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유효기간 1000년’ 내세우며
- SNS 통해 문학 퍼포먼스 펼쳐

- “사회관계망 매체 엄청나게 변화
- 새로운 질문 방식 던지고 싶었죠”

‘노골적 광고. 상품명-장미키스. 품목-시집. 제조자-최정란. 제조원-시산맥. 제조일자-2018년 12월 20일. 유효기간-3018년 12월 20일까지. 서점 가격-9000원. 인터넷 가격-8100원. 목적 혹은 이유-시집 장미키스 100만 부 판매….’ 여기까지 읽어나가다 문득 “잠깐, 뭐라고?…” 하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 되돌아갔다. “유효기간 3018년 12월 20일까지? 유효기간이 무려 1000년이야?”

	최정란 시인이 부산 금정구 구서동 한 카페에서 시집 ‘장미키스’와 최근 문학 활동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이 글은 최정란 시인이 요즘 페이스북에 ‘노골적 광고’라는 제목으로 연작으로 올리는 자신의 네 번째 시집 ‘장미키스’(사진) 알림 글에 따라붙는 문구다. 이 글은 찬반을 불렀다. 반기는 사람도 있고 무시하는 이도 있다. 그런데 어떤 쪽이든 대체로 그가 ‘100만 부 판매’의 유효기간을 3018년까지 ‘1000년’으로 해놓은 점은 눈여겨보지 못하는 느낌이다. 왜 시인은 ‘노골적’이며 도발적이고 대범하면서 느린 ‘1000년짜리’ 시집 알리기 프로젝트에 직접 나선 걸까? “별다른 일 없으면 아침부터 나와 긴 시간 차 마시며 책 읽고 글 쓰는 아지트”라고 소개한 부산 금정구 이디야커피숍 두실역점에서 최정란 시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공감하거나 호의를 보내면서 시집을 사주기까지 하는 분도 꽤 계셔요. ‘시인’이 ‘노골적 광고’를 직접 한다는 게 말이 되냐며 거부감을 나타내거나 비난하는 사례도 물론 있고요.” 페이스북 기반의 ‘노골적 광고’ 연작은 뭔가 절실한 메시지를 표현하려는 문학 퍼포먼스로 보는 게 합당할 듯하다. 광고하고 판매하는 행위를 점잖지 못한 짓으로 보면서 ‘상업적’이라는 말로 묶어 뭉뚱그려 비난하는 풍조가 여전히 문단에서는 강하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등단 17년 차(200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으로 등단) 중견인 그가 무턱대고 ‘광고’에, 그것도 ‘노골적으로’ 나섰을 리 없다. 게다가 ‘유효기간 1000년’짜리로.

“저는 전업 시인이죠. 전업 여부를 떠나 하루 대부분 시와 글을 생각하며 온 힘을 다해 시를 쓰고자 노력합니다. 이전과 달리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같은, 예전 같으면 생각도 못 했을 강한 사회관계망 매체가 진화하고 대중이 활용하는 관련 기술도 빠르게 발전해요.” 이렇게 엄청난 변화가 들이닥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쓴 시를 이전처럼 남이 알아봐주기만 막연히 바라야 하겠느냐는 질문을 그의 퍼포먼스는 담는다.

“파는 행위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도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재화와 용역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아 삶을 꾸리는) 파는 행위는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기본 방식인데 옛날 사농공상 의식에 여전히 잡혀 이를 낮잡아 보고 무시하는 것은 식상한 생각 아니냐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어느 정도 욕 먹을 생각을 하고 ‘노골적 광고’에 나선 셈이다. 예술가의 퍼포먼스란 좀 빈틈이 보이고 불편하더라도 새로운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던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의 네 번째 시집 ‘장미키스’가 궁금해진다. 연한 와인색 표지에 다소 강한 제목과 달리 ‘장미키스’는 장미나 키스를 담은 시집은 아니다. 문학적으로 치열하고 진지한 시집으로 다가온다. 최정란 시인은 계명대 영문학과에서 문학을 공부했고, 계명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이성복 시인에게서 배웠다. ‘장미키스’에 실린 작품은 언어에 관한 모색과 고민을 단단히 부여잡아 ‘모던’한 느낌이 물씬 나면서도 삶의 문제로 육박하는 주제의식을 놓지 않는다. 시의 제재는 일상과 생활 속에서 지나치기 쉬운 것에서 잡아내 공감력을 올린다. 흔치 않게, 시의 긴장감을 지니면서도 독자에게 말도 걸어준다.

예컨대 이런 대목이 있다. “끓는 물에 데친 토마토는 쉽게 껍질이 벗겨져요 / 껍질이 벗겨진 토마토는 순식간에 뭉크러져 / 모습을 잃어요 / 곧 토마토라고 짐작하기 어려워져요 // 미농지처럼 속이 비춰 보이는 얇은 막이 / 토마토의 내부를 보호하고, / 바람과 일교차를 견디고 땡볕을 막아내요 // 지금까지 나를 지켜준 것이 한 겹 껍질이군요 / 그것도 모르고 그까짓 껍질, 하면서 / 잘도 껍질을 쓰레기통으로 벗어던졌군요…”(‘껍질의 힘’ 부분)

조봉권 문화전문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