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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의 부산 춤 이야기 <11> 무용계는 떳떳한가?

친일 무용가, 한국 춤판의 전설이 될 자격 없다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3-25 19:04:03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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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 행적 드러난 최승희 조택원
- 근대무용 양대산맥이란 이유로
- 업적 흠집내기는 ‘암묵적 금기’
- 몸짓 하나에 천번의 고민 담는 법
- 예술적 성과만 추켜세워선 안 돼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에서 대통령은 “친일잔재 청산은 너무 오래 미뤄둔 숙제”라고 했다. 친일 인사의 행적을 밝히는 보도가 쏟아지고, 서울 광화문을 중심으로 대규모 문화행사가 열렸다. 시내 한복판에서 줄 당기기가 벌어지고, 1만 명(실제는 4000여 명)이 북 치며 행진하는 ‘만북’과 부산 춤꾼 여럿이 참여한 다양한 공연이 펼쳐졌다. 이 모든 것에는 친일잔재를 씻고 역사를 바로 세우자는 소망이 담겼다. 이쯤에서 질문 하나를 던진다. 무용계는 친일 논란에서 떳떳한가? 이 도발적인 질문은 춤판 내부에서 나와야 할 질문이다.
   
지난 1월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인근에 설치된 소녀상 앞에서 춤꾼 김경미가 ‘넋, 푸리’ 공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가 박병민 제공
우리 춤에서 근대 기점 문제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조동화와 안제승은 현대적 무용의 시작을 ‘신무용’으로 보고 1926년 일본 무용가 이시이 바쿠의 경성 공연이 우리 무용의 근대화 기점이라고 주장한다. 이 공연을 본 최승희 조택원이 이시이 바쿠의 문하생이 됐고, 그들은 우리나라 무용계 판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주장에 대해 우리나라 근대무용의 시작이 왜 일본인의 공연이냐는 것과 ‘신무용’이 근대(현대)무용을 포괄할 수 있는지 등의 반박이 있다.

최승희와 조택원은 한국 근대 무용의 양대 산맥이라 불린다. 월북한 최승희는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적 무용가로, 조택원은 한국적 극무용을 개척한 선구자로 추앙받으며 1호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1974년).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에 두 사람의 이름이 올랐다. 문화·예술 분야 165명 중 무용은 최승희와 조택원 두 명이다. 두 사람의 활동 대부분이 일제의 후원으로 이루어졌고, 식민 지배와 수탈에 기여한 여러 증거가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친일인명사전’ 준비과정에서 민족문제연구소가 최승희의 친일 행적 연구를 위해 많은 연구자와 접촉했지만,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조택원을 다루는 일도 만만치 않아서 많은 무용계 인사의 항의를 받았다. 문학과 미술, 음악에서 친일행적이 밝혀진 인물에 대한 재평가는 일찌감치 시작됐다. 최근 음악계에서는 안익태의 친일과 친나치 활동 때문에 애국가를 계속 사용할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무용계 상황은 다르다. 현실 영향력이 남아 있으면서 전설이 된 인물에 흠집 내는 것을 못마땅해한다. 무용계에서 이들의 친일 행적을 언급하는 것은 암묵적 금기다. 조택원의 업적을 기리는 춤비가 국립극장에 서 있는 것을 보면 무용계의 역사 인식이 어떤지 알 수 있다. 춤을 배우는 학생과 역사를 알지 못하는 이들은 아직도 그들을 우리 무용계의 전설로 생각한다. 그들이 이룬 몇 가지 예술적 성과나 선구적 의미가 있다고 해도 공과에 대한 올바른 평가 없이 한 면만 드러내는 것은 무책임한 맹목이다.

자신의 예술적 위상과 안위를 위해 무모한 전쟁을 부추기고 식민지 수탈에 기여한 일은 타인의 피와 고통을 이용한 잔인하고 이기적인 행위일 뿐이다. 이런 맹목이 잘못된 전설을 만들었다. 우리 춤에서 전설적 인물이 필요하다면 당연히 한성준과 각자의 삶 속에서 민속춤을 지킨 이들을 꼽아야 한다. 친일을 하지 않고 춤과 양심을 지켰고, 그 춤이 지금 우리가 즐기는 전통춤과 민속춤이 됐다. 이런 사실 앞에서 친일 예술가를 두둔하는 온갖 수사는 궁색한 변명이다.

   
며칠 뒤 춤꾼들은 다시 부산 동구 소녀상 앞에 맨발로 선다. 그들의 춤은 명성이나 돈을 위한 것이 아니다. 가슴 저미는 슬픔과 고통의 역사를 외면할 수 없었기에 주저 없이 춤추는 것이다. 춤꾼의 몸이 춤과 사회의 역사를 응축하고, 현실과 대면하면서 예술로 승화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역사를 외면하고 전설을 좇는 사람은 현실 기득권에 집착하는 이들이다. 그들에게 역동하는 현실과 역사는 애써 외면하고 싶은 걸림돌이다. 춤사위 하나에 천의 역사와 천 번의 고민이 담겼다. 그래서 춤추는 것은 지극한 일이다. 다시 물어본다. 무용계는 친일 논란에서 떳떳한가?

춤 비평가·문화기획 이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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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통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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