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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암수살인과 미쓰백…국민 국가의 정상화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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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11-01 19:11:55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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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수살인’(2018)은 사뭇 독특한 지점에서 출발한다. 통상의 범죄 스릴러물이라면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 집중할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역으로 범인이 이미 붙잡혀 수감된 상태에서 과거의 사건을 재수사하는 여정을 다룬다. 형사 김형민(김윤석)은 거짓이 섞인 단서를 쥐고 반복적으로 탐문하면서 파편화된 진실의 퍼즐을 짜 맞추어 간다. 과거로 묻힌 미제사건을 들추는 일은 누구도 달가워하지 않지만 형사는 집요하게 사건의 경위를 밝히는 데 집착한다. 직업적 사명감으로 본분에 임하는 인물을 조형(造形)해낸다는 점에서도 이 영화는 저간의 한국형 범죄물과 결을 달리한다.
   
국가 장치의 신뢰 회복을 그린 영화 ‘미쓰백’(왼쪽)과 ‘암수살인’.
‘추격자’(2008)와 ‘악마를 보았다’(2010) 이래, 경찰로 표상되는 국가 장치는 대개 살인마의 난행 앞에서 한없이 무력하거나 범죄 현장에 늦게 도착하며, ‘공공의 안전’이란 본분에 무관심한 집단으로 묘사되어 왔다. 기존의 영화들이 ‘사이코패스 살인마’라는 장치를 통해 한국 사회가 처한 일종의 무정부적 상태, 즉 시민 일상의 안정을 책임질 국가 장치의 부재 상황을 전시하며 공포의 정념을 확대 재생산하는데 그쳤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암수살인’이 보여주는 인물의 태도 변화는 눈여겨볼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정상적인 수사가 이루어졌다면 묻히지 않았을 사건, 발생하지 않았을 피해자에 대한 참회로서의 수사. 이 영화는 무능하고 무책임했던 과거의 국가 장치에 대한 반성이다.

이와 같이 국가 장치를 다루는 영화적 태도의 변화는 ‘미쓰백’(2018)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극 중 형사 장섭(이희준)은 백상아(한지민)의 후견인처럼 행동하며, 잘못된 수사의 방향을 바로잡고자 노력한다. 그의 동기에는 성폭행 피해자를 정당한 법적 절차에 따라 보호하지 못하고 전과자가 되도록 방치해야 했던, 경찰로서의 소임을 다할 수 없었던 과거에 대한 죄의식이 깔려 있다. 망가진 상아의 삶을 보살피려는 그의 태도는 이전의 과오를 바로잡고 상징적 가부장으로서 사회구성원을 책임지려는 정상적 국가 장치의 인격화(人格化)처럼 보인다.

반면 백상아가 장섭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직접 지은(김시아)을 구하고자 도피행에 나서는 데에는 과거의 트라우마가 깔려 있다.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경찰이 도리어 가해자의 편을 들었던 경험은 백상아로 하여금 장섭과의 관계와 경찰 조직을 불신하고 이탈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미쓰백’은 소수자, 피해자로서의 여성 주인공을 다루는 영화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장섭으로 대변되는 국가 장치가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이기도 하다. 직접적인 묘사는 없지만 결말에서 영화는 상아와 장섭 사이에 놓인 벽이 허물어지고, 가족적 관계의 형성을 통해 상징적 가부장으로서 국가 장치의 역할이 정상화되었음을 암시한다. 이 영화는 ‘한공주’(2013) 이후의 낙관적인 후일담처럼 보인다.

   
피해자 서사를 관습처럼 줄곧 다뤄왔던 한국영화 일각의 경향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화두가 유행할 만큼 불안과 공포, 야만으로 내몰린 당대 사회상의 반영이었다. 국민의 삶을 책임지고 질서와 안정을 약속하는 국민국가의 이상이 붕괴해버린 사회적 징후로서의 영화들. 그러한 점에서 ‘암수살인’과 ‘미쓰백’의 행간에 묻어나는 정념의 변화는 국가 장치의 역할에 대한 재고이자, 국민국가의 정상화에 대한 시대적 요청으로서 중요한 전환점이 아닐 수 없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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