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르웨이서 36년 산 영국인이
- 역사·정치·문화·사회·생활 등
- 스칸디나비아의 모든 것 고찰
- 북유럽에 관한 선입견에 ‘질문’

대체 이렇게 독특한 형식으로 책을 쓰겠다는 발상을 어떻게 한 걸까? 분명 ‘역사책’인 것 같은데, 글에는 저자의 개인 일상사와 별난 에피소드가 듬뿍 들어있다. 여기서 ‘개인 일상사와 별난 에피소드’란 먹고 마시고 토론하고 떠들고 여행하고 살아가는 일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런 일상사와 에피소드가 책 속에서 ‘역사’와 절묘하게 만난다.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 거리 풍경. ‘북유럽인 이야기’는 스칸디나비아 나라들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모험기 같은 책이다. 국제신문 DB

그래서 ‘독특한 형태의 역사책이겠니’ 여기고 읽어가다 보면, 문화 예술 사회 그리고 약간의 스포츠 이야기가 시시때때 등장한다. ‘역사·문화 에세이라고 해야 하나’ 하고 살짝 헷갈리는데 그렇게 규정해버리면 또 이 책이 가진 팔색조 같은 맛을 다 담지 못할까 걱정된다. 어쩌라고? “로버트 퍼거슨의 ‘북유럽인 이야기’, 넌 누구냐?” 하는 감정이 울컥 올라오려 할 때쯤 번뜩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이 책이 비록 이렇게 종잡기 힘든 정체성을 보여주지만 곰처럼, 레이저처럼, 흔들림 없이 집중하는 주제와 대상은 딱 하나란 점이다. 바로 스칸디나비아 지역, 다시 말해 북유럽이다.

저자는 좀 별난 양반이다. 로버트 퍼거슨은 1983년부터 36년째 노르웨이에 살지만, 스칸디나비아(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아이슬란드) 사람이 아니다. 영국인이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공장 노동자, 병원 일꾼, 집배원, 요리사, 운전사 같은 일을 하며 젊은 날을 보냈다. 이 책의 ‘들어가는 글-지옥의 계절: 1969년 코펜하겐’ 자체가 스무 살 때 친구를 꼬여 덴마크로 무작정 무전여행을 간 뒤 엄청난 고생과 굶주림(음식을 한동안 훔쳐 먹었다)을 겪은 이야기다.

책은 곧장 스칸디나비아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로 빠져든다. 목차를 일부 소개하면 이렇다. ‘선돌 유물(룬 문자가 새겨진 고대 비석 유물)’ ‘암레트, 루터 그리고 최후의 사제: 스칸디나비아의 종교개혁’ ‘옛 선대왕의 고분 발굴: 덴마크의 프레데리크 7세’ ‘바사호(Vasa Ship): 스웨덴의 위대한 시대’ ‘요한 프리드리히 슈트루엔제의 짧지만 달콤했던 권세’ ‘신앙심: 쇠렌 키르케고르와 올라브 피스크비크’ ‘먼 거리 탐험가의 고독’ ‘이민’ ‘제2차 세계대전: 스칸디나비아의 전쟁 수난사’….

목차에서 짐작할 수 있다시피, 스칸디나비아의 역사는 고대부터 근대까지 엄청나게 복잡하게 꼬였다. 각 나라의 부침이 교차하고, 지배와 피지배가 교차하고, 중세에는 바이킹 짓을 했다가 2차 대전 때는 독일한테 호되게 당하고…. 그런 과정을 거쳐 이들은 오늘의 평화와 번영과 인권 신장과 개인 존중과 공동체 발전이라는, 한 번에 이뤄낼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해냈다.

77명(대부분 청소년)을 죽인 노르웨이의 테러범에 대한 처벌이 바깥 세계 사람이 볼 때는 말도 안 되게 ‘관대한’ 현실을 비추거나, 스칸디나비아인은 ‘멜랑콜리’(우울)하다는 관념에 깊은 질문을 하면서 북유럽의 참모습을 찾는 노력이 인상 깊다. 18세기 덴마크에서 활약한 슈트루엔제에서는 고려의 신돈이 겹쳐진다. ‘스칸디나비아 연대표’도 유용하다.

조봉권 문화전문기자 bgjoe@kookje.co.kr