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남영희가 만난 무대 위의 사람들 <3> 춤꾼 허경미

예쁜 인형이길 거부한 춤꾼, 사라져가는 동네를 몸짓으로 기억하다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2-10 18:52:50
  •  |  본지 1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과 수석입학·시립무용단 입단
- 무용가로서 탄탄대로 뒤로
- 훌쩍 인도로 가 춤과 삶 돌아봐

- 현재 문화재단 입주 2년째
- 최첨단 영상기술과 춤 접목
- 재개발 마을 행위예술로 기록
- 새로운 분야와 거침없이 협업
- 자신만의 길 흔들림 없이 걸어가

혜성처럼 나타났다 홀연히 사라지는가 싶더니 새로운 빛을 온몸에 휘감고 다시 등장한 춤꾼 허경미. 부산 남구 감만창의문화촌에 위치한 부산문화재단 입주작가 사무실에서 그녀와 만났다.
   
‘춤꾼’ 허경미가 부산 남구 감만창의문화촌에서 열린 김주찬 사진전 ‘공명’에서 자신의 공연 사진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성효 전문기자
■인도에서 춤의 이유를 묻다
경남 통영 출신으로 내로라하는 무용학도들을 제치고 부산대 무용학과에 수석 입학했다. 수석 입학생답게 모범적으로 무대 춤을 수학하기보다 마당 춤을 배우고, 여름 농활 같은 대학생 봉사활동에 열심이었다. 그런데도 재학 중 전국신인 무용대회에서 특상을 받았으며, 졸업 후에는 부산시립무용단에 입단해 10년간 활동했다.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예술적 기반을 안정적으로 다져가던 무렵, 모든 것을 뒤로하고 인도로 훌쩍 떠났다. 귀국 후에는 ‘외外치다’로 부산무용제 대상과 전국무용제 은상을 거머쥐었고, 2016년에는 미디어 아티스트 박봉수와 협업으로 살풀이를 재해석한 창작 춤 ‘신곡(身哭)’을 런던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인터뷰 장면.
“연극은 대사를 통해서, 음악은 악보를 통해서 표현하잖아요. 춤은 오로지 내 몸을 통해서만 표현할 수 있는데, 춤을 늦게 시작해서 기능적으로 많이 부족했고, 학습능력도 떨어지는 편이었어요.”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고수의 자평답지 않다. 하지만 움직임을 배우고 연마하는 재미를 늦게 깨쳤기에 오히려 생명력이 긴 것 같다는 말에는 쉽게 수긍이 갔다. 춤 자체에 깊은 회의를 품고 길을 떠나야 했던 까닭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32살, 인도로 갈 때는 그토록 좋아하던 춤을 그만둘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예쁘더라”는 칭찬이 싫었고 움직이는 인형이 되어간다는 생각에 행복하지 않았다. 춤이 아닌 삶의 근원적인 답을 구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인도 사람들이 매일 행하는 ‘뿌자’ 의식에 작은 꽃을 바치는 모습을 보면서 저 꽃은 그들이 신께 바칠 수 있는 가장 좋고 귀한 것을 상징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제게는 그게 바로 춤이었죠.”

■‘레드스텝’부터 ‘감만 기억’까지

귀국 후 붉은 꽃을 상징하는 이름을 가진 ‘허경미무용단 레드스텝’을 만들었다. 함께 작업하며 도움을 주고받는 동료가 좋았고, 후배들에게도 작은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었다. 8년 정도 레드스텝과 활동하다가 3년 전 ‘허경미무용단 무무’를 꾸렸다. “‘춤추다(舞)’라는 뜻과 ‘없다(無)’라는 뜻을 담았어요. 춤은 움직임이니까 이내 사라져버리죠. 사라지니까 바로 그 순간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그의 춤 인생이 짧게 뇌리를 스쳤다. 무엇인가 이루고 가졌을 때 만족하고 멈춘 적이 있었던가. 마치 자신이 무엇을 이루었고 가지게 되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그런 것들은 금세 사라져 없어진다는 진리를 온전히 알고 있는 사람처럼 언제나 다음 걸음을 재촉했다. 이즈음에는 어떤 길을 가고 있을까.

“부산문화재단 입주 작가가 된 지 2년째입니다. 사무실이 있으니 좋고요, 다양한 분야의 작가와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어서 좋아요. 개인적으로 가장 큰 변화는 제가 깃들고 있는 이 지역과 지역 사람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지난해 11월 4일, 남구 감만동 빈집과 골목을 누비며 거리 공연을 했다. 진홍 스튜디오(감독 홍석진)와 협업했던 이 공연은 멀티미디어 퍼포먼스로 재창작돼 같은 달 18일 동항교회 인근 공터에서 펼쳐졌으며, 지난달 14일에는 주민 요청으로 감만창의문화촌 사랑방에서 영상이 상영되기도 했다. “이 마을이 곧 사라진다고 해요. 감만동뿐만 아니라 수많은 마을이 재개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는데, 그곳에 깃든 삶의 기억들도 모두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인문지리학자 이 푸 투안(Yi-Fu-Tuan)은 저서 ‘토포필리아’에서 환경을 ‘깊은 정과 사랑의 대상, 그리고 기쁨과 확실성의 원천’이라 하지 않았던가. 장소에 대한 기억과 성찰을 예술로 표현하고 있는 모습은 그의 춤 철학을 엿보기에 부족함이 없다.

‘감만 기억’은 사라지는 마을을 아카이빙한 예술 프로젝트다. 그를 비롯한 4명의 무용수와 6명의 주민이 함께 퍼포먼스에 참여했다. 빈집과 창문, 담벼락을 배경으로 몸짓을 펼치고, 삶의 기억과 정든 터전을 떠나야 하는 아쉬움을 육성으로 전달한다. 참여자들은 3개월가량 현장에 머물며 장소에 깃든 삶의 내력과 온기에 귀를 기울였고, 그 느낌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담았다. 안무의 가이드라인이 있었지만 세세한 동작은 장소와 어우러지도록 자율성을 주었다. 그리하여 빨래를 털어 널고 마당에 꽃을 심는 일상의 동작들과도 괴리되지 않았다. 춤추는 이, 구경하는 이, 기록하는 이들이 모두 함께 마을 곳곳을 누빈 이 공연은 장소의 기억만큼이나 깊고 애틋하게 각인되었다.

■자신만의 빛을 내다

미디어를 활용한 다원 영역 역시 그의 새로운 활동 장이다. 춤과 첨단 영상기술이 만나 아날로그적 움직임을 디지털화하는 인터랙티브 프로그래밍을 기반으로 한다. 새롭고 참신한 시도로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지만, 전문가들의 시각은 사뭇 달랐다. “미디어는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내잖아요. 저 역시 몸과 춤의 고유성이 스펙터클에 잡아먹힌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도 이런 작업을 시도하는 이유는 창작자로서 경험과 도전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몸을 쓰는 익숙한 방식을 버리고 쓰지 않던 방식으로 몸을 쓰다 보면, 움직임의 새로운 질감을 찾을 수 있지요.”

   
대학 시절 전공과는 결이 다른 마당 춤을 추었던 허경미다. 홀연히 떠난 인도에서 요가와 전통춤 까탁, 악기 타블라를 배웠다. 다양한 움직임의 서로 다른 에너지들을 받아들이는 데 거리낌이 없었고, 이제 그들을 쌓고 엮어 자신만의 독특한 빛으로 찬란히 빚어내고 있다. 누구보다 치열한 고민과 도전의 세월을 보내고 비로소 자신의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가고 있는 오늘의 그를 어떤 말로 규정할 수 있겠는가. 무대에서 또 거리에서, 변함없는 시선과 몸짓으로 오늘도 현장을 지키고 있는 춤꾼 허경미의 내일은 그래서 오히려 견고하다.

공연기획자·인제대 외래교수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많이 본 뉴스RSS

  1. 1[신간 돋보기] 인류 문명사에서 바라본 종교
  2. 2“조국 딸 의혹 밝혀라” 부산대생 행동 나섰다
  3. 3“과도한 조국 지키기” 여당 내서도 우려 솔솔
  4. 4북미 토네이도 발생 예측법 부산대 연구진이 찾아냈다
  5. 5한국석유공사, 국민과 소통 혁신경영…중소기업과 동반성장 생태계 조성도
  6. 6‘옥상 물탱크 없는 부산’ 주민 수요 넘치는데 예산 ‘싹뚝’
  7. 7[신간 돋보기] 천도교 교령의 ‘고려인’ 기행
  8. 8외국인 주민 지원 다문화가정 쏠림 과다
  9. 9[국제칼럼] “자기 편 옹호에도 금칙은 있는 법” /김경국
  10. 10[뉴스와 현장] 아들아, 조국이 아니라 미안하다 /유정환
  1. 1동양대학교 관심집중...조국 후보자의 부인 ‘정경심’때문
  2. 2고대 ‘촛불 집회’제안자, 한 때 자유한국당 ‘청년 부대변인 내정자’논란
  3. 3‘한끼줍쇼’ 오현경-강호동 커플티 입고 등장?... 과거 열애설에 “두분 연인이셨습니까?”
  4. 4황교안 “내가 법무부 장관 지낸 사람인데, 조국 거론되는 게 모독”
  5. 5공지영 “조국 딸이 받을 상처, 가족 사생활 공개 상식적인가”…촛불까지 언급
  6. 6‘조국 딸 학위취소’ 국민청원 비공개 전환한 청와대… 삭제·비공개 조건 보니
  7. 7靑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韓 노력에 日 호응 없어"
  8. 8민주, 野 조국 청문회 보이콧 기류에 '국민 청문회' 검토
  9. 9 지소미아 연장 파기 결정 "우리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
  10. 10지소미아 파기 결정 지소미아란?
  1. 1한국석유공사, 국민과 소통 혁신경영…중소기업과 동반성장 생태계 조성도
  2. 2한국동서발전, 신재생에너지 사업 국산기자재 확대…경제 살리기 앞장
  3. 3부산항만공사(BPA), 지역아동센터 어린이 위한 캠핑 행사
  4. 4‘브렉시트 이후에도 무관세’ 한-영 FTA 체결 서명 완료
  5. 5‘도시놀이터 프로젝트’ 활기…HUG, 부산시교육청에 3억 후원
  6. 6저소득층 소득 감소 멈췄지만…고소득층과 격차 역대 최대
  7. 7선원고용센터 잇단 비리 불거져 내홍
  8. 8학교시설 공사 원가 현실화…지역 건설업계 ‘가뭄에 단비’
  9. 9BNK, 지역기업 돕기 팔 걷어…일본 규제 긴급 자금 2000억 편성
  10. 10가계빚 1550조 돌파
  1. 1SRT 추석 예매 시작…피 튀기는 ‘피케팅’ 성공 노하우 공개
  2. 2북한 방사능에 주민들 피폭 증상?... 한국에 폐기물 유입 가능성도 있어
  3. 3부산대, 조국 딸 의전원 입학과정 전반 내부 조사 착수
  4. 4부산 호우주의보…세병교 수관교 등 일부 도로 통제
  5. 5만취 30대 운전자, 택시 전봇대 담벼락 들이받고 뺑소니
  6. 6공지영 SNS에 조국 지지 게시물 올려...괴벨스의 발언도 인용해
  7. 7이재정 교육감 “조국 딸 논문은 ‘에세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8. 8고려대 학생들 내일 오후 6시 교내서 촛불집회
  9. 9경기대 총학 “사학비리 시절로 돌아가려는 경기대를 살려주세요”
  10. 1091세 노모 등 직원으로 허위 등록, 보조금 횡령한 버스업체 대표 검거
  1. 1‘리틀야구 월드시리즈’ 어린이 한일전...결승 티켓 놓고 맞대결
  2. 2부산시청 소속 청원경찰, 세계경찰소방관경기대회서 주짓수 부문 2관왕
  3. 3스포츠혁신위, 체육회-KOC 분리 권고…체육계 "시기상조"
  4. 4남자 테니스 ‘빅3’ 질주, US오픈서도 계속될까
  5. 525세 이하 골프 유망주 임성재 6위·김시우 7위
  6. 6류현진 FA시장 ‘태풍의 눈’
  7. 7‘축구 유망주’ 17세 서종민, 독일 프랑크푸르트 계약 임박
  8. 8농구월드컵 앞둔 김상식호, 24일 인천서 최종 모의고사
  9. 9
  10. 10
우리은행
조봉권의 문화현장
역사·문화 측면에서 살펴본 한일 경제전쟁
정두환의 공연예술…한 뼘 더
부산시립청소년교향악단의 토크 오페라
동네책방 통신 [전체보기]
책이 좋아 도서관서 살다 아예 책방 차렸죠
공공도서관 책 동네서점서 빌리는 ‘상생의 묘’
부산 웹툰 작가들의 방구석 STORY [전체보기]
손규호
납량특집 좁은 방...김태영
새 책 [전체보기]
1945(배삼식 지음) 外
근린생활자(배지영 지음) 外
신간 돋보기 [전체보기]
인류 문명사에서 바라본 종교
한 분야에서 성공한 이들의 독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자작나무 Ⅱ - 황금자 作
소년 낚시 - 이석우 作
어린이책동산 [전체보기]
소년과 강아지 ‘보이’의 변치않는 우정 外
어린시절 소소하지만 특별한 기억들 外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가을 어귀 /공란영
송정바다에서 /박희진
이원 기자의 Ent 프리즘 [전체보기]
취준생·세월호…우리가 ‘엑시트’에 끌린 이유
작가적 상상력이 흔든 ‘역사의 뿌리’
조재휘의 시네필 [전체보기]
경계를 넘어, 소통을 찾아
역사 수정주의의 정체에 관하여
현장 톡·톡 [전체보기]
고 홍영철 원장 타계 3주년…‘부산영화 100년사’ 재조명 필요
음악으로 하나된 청춘들…젊은 열기 식을 줄 몰랐다
묘수풀이 - [전체보기]
묘수풀이 - 2019년 8월 23일
묘수풀이 - 2019년 8월 22일
이기섭 8단의 바둑칼럼 [전체보기]
제6회 대주배 남녀 프로시니어 최강자전
제6회 대주배 남녀 프로시니어 최강자전
정천구의 도덕경…민주주의의 길 [전체보기]
爭小故忿
義兵應兵
  • 2019 ATC 부산 성공기원 시민대회
  • 2019아시아 트레일즈 컨퍼런스
  • 사하관관사진공모전
  • 제5회 극지 해양 도서 독후감 공모전
  • 부산관광영상전국공모전
  • 유콘서트
  • 어린이경제아카데미
  • 어린이극지해양아카데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