사회 참사를 모티브로 한 작품들이 눈에 띄는데 특히 표제작 ‘언더 더 씨’는 세월호 참사를 다루고 있다.

	세 번째 소설집 ‘언더 더 씨’를 최근 펴낸 강동수 소설가. 국제신문 DB

바다를 떠다니는 소녀 단비가 있다. 살갗은 부풀어 오르고 바닷물에 쓸릴 대로 쓸렸지만 단비는 맨몸의 항해를 멈출 수가 없다. 오랜만에 만난 아빠에게 심통을 부리고 돌아설 때는, 엄마가 출근 전에 놓고 나간 샌드위치 도시락과 용돈을 챙겨 넣고 집을 나설 때는, 배가 기울고 “이러다 진짜 죽는 거 아냐?” 불안감을 감추며 시시덕거릴 때는, 그 큰 배가 가라앉을 때까지도, 정말로 죽게 될 줄은 몰랐다. 죽은 단비가 향해 가는 곳은 서천서역이다. 여러 개 지옥을 지나야 닿을 수 있다는 서천서역에서라면 소녀도, 단짝 은수도 수백 명 친구와 선생님도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처참한 현실을 뒤로한 단비의 여행은 희생자의 안식을 비는, 속절없는 염원 같다.

‘운수 좋은 날’의 주인공은 용산참사로 아버지를 잃고 동생을 감옥에 보낸 데다 자신도 구조조정으로 회사에 쫓겨나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잇는다. 어쩐 일인지 오늘은 밤샘 운전으로 14만 원의 수입을 올리고, 팁도 챙겼다. 이렇게만 번다면 그를 조여오던 아내의 잔소리도 조금 덜해지지 않을까. 그는 오늘 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운이 좋아도 결국은 불운할 수밖에 없는 인력거꾼 김첨지(현진건 ‘운수 좋은 날’ 주인공)처럼.

떠들썩한 사회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은 단편들에서도 공동체의 해체를 예리하게 관찰하고 위기를 감지하는 시선이 드러난다. 가족과 이웃, 공동체 구성원의 관계 결여를 돌아보게 하는 ‘가족 소풍’이 그런 작품이다. 예술문화판의 위선·무례·속물성을 까발리며 그로 인한 예술의 가치 하락까지 의심하는 ‘지음소사이어티 전말기’는 블랙코미디의 묘미를 발산한다. 강 소설가는 “청탁받기도 하고 그냥 쓰기도 한 작품을 나중에 묶는 것이 소설집이라 일관된 흐름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요즘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나라가 나라답지 않아서 일어난 세월호 참사 등-를 정면으로 다뤄보고 싶다는 생각은 내내 갖고 있었다”며 “가족의 해체, 방황하는 청소년, 공동체의 위기, 심지어 사랑의 위기, 신뢰의 상실도 모두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라는 인식으로 썼다”고 말했다.

이야기꾼으로서, 그리고 고전 텍스트의 해석자로서 작가의 능력과 재기가 엿보이는 작품은 ‘정염(情炎)’이다. 정약용이 ‘흠흠신서’에 기록하며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사특한 원혼의 조화라고 밖에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언급한 기이한 사건의 전말을 다시 상상해 쓴 소설이다. 주위에 불이 난 흔적도, 불이 옮겨붙은 흔적도 없이 정사 중에 온몸이 타 버린 남녀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유배 중이던 정약용이 은밀히 사건 해결에 나선다는 스토리로, 마지막에 실린 ‘치애(痴愛)’와 함께 남녀 간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정염’이 신분질서와 가부장의 폭력에 희생당한 개인의 사랑이 극단적으로 ‘산화’하는 과정을 은유했다면, 불륜을 소재로 한 ‘치애’는 행복한 결말에 대한 기대도 희망도 없는 사랑이 만연한 현대의 쓸쓸함을 담담하게 그려 보인다.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