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혁명을 꼬집던 거장, 베르톨루치를 추모하며

‘마지막 황제’ 만든 伊 영화감독, 근대사의 혼란 냉철하게 분석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11-29 19:24:51
  •  |  본지 21면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서
- 그의 냉소·허무주의 잘 드러나

지난 26일 별세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사진·Bernardo Bertolucci: 1941~2018) 감독의 영화를 처음 접한 건 ‘마지막 황제’(1987)였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명작 ‘마지막 황제’의 한 장면.
자금성의 장려한 풍광이 회자되곤 하지만, 정작 인상적인 장면은 전범으로 수감된 푸이가 형량을 마친 뒤 생애의 늘그막에 접어드는 영화의 후반에 있었다. 망국의 군주란 껍데기를 버리고 평범한 인민의 한 사람으로 살도록, 막 태동한 사회주의 국가의 질서와 규율을 가르쳐준 교도소장은 자신이 헌신하고 따르던 체제에 의해서 거리로 끌려 나와 범법자로 전락한다. 짧은 분량이지만 문화대혁명의 혼란한 살풍경을 이토록 박진감 있게 다룬 영화를 다시 본 적이 없다.

‘마지막 황제’의 놀라운 점은 근대사 혁명기의 혼란과 실패를 외부자 또는 정 반대편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냉철한 거리 감각에 있었다. 이는 감독 베르톨루치가 평생 추구해온 작가적 태도이기도 하다. ‘혁명전야’(1964)에서 주인공 파브리지오는 중산층 유산계급으로서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과 혁명을 꿈꾸는 지식인의 이상주의 사이에서 고뇌한다. 베르톨루치는 흔들리지 않는 신념의 운동가 상, 종교화된 혁명의 도그마를 그리길 거부했다. 도리어 좌파 지식인 내면의 유약함과 흔들림, 사회정치적 모순을 솔직히 인정함으로써 보다 근본적인 층위에서 정치적 급진성을 성취하고자 했다.

68세대의 5월이 지나간 이후, 베르톨루치는 초년의 걸작 ‘순응자’(1970)를 발표한다. 영화에서 청년 마르첼로는 스스로 파시스트 세력에 복무해 과거의 스승을 암살하지만 세상이 뒤집히자마자 동료를 파시스트로 고발하며 헌신짝처럼 자신의 이념을 버린다. 격동기를 살아가는 인간의 초상에서 베르톨루치는 도덕적, 정치적 비겁함을 본 것이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2)는 실패한 혁명에 대한 베르톨루치의 냉소가 한껏 배어있는 작품이다. 마리아 슈나이더가 연기하는 잔은 말론 브란도로 표상되는 부모 세대와 그로 대변되는 가부장적 질서, 제국주의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지만 정작 그가 죽어버리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공황상태에 빠져버린다. 혁명은 했지만 정작 그다음을 위한 청사진이 없었고 독립할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다. 그래서 실패한 것이라고 베르톨루치는 지적한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서 혁명의 기저를 메스로 해부하듯 갈가리 찢어발기던 청년의 냉소와 허무주의는 후년의 영화 ‘몽상가들’(2003)에 이르면 역사의 전망을 길게 보며 다음 세대를 보듬을 줄 아는 어른의 관용과 낙관에 다다른다.

극 중 테오와 이자벨 남매의 부모는 난장판이 된 집안을 보고도 생활비를 남겨둔 채 조용히 집을 나선다. 이해할 수도, 동참할 수도 없지만, 그럼에도 다음 세대를 묵묵히 뒷바라지하는 부모의 태도는 어느덧 기성세대가 되어 68혁명을 회고하는 베르톨루치 심경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비록 어리고 미숙하며, 치기 넘치지만, 결국 새로운 시대는 다음 사람들의 것이 될 것이다. 이들을 조용히 격려하고 응원하는 것이 먼저 시대를 살아온 사람의 본분이라고 ‘몽상가들’은 넌지시 말을 건넨다. ‘1900’(1976)과 ‘마지막 황제’를 관통한 끝에, 노장은 넓고 먼 지평에서 시대의 변화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그런 베르톨루치가 마침내 눈을 감았다. 향년 77세. 우리 시대는 ‘어른’을 잃은 것이다.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건강한 부산을 위한 시민행동 프로젝트
많이 본 뉴스 RSS
  •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스포츠

탁암 심국보의 동학 이야기
강원도 영월 직동리에서 동학 또다시 살아나다
최원준의 그 고장 소울푸드
통영 쑤기미탕
국제시단 [전체보기]
어둠이 내릴 때 /박홍재
단풍 들어 /정온
글 한 줄 그림 한 장 [전체보기]
코 없는 사람
인공지능과 공존하는 미래를 위하여
리뷰 [전체보기]
경계인 된 탈북여성의 삶, 식탁·담배·피 묻은 손 통해 들춰
방송가 [전체보기]
요르단에 남겨진 모세의 흔적을 따라서
칠곡 태평마을 할머니합창단의 새로운 도전
새 책 [전체보기]
종이 동물원(켄 리우 지음·장성주 옮김) 外
무민은 채식주의자(구병모 등 지음) 外
신간 돋보기 [전체보기]
일상에서 사유하는 철학
5억 년간 진화한 척추동물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별헤는 밤-송남규 作
보이지 않는 벽-김인지 作
어린이책동산 [전체보기]
쉽고 재밌는 오페라 이야기 外
관찰일기 썼더니 과학자가 됐어요 外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내 인생 /손증호
겨울 폭포 /전연희
이기섭 8단의 토요바둑이야기 [전체보기]
제3회 바이링배 준결승 3국
2016 국수산맥배 단체전 결승
이원 기자의 Ent 프리즘 [전체보기]
‘마약왕’ 연말 흥행왕 될까
2년 뒤 애니로 다시 태어날 전태일
조재휘의 시네필 [전체보기]
역사라는 이름의 함정
혁명을 꼬집던 거장, 베르톨루치를 추모하며
책 읽어주는 남자 [전체보기]
사소한 일상 꿰뚫는 삶의 지혜, ‘밤의 전언’에 시대 통찰 있다 /박진명
침묵의 밤 별빛이 건네는 우주의 인사 /정광모
책 읽어주는 여자 [전체보기]
요술손 가졌나…뭐든 척척 초능력 할머니 /안덕자
‘미련과 후회’로 연말을 보내려는 당신을 위해 /강이라
현장 톡·톡 [전체보기]
“교육기회 빼앗긴 재일동포…우리가 돕겠습니다”
지역출판 살리려는 생산·기획·향유자의 진지한 고민 돋보여
BIFF 리뷰 [전체보기]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
퍼스트맨
BIFF 인터뷰 [전체보기]
‘렛미폴’ 조포니아손 감독, 마약중독에 대한 인간적 접근…“그들도 결국 평범한 사람이에요”
감독 박배일 '국도예술관·사드 들어선 성주…부산을, 지역을 담담히 담아내다'
BIFF 피플 [전체보기]
‘국화와 단두대’ 주연 배우 키류 마이·칸 하나에
제이슨 블룸
BIFF 현장 [전체보기]
10분짜리 가상현실…360도 시야가 트이면 영화가 현실이 된다
BIFF 화제작 [전체보기]
‘안녕, 티라노’ 고기 안 먹는 육식공룡과 날지 못하는 익룡의 여행
묘수풀이 - [전체보기]
묘수풀이 - 2018년 12월 14일
묘수풀이 - 2018년 12월 13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 10월 9일
오늘의 BIFF - 10월 8일
이기섭 8단의 바둑칼럼 [전체보기]
제5회 대주배 남녀 프로시니어 최강자전
제5회 대주배 남녀 프로시니어 최강자전
정천구의 도덕경…민주주의의 길 [전체보기]
始于足下
作于累土
부강한 진주 행복한 시민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